핏빛 추억 속으로 :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월간 스크린⑧ - 한국영화 현장 기행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8-12-11조회 2057
살인의 추억 스틸

2003년 | 싸이더스

감독: 봉준호 | 원작: 김광림 | 각본: 봉준호, 심성보 | 제작: 차승재 | 촬영: 김형구 | 프로덕션 디자이너: 류성희 | 음악: 타로 이와시로

CAST
박두만: 송강호 | 서태윤: 김상경 | 조용구: 김뢰하 | 신 반장: 송재호 | 구 반장: 변희봉 | 권귀옥: 고서희 | 박현규: 박해일

2000년 이후 한국영화에서 가장 빛났던 해는 언제일까요? 개인적으로는 2003년을 꼽고 싶습니다. 1999년 <쉬리>(강제규) 이후 이른바 ‘르네상스’ 시기를 맞이한 한국영화는 2003년에 놀라운 다양성을 갖추게 됩니다. 일단 2003년에 나온 한국영화 주요작 리스트를 살펴보겠습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김경형) <싱글즈>(권칠인) <바람난 가족>(임상수) <선생 김봉두>(장규성)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실미도>(강우석) <오! 브라더스>(김용화) <올드보이>(박찬욱) <장화, 홍련>(김지운)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클래식>(곽재용) <황산벌>(이준익)… 코미디, 로맨스, 호러, 스릴러, 드라마, 사극, 멜로 등 거의 모든 장르가 흥행작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살인의 추억>이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 스틸
살인의 추억 스틸

<살인의 추억> 현장 공개는 2002년 10월에 있었습니다. 해남 땅끝 마을이었는데요, 영화에선 30초 조금 넘게 나오는 단 두 컷을 위해 수십 명의 제작진이 그 먼 곳까지 간 거였죠. 취재진이 아침 일찍 광화문에서 모여서 현장까지 가는 데 5시간 가까이 걸렸던 걸로 기억 납니다. <살인의 추억>은 촬영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뒤졌는데요, 그 중 ‘끝판왕’이 바로 땅끝 마을 촬영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장 취재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 서울에 도착했을 땐 자정이 넘었던걸로 기억납니다.

살인의 추억 스틸

먼 길을 가긴 했지만, 공개된 장면은 간단합니다. 서태윤(김상경)은 갈대밭에 사체가 있을 거로 예측합니다. 서류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그래서 대규모 수색을 벌이지만,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김뢰하)는 길 한 켠에 차를 세우고 실뜨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서태윤과 박두만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장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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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슈퍼크레인을 사용한 이 장면의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컷을 끊지 않고 하나의 테이크 안에 그 모든 상황을 담아야 했기 때문이죠. 감독들에게 여러 스타일이 있지만, 현장에서 봉준호 감독은 마치 친절한 선생님 같았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범죄영화에 대한 그의 관심은 아마도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시작됐을 텐데요, <살인의 추억>에 대해선 “1980년대를 재현하되 기억에 의존한 묘사가 되기를, 그래서 현재와의 거리감은 더 증폭되기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살인의 추억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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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든든한 베테랑, 김형구 촬영감독과 이강산 조명기사입니다. 두 분의 파트너십은 김성수 감독의 영화에서 빛을 발했는데요. 단편 <비명도시>(1993)부터 시작해 <비트>(1997) <태양은 없다>(2000) <무사>(2001) <영어완전정복>(2003)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괴물>도 두 장인의 콜라보였고요. <아름다운 시절>(이광모, 1998) <박하사탕>(이창동, 2000) <봄날은 간다>(허진호, 2001) <역도산>(송해성, 2004) 등도 김형구-이강산의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강산 조명기사는 2006년 52세의 젊은 나이에, <괴물>을 유작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인의 추억 스틸

<살인의 추억> 현장엔 외국인 스태프가 있었습니다. 조명부의 무라치 히데키 씨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허진호)를 보고 한국영화에 매료되었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살인의 추억> 현장까지 이르렀습니다.

살인의 추억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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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뜨기는 원래 시나리오엔 없었던 부분인데, 촬영 당일 아침 봉준호 감독이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은 틈나는 대로 실뜨기를 연습했는데요, 여기엔 김상경도 가세해 선배 김뢰하에게 실뜨기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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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형구 촬영감독은 거의 온종일 크레인 위에 있어야 했습니다. 유려한 카메라로 갈대밭을 훑어 내려가는 컨셉트 때문이었죠. 한편 키 큰 갈대밭 때문에 슬레이트 치는 게 쉽지 않았는데요, 갈대밭 높이 때문에 전경으로 등장하는 엑스트라도 175cm가 넘는 사람들로만 동원해야 했습니다.

살인의 추억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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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살인의 추억>엔 당시의 물건들이 꼼꼼하게 등장합니다. 경찰차는 대우 맵시 차종입니다. 그리고 전경 버스 내부의 모습입니다.

살인의 추억 스틸

새삼 놀라운 건, <살인의 추억>은 김상경의 ‘겨우’ 두 번째 영화라는 점이죠. 첫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2002)이었는데요, <살인의 추억>을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홍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김상경에게 봉준호 감독 한번 만나 보라며 “<살인의 추억>이 네 두 번째 영화로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살인의 추억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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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송강호가 선배 형사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김뢰하가 선배입니다. 한편 이날 촬영 때 김뢰하는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는데요, 실뜨기 장면을 잘 보시면 조용구 형사가 사탕을 먹고 있는 걸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 계속 당을 섭취해야 했던 김뢰하의 몸 상태 때문에 만들어낸 영화적 설정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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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은 꽤 일찍 해가 떨어지는 계절입니다. 아직 촬영 분량이 남았는데, 서서히 석양이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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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 쪽에서 뭔가 찾았다는 고함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립니다. 실뜨기를 하던 두 사람은 일어서서 그쪽을 바라봅니다. 또 한 명의 희생자, 독고현순의 발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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