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2017

by.김혜리(영화평론가) 2018-01-20조회 18,759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 이미지, 푸른 하늘 배경의 세 명의 꼬마아이들

플로리다 프로젝트란 1965년 디즈니가 테마파크 건설을 위한 플로리다주 올랜도 부동산 매입계획에 붙인 가칭이다. 그렇게 지어진 디즈니월드는 여전히 성업 중이지만 가족 단위 투숙객을 겨냥한 인근 저렴한 모텔들은 2008년 경기침체 이후 극빈층의 임시거주지로 용도가 변경됐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이라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남의 집에 얹혀살거나, 차에서 먹고 자거나, 모텔에 주 단위로 투숙하는 소위 ‘숨은 홈리스’(Hidden Homeless) 현상이다. 숀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2번 국도 주변 퇴락한 모텔 매직 캐슬을 로케이션으로 삼아, 디즈니 월드 지척에 살면서도 디즈니 월드와 가장 멀리 떨어진 세계에 속하는 여섯 살 소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친구들의 여름을 지켜본다. 아직 10대 티를 벗지 못한 엄마 핼리(브리아 비네트)는 하루 38달러의 방값과 다음 끼니가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처지다. 그러나 말썽쟁이 무니에게 알록달록한 모텔 동네와 기념품 가게들은 신나는 놀이터고 교육의 부재는 무한한 자유다. 소녀는 관광객에게 잔돈을 얻어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이 하나도 슬프지 않다. 엄마끼리 친구인 아래층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 이웃 퓨처랜드 모텔에 새로 이사 온 잰시(발레리아 코토)와 삼총사를 이룬 무니는 어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부류의 꼬마다. 자동차 창에 침 뱉기 게임을 하고,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가 두꺼비 집을 내리고, 일광욕하는 아줌마를 놀리며 뛰어논다. 말할 나위 없이 한 발 떨어져 보면 아이들의 일상은 위험투성이다. 국도에는 자동차가 질주하고, 수풀에서는 악어가 나올지도 모르고, 공사가 중단된 주택단지에선 뭐가 떨어질지 모른다. 수상한 취향의 뜨내기 아저씨가 노는 아이들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무니의 매일은 여름 캠프처럼 즐겁지만, 엄마 핼리는 생계를 점점 위험한 방법에 의지하게 되고 이는 여름의 파국으로 이어진다. 

보호자들이 돈을 버는 사이 본의 아니게 모텔 아이들의 안위를 챙기는 역할을 맡은 사람은 매직 캐슬의 관리인 바비(윌렘 데포)다. 관광 모텔이 빈민 레지던스로 변하면서 모텔 매니저인 그는 업무 내역에도 없는 ‘생활주임’ 노릇을 한다. 투숙객들은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의지한다. 숀 베이커 감독은 이 사내를 가부장적 시혜자로 만들지 않는다. 모텔 주인의 피고용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명백히 인식하면서도 무니 모녀가 최악의 상태에 떨어질까 반사적으로 경계하는 바비는 수호천사도 선한 사마리아인도 아니고 그저 다른 인간의 곤경에 감응하는 인간이다. 모녀를 염려하지만 도울 길이 무망하다는 점에서 그는 관객의 대리자이기도 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부산한 일과를 마친 그가 어스름을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찾아온다. 바비가 첫 연기를 작은 한숨처럼 내쉬자 모텔 복도 외부 등이 일제히 들어오는 순간은, 이 남자가 ‘매직 캐슬’을 지키는 소박한 마법사임을 말하는 매직 아워다. 

바비는 관객의 대리자일 뿐 아니라, 사회 주변부에서 겨우 생존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감독이 택한 윤리적 포지션도 암시한다. 우선 미국 영화에서 거의 재현되지 않는 극빈층 아웃사이더의 삶과 그들의 생활공간, 그들이 매일의 빵을 얻는 지하경제는 숀 베이커 감독이 줄곧 이끌리는 소재다. 2012년 작 <스탈렛>은 샌 페르난도 밸리의 백인 포르노 배우가 노년의 여성과 맺는 우정 이야기였고 바로 전작 <탠저린>은 매춘으로 먹고사는 트랜스우먼 친구 둘의 크리스마스이브를 그렸다. 이와 같은 소재에 접근하면서 숀 베이커 감독은 외부자로서 취하기 쉬운 분노나 동정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내려다보지 않고 옆자리를 지키며 그들의 삶에 내재한 아름다움과 어두움을 그대로 파악하고자 한다. 궁핍한 삶에서 방점은 궁핍이 아니라 궁핍이라는 조건을 수반한 삶에 있어야 한다고 숀 베이커의 영화는 믿는다. 예컨대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도입부에는 무니가 침을 뱉은 차의 주인이 따지러 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내키지 않는 투로 무니의 손목을 끌고 간 엄마 핼리는 피해자 아주머니와 벌 받는 아이들을 구경하다가 아주머니도 처지가 딱해진 딸 대신 손자를 키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담배를 나눠 피는 두 여자 사이에는 어느새 미묘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이 아이들을 보라!”는 계고의 메시지와 거리가 멀다. 숀 베이커의 시나리오와 카메라는 가난한 어린이의 가난에 집중하는 대신,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환희와 활력을 놓치지 않는다. 동시에 그들의 객관적 궁지도 직시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극 중 개인도 천사와 악마로 만들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선한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절망을 착취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입증한 바 있다. 핼리는 누가 봐도 훌륭한 엄마가 아니다. 부분적으로 무책임하며, 어리석은 선택도 한다.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팔려고 어린 딸과 함께 호객하고, 매춘을 위한 프로필 사진 촬영을 딸과의 놀이로 만들어버리는 핼리의 행동은 충분히 우려스럽다. 그녀가 딸에게 선물하는 사치는, 좀 더 고급스런 모텔의 아침 뷔페에서 누리는 도둑 포식이다. 숀 베이커 감독은 핼리를 변호하지 않으나 이 캐릭터를 판정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핼리를 한심해 하면서도, 이 어린 엄마가 무니에게 최고의 친구이며 무니를 온 세상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사필귀정이라는 안도감과 모녀가 헤어지는 일은 옳지 않다는 감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영화의 최선은 때로 관객 안에 진정한 갈등을 심는 것이다.

전작 <탠저린>을 아이폰 5S로 스크린에 손색없이 아름답게 촬영해 화제를 모았던 숀 베이커는 ‘아이폰 감독’으로 세상에 기억되는 일을 방지라도 하듯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35밀리 필름으로 찍었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의 <사일런트 라이트> <포스트 테네브라스 럭스>를 촬영한 알렉시스 사베가 카메라를 담당했다. 실제 로케이션에서 촬영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프레임은 연보라와 오렌지, 플로리다의 환한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혹자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현실의 어둠과 배치되는 컬러의 역설에서 찾겠으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숀 베이커는 그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장소의 공기를 주민의 눈으로 포착할 줄 안다. 저예산 영화 다섯 편을 만들며 세트 없이 인물의 생활공간에서 영화적 긴장을 발견해 온 경험은 그의 커다란 자산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많은 숏은 성인의 허리께에 오는 아이들의 눈높이로, 순진한 흥분과 거기에 무심한 세상의 압도적 사이즈를 전한다. 그러나 숀 베이커는 특정 스타일에 고착하는 감독은 아니다. 존재감이 엷고 기동성 높은 스마트폰 촬영으로 비전문 배우의 거침없는 연기를 따라잡고 부추겼던 <탠저린>과 대조적으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주의 깊은 블로킹과 프레이밍이 만들어 낸 숏으로 지지된다. 어린 배우들로부터 의도한 결과를 끌어내는 데에 실용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뇌관인 무니 역 브루클린 프린스의 연기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널리 회자될 터라 여기서는 말을 아끼기로 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공개된 후 프린스와 자주 비교되는 대상은 최연소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됐던 <비스트>(2012)의 크반자네 왈리스인데 왈리스가 아이로서 존재를 그대로 카메라 앞에 드러내는 연기를 했다면 브루클린 프린스의 그것은 타고 난 배우의 철저히 리허설 된 연기다. 이런 영악한 속성이 스스로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믿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무니라는 소녀의 성격과 조화롭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내 관객을 이끌고 무니의 세상을 기웃거리고 뛰어다니던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마지막에 이르러, 마치 지금껏 한 번도 달리지 않았던 것처럼 달려나간다. 질주인지 비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미지 앞에 떨면서 나는 딱 한 가지만 잊지 않으려고 했다. 예술이 세계를, 예술가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료 인간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좋은 방법을 아는 영화를 방금 봤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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