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주목 이 한편의 영화] 방은진 - 감독

by.오동진(영화평론가) 2015-11-02조회 2,238

이번 <영화천국>이 주목하는 영화는 방은진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집으로 가는 길>이다. 이 영화는 2013년 12월 11일 개봉해 전국 누적관객 185만 4625명(영진위 통합전산망 집계)을 동원했다. 2004년 10월 30일 프랑스 오를리 국제공항에서 마약을 운반한 혐의로 검거된 30대 한국인 주부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불러 모았으며, 감독으로서 방은진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방은진 감독과 오동진 평론가가 함께한, 유쾌하고 솔직한 영화 속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오동진(이하 ‘오’) <집으로 가는 길>이 개봉하고 10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이 작품에 대한 잔상이 남아 있나?

방은진(이하 ‘방’) 이 영화가 세 번째 연출작인데, 작품마다 잔상이나 여운을 느끼는 기간도 달랐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크랭크인에 들어가 극장에서 개봉하기 전까지가 가장 강력하게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는 시기인 것 같다. 모든 감독이 그렇게 느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영화가 극장에서 사라지면 무언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느낌까지 든다.(웃음)

현재 일본에서 상영 중이다. 국내 개봉의 연장이라고 생각되는가? 아니면 새로운 영화를 개봉하는 기분인가?

일본에서는 <마르트니크부터로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8월 28일에 개봉했다. 일본의 주요 10개 도시에서 먼저 상영하고 이후 지역 상영으로 옮겨지는데, 현재 한창 상영 중이고 작품에 대한 평가나 관객 반응은 개봉 후 3개월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하더라. 여러 가지로 한국과 다른 점이 많아 새로운 영화를 개봉하는 기분이 더 큰 것 같다. 앞서 <용의자X>(2012)도 일본에서 개봉했는데, 신기하게도 <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獻身>(니시타니 히로시, 2009)보다 더 재밌게 봤다는 일본 관객의 반응을 많이 접했다. (‘오’ <용의자 X의 헌신>보다 방 감독의 <용의자X>가 영화의 색감이나 느낌이 더 강렬했던 것 같다.) 사실 원작은 <용의자X>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봤다. 콘티를 구성할 때가 되니 원작과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장면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처음 원작을 봤을 때에는 ‘별로네’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가 영화를 찍고보니 ‘역시 원작이 잘 만들어졌네’ 하는 마음이 들더라.(웃음)

<집으로 가는 길>은 분명 감독 방은진에게 새로운 실험, 혹은 도전이었다. 감독으로서 여러 작품을 연이어 연출할 경우 가장 쉬운 길이 자기복제나 동어반복이다. 장르적으로도 그렇다. 사실 첫 작품 <오로라공주>(2005)와 두 번째 작품 <용의자X>로 봤을 때 유사한 장르로 비교적 수월하게 세 번째 작품을 연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이전의 작품과 비교해 전혀 다른 장르이기도 하고, 구성이나 표현 면에서도 전혀 다른 질감으로 연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언어와 제작 시스템이 전혀 다른 해외에서 이전과 다른 스타일의 연출을 했다는 도전 정신을 높이 사고 싶다.

사실 세 번째 연출작을 해외 로케가 필수인 <집으로 가는 길>로 선택한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 영화의 제작 전, 기획안과 초고가 완성된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이 영화를 유럽에서 찍어야 하는데,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해외 촬영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집으로 가는길>을 통해 해외의 영화제작 시스템과 프로덕션, 스태프들과의 협업에 대해 알게 됐다.

대한민국의 소외된 가족에 대한 묵직한 시선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집으로 가는 길>은 의도적인 시선의 분산이 눈에 띈다. 기본적으로 해외에 구금된 송정연(전도연 분)의 시선을 따라가지만 또 한편으로 한국에 남겨진 남편 김종배(고수 분)의 비루한 삶도 따라간다. 통상적으로 영화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이 영화는 그런 부분에서 균형을 잘 잡고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것도 일종의 모험이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여자주인공 송정연의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에 남겨진 남편 김종배의 감정선은 많이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한국인 주부가 머나먼 타국에서 검거됐을 경우 그의 남겨진 가족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도 클 것이다. 연출하면서 둘 사이의 시선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면에서 아쉬운 부분도 남아있다. 하지만 영화 개봉 후 내가 멘토로 생각하는 이창동 감독에게서 영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서 위안이 됐다.(웃음)

도미니크 교도소에 수감된 송정연의 모습을 보다 ‘심하게’, 다시 말해 상업영화로서 관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구사할 수 있었음에도 무척 무덤덤하게 표현했더라. 결과적으로 적정한 감정선을 유지한 것이 현실감을 높여주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장면뿐 아니라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영화를 연출하는 데 감정의 극대화 등 관객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장치도 필요했을 것이다.

동의한다. 사실 영화에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다. 하지만 많이 잘라냈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은 편집이나 연출 스킬을 통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 10분 이내면 개봉 영화관의 상영 횟수에는 영향이 없다고 하더라. 그 시간 내에서 편집을 최소화했다.
이 영화를 통해 영화의 호흡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아무리 높아도 막상 현장에 오면 예정에 없던 부분에서 욕심이 생기고 제작에 변경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호흡에서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러한 편집 문제로 제작사와 설왕설래했다.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감독으로 살아가기
이해한다. 난 방송사(YTN) 기자 생활을 했었는데, 뉴스리포트도 정확히 1분 30초로 편집해야 한다. 뉴스도 그런데 감독이라고 왜 편집에 대한 강박이나 주변의 압박이 없겠나.

오히려 러닝타임을 단축해야 한다는 압박은 없었다. 그것보다는 현장 편집본에 대한 중간 확인을 요구하는 게 힘들었다. 앞서 얘기했듯, <집으로 가는 길>은 해외 촬영이 많았는데 그 바쁜스케줄 속에서 이틀 간격으로 편집본을 한국에 보내달라고 하더라. 현장에서 촬영하기도 바쁜데 그들의 요구에 맞게 확인용 편집본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편집할 시간이 없으니 10회 차마다 보내겠다. 편집을 못해서가 아니다. 순서 붙여놓은 것만 확인하고 영화의 호흡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받는 게 싫다.”고 했다. 결국 나의 의견이 관철됐지만, 영화제작 환경에서 감독의 성역이라는 게 없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에는 촬영본은 감독과 촬영감독만이 확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영역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누구나 현장에서 그날 촬영된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의견을 내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늘 현장에서 감시하고 보고서 올리는 사람도 있다.(웃음) 그러면서 감독이 중간에 교체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너무 심하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감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기는 더 심하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예정과 다르게 진행되면 최소 일주일 전에 회의를 해야 한다더라. 물론 감독의 편집권도 없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 비하면 한국의 제작 시스템은 고마운 점도 있다. 우리나라 영화는 산업화의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고유의 제작 방식도 남아 있어 충돌하는 과도기적 시점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집으로 가는 길>은 BEP(Break-even Point, 손익분기점)를 넘겼나?

앞서 두 편의 영화는 넘겼는데, <집으로 가는 길>은 BEP를 넘기지 못했다.

이를 영화계에서는 흔히 ‘내상을 입는다’고 표현한다. 물론 창작자인 감독이 겪는 여러 가지 감정을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집으로 가는 길>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고 해서 큰 내상을 입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흥행 여부를 떠나 방은진 감독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부터 상업영화로 데뷔했기 때문에 흥행이 되지 않을 경우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남의 돈으로 영화를 찍는데 그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랄까?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잘못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자책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집으로 가는 길> 이후 많은 생각을 했다. 이영화는 ‘가족’이라는 보편타당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답답한 현실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이야기다. 그것이 관객을 설득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감독의 책임도 있다. 더불어 마케팅적 측면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변호인>(양우석, 2013)과 <용의자>(원신연, 2013)가 개봉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억울함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홍보했다면, 이 두 영화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영웅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감독과 배우, 그 경계에서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는데, 매 작품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방’ 동어반복을 안 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고맙다.(웃음)) 투자와 제작, 배급, 상영이 수직 계열화해 있는 상업영화계가 동어반복을 부추긴다는 의미다. 방은진 감독 본인은 조급하게 느낄지 모르나 보폭, 다시 말해 작품 자체뿐 아니라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간격도 무척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드라마를 이끌어내는 힘은 있지만 신파적인 감성과 같은 감정의 호흡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집으로 가는 길> 이후 연출에 관록이 생긴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어렵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웃음) 그리고 여전히 대중에게는 배우 방은진이 각인돼 있다. 지금도 “연기는 안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실 감독으로 데뷔한 후 배우 활동은 <미쓰 홍당무>(이경미, 2008)가 유일하다. 연기도 연출과 마찬가지로 할수록 어렵다고느껴진다. 연출을 하면서 배우들이 위대해 보이더라.(웃음) 감독은 배우를 발굴해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의 전도연도 이 배우가 그동안 가지고 있지 않던 새로운 모습을 끌어내어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송정원이라는 인물을 덤덤하게 연기해줘서 무척 고맙다.

작품의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오로라 공주)-남자 주인공(용의자X)-여자 주인공(집으로 가는 길)이다. 주인공에 자아를 많이 투영하는 편인가?

일반적으로 오해하는 것이 여자 감독이기 때문에 여자의 심리를 잘 알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배우를 할 때에도 그랬고, 연출 현장에서도 그렇고 사실 남자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오히려 남자 배우들에게 나의 자아가 투영된다고 할까?(일동 웃음)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용의자X>를 통해 류승범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그 이유는 류승범 스스로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감독의 디렉션에 정확히 맞추어 재단된 연기를 한 첫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혀 다른 류승범의 모습이 나온 것이다. 배우 경력을 가진 감독으로서 욕심일 수도 있지만 늘 내 영화를 통해 배우가 빛나게 하고 싶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류승범이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못 탔다는 것이다. (일동 웃음) 내가 배우를 할 때 현장에서 느꼈던 소망이나 바람, 이런 것을 현재 배우한테 투영한다고 할까.

감독 방은진, 끊임없이 진화한다
본인이 감독을 하고 본인이 주연을 맡을 생각은 안 해봤나? 

감독으로 데뷔했을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죽기 전에 그런 작품 한 편은 만들어보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다. 난 배우로서 스타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 입지를 확실히 다진 감독도 아니다. 애매한 위치다. 그렇지만 배우출신이기 때문에 그것을 교두보 삼아 연출을 하고 있는 조금 다른 종류의 감독인 것은 확실하다. 연기보다는 연출이 우선이다.

언젠가 내가 “<오로라 공주>에서 배우 겸 감독 방은진을, <용의자X>에서 감독 겸 배우 방은진을, <집으로 가는 길>에서 감독 방은진을 보았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우리는 방은진이라는 배우를 잃었지만 방은진이라는 감독을 얻었다.

무척 감사한 말이다. 곧 출판될 책에도 그 내용을 썼다.(웃음) 더불어 나에게 “방은진의 걸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라는 말도 했었다. 그것이 나에게 굉장히 큰 위로와 희망이 됐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까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어떤 영화를 떠올릴 때 그 영화의 감독을 기억하는, 그리고 그 영화가 출연 배우의 대표작이 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여전히 가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 대해서 깊게 성찰하게 된 순간이 배우였을 때가 아니라 연출자가 되면서부터였다. 연출을 하면서 삶의 너비가 훨씬 더 증폭됐고,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됐다. 인간적으로 한층 나를 성숙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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