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주목 이 한편의 영화] 임필성 - 감독

by.이용철(영화평론가) 2015-10-30조회 2,441

기록 및 정리 민병현 전략기획팀 min@koreafilm.or.kr 
사진 이준구 포토그래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철(이하‘ 이 ’) 일단 원전 이야기부터 진행하기로 하자. <심청전>의 심봉사와 마찬가지로, <마담 뺑덕>의 학규(정우성)는 아내나 딸 청이(박소영), 덕이(이솜)에게 하는 행동으로 미루어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다. 비극은 학규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임필성(이하‘ 임 ’) 내가 각색을 많이하긴 했지만, 장윤미 작가의 원작 시나리오가 흥미로웠다. 한국고전 설화는 대부분 그 시대와 전통적 남성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영화를 준비하면서 <심청전>을 다시 찾아보니 무척 서늘한 이야기더라. 딸이 팔려가는 것을 방조하면서 뺑덕어멈과 어울리는 상황이 무책임한 한국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심봉사는 곽씨 부인과 20년을 지냈지만 아이가 없다. 그게 일종의 성적인 느낌을 주더라. 눈을 잃는다는 게 남성성의 상실처럼 읽힌다. 학규도 눈이 먼 후 무기력하고 쇠락해 보인다. 반대로 눈을 되찾기 전 갑자기 생기를 되찾은 듯 말한다. 

동의한다. 종이에 손을 베어 피가 나도 끔찍하게 느껴지는데, 눈이 안 보인다면 오죽하겠나. 더군다나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탐미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이자 교수에게 실명이란 치명적이다. 폭주하며 달리던 사람이 시력을 잃었을 때 어디까지 퇴락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수컷의 본질적인 어리석음이랄까.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결국 욕망을 끝까지 좇으면 이런 대가가 따를 수 있다는 우화적인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덕이 캐릭터로 넘어가보자. 원작의 뺑덕은 못된 여자다. 그런 그녀를 왜 주인공으로 삼았나. 

<심청전>의 현대적인 각색이라는 기획을 제안받았을 때부터 뺑덕에 큰 관심이 갔다. 사람들은 뺑덕이란 캐릭터를 잘 모르지만, 그녀는 남자에게 해를 입히는 상징적인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영화는 ‘뺑덕이 악녀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그 이야기를 단순히 19금이 강조된 막장 드라마가 아닌 멜로로 만들고 싶었고, 덕이를 생각하면서 로만 폴란스키의 <테스>(1979)를 많이 떠올렸다. 자연주의적인 배경에서 시작해 관객 모두가 아는 원형적인 내용을 따라가다 파격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방식을 택했다. 


덕이는 가난한 여성이다. 그녀가 여대생들 사이에 초라하게 서 있던 장면이 슬펐다. 한창 대학에 다닐 나이지 않은가. 원전의 심청은 착한 심성으로 가난을 극복하는데, 영화의 덕은 가난으로 인해 죄를 짓는다. 

놀이동산에서 덕이는 학규에게 “교수님이세요?”라고 물어본다. 그녀는 그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다시 말해 안전하지만 지루하고 답답한 세계에 갇혀 있는 존재다. 그런 상황에서 미남인 동시에 야성미도 있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학규가 등장한다. 그녀에게 그는 미지의 남자다. 젊음과 미모라는 무기를 지닌 덕이는 그것을 일종의 돌파구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 한다. 너무 순수하기 때문에 욕망과 욕정,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원전은 전국적인 축제로 끝난다. 전국의 봉사들이 눈을 뜨는(웃음). <마담 뺑덕>의 엔딩을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진 않다. 어떤 평론가가 “안구 이식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 어떤 분은 이 영화는 SF영화라고도 했다.(웃음) 감독으로서 판타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무책임해 보일 수 있겠지만, 고전설화를 바탕으로 미친 사랑에 대한 우화를 만들려 한 영화에 그런 리얼리티가 필요할까 생각한다. 결론은 비극도 희극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서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실 결말을 여러 가지로 준비했다. 예컨대, 학규가 눈을 뜬 후 덕이를 찾아갔는데 평범한 남자와 아이를 낳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쓸쓸히 돌아가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완전한 비극 아닌가? 그럼에도 결론적으로는 관객들이 복잡하고 심난한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나오길 바랐다. 


<심청전>은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전작들을 봐도 관객들이 웃으며 볼 여지를 잘 안주는 것 같다. 감독의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나? 

그 점이 아이러니하다. 단편인 <슈퍼 덕후>나 옴니버스 장편인 <인류멸망보고서>의 에피소드들에도 코미디적인 요소가 상당했다. 사실 <마담 뺑덕> 전에 코미디 영화를 준비 중이었다. 유명 배우도 캐스팅됐고, 이제는 <국제시장>으로 흥행 작가가 된 박수진 작가도 합류해 있었다. 가벼운 미국식 코미디였다. 하지만 내가 만든다고 하니 투자사에서 아무도 안 믿더라. 모두들 이렇게 진행해 투자를 받고 분명 작가영화적인 코미디를 만들 것이라고 의심했다.(웃음) 요즘 한국 사회가 너무 피폐하고, 호러 수준의 사회문제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나 역시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진행되지 못했다. <마담 뺑덕>은 지금까지 작업한 장편영화 중 가장 예산이 적게 들었지만 가장 즐겁게 작업한 작품이다. 현장에서 분란도 전혀 없었고, 배우나 스태프들과의 합도 잘 맞았다. 분명 감독의 고유한 세계관이라는 것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변하는 것 같다. 작품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유연해진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론 어떤 장르라도 더욱 더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심청전>을 해석한 현대 작가는 최만식, 최인훈, 오태석, 이청준, 황석영 등 한두 명이 아니다. 그들의 작품에서 대체로 유사한 부분이 있다. 청이 결국 밑바닥 여성으로 살게 되는, 즉 비극적으로 결말을 맺는다는 점이다. 현실에서의 구원은 요원한 듯이. <마담 뺑덕>은 다르다. 덕이는 사랑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와 편집할 때 논쟁이 많았다. 나는 청이가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이와 학규가 이어지면서 서로의 욕망과 사랑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서, 자신의 자아를 어렵게 찾은 청이가 일종의 비공식적인 심판을 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청이가 모든 사람을 망가뜨리는 결말을 짓고 싶지 않았다. 원래 시나리오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청이가 멀리서 바라보면서 짠한 표정으로 차 타고 가버리는 것이 결말이었다. 일방적인 희생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본인들이 취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붙잡는다는 쪽이었다. 


사실 덕이는 악녀라기보다 실수를 저지른 것에 가깝다. 청이의 행동은, 덕이가 저지른 실수에 윤리적인 균형을 잡아준다는 느낌이 든다. 

동의한다. 그런 균형을 잡고 싶었다. 한국의 일반적 서사에서 여자에게 취하는 입장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려 했다. 덕이는 학규의 눈이 급속도로 멀게 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학규가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만, 덕이는 자기 육체를 이용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을 멀게 한다. 이 남자가 눈이 멀면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것은 일종의 애증관계이고, 그것이 사랑에 대해서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둘의 사랑의 관계, 그 파괴성이었다. 


이제 영화로 돌아가보자. 정사신은 처음인가? 

장편영화에서는 처음이다. 1999년 <베이비>라는 34분 짜리 단편 성장영화에 정사 신이 있었다. 찍기가 힘들었는 데, 공교롭게도 그 부분만 필름의 현상 사고가 나서 다시 촬영했다. 그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준비를 많이 했다. 


요즘 영화들의 정사 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옛날 한국영화의 정사 신에 길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웃음) 일단 몸매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이기는 하나 너무 기교적이고 매끈해 감정이입이 잘 안되더라. 

영화 개봉 후 ‘19금 영화의 전문가’라 불리는 김형석 전 <스크린> 편집장으로부터 정사 신에 대해 극찬을 받았다.(일동 웃음) 오히려 여자 관객들이 신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다. 정우성이라는 배우 덕분이라고 본다. 
그런 외모, 몸매를 가진 남자가 드물지 않나.(웃음) 하지만 나는 감독으로서 정우성을 실제 학규로 믿어야 했고, 굳이 교수 정우성을 전형적인 보통의 평범한 교수 이미지로 낮출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관객이 이 장면을 더 야하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시사 후 반응을 보니 30대 이상의 관객들이 더 야하게 느끼더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렇게 관능적인 신이 펼쳐지다 여주인공 덕이가 돌변하는 것, 정사 신 자체에 찬물을 끼얹는 묘사들이었다. 순수한 사랑의 대상이 두려운 존재가 될수도 있다는 것만큼 남자가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묘사 자체가 노출의 강도에서 지나치진 않았나 생각하긴 했다. 영화 중후반에 학규의 애인과의 정사 신은 짧아도 되지 않았나 싶다. 


영화에서 덕이와 청이 모두 복수를 하고 있다. 덕이의 복수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청이의 관계를 고려해볼 때 청이의 복수는 동기가 약하다. (극장판에서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청이가 덕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복수한다고 봐야 하나. 

원래는 그 구조가 강했다. 덕이와 청이도 정신적인 동성애 관계로 설정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많이 삭제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두 배우와 연관 지어 답변해야겠다. 배우를 억지로 변화시킬 수는 없겠더라. 덕이 역을 맡은 배우 이솜은 감성적인 천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감성이 무척 뛰어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파괴적인 캐릭터는 아니고 실제로 나이도 어리다. 청이 역을 맡은 박소영 역시 연기력도 좋고 매력적인 외모지만 현재 고등학교 3학년생이다. 이 친구가 영화를 모두 이해했을지언정 이 친구에게서 관능성을 끌어내기엔 죄책감이 들더라. 실제로 굉장히 모범생이고, 미래에는 야성적 이미지도 표출할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겠지만 현재 나이에 이 영화를 위해 간접경험을 시키는 것이 불편하더라.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관능적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고, 이것을 정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꿨다. 


덕이의 대사 중 “쓸쓸한 사람은 회전목마를 탄다”는 게 있다. 덕이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마지막으로 볼 때 떠올리는 것은 회전목마를 탄 자기의 모습이다. 

일종의 꿈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을 찍으려고 영화를 만든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영화 전체를 함축한 장면이다. 이 부분이 아름답게 잘 찍혔기 때문에 뿌듯했다. 찍기 어려운 장면인데 6시간 만에 찍었다. <황해> <추격자> 등에 참여한 이성제 촬영감독이 찍었는데, 굉장히 섬세하고 여성적인 분이더라. 그런 정서적 방점을 찍는 장면에서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마침내 학규는 덕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덕이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 들어간 거다. 자기 눈으로 자기를 본다는 것, 의미심장하다. 

어떤 관점에서는 충격적인 면도 있다. 학규는 기본적으로 탐미주의자다. 작가로 설정되어 있고, 학규가 시력을 잃은 후 쓴 소설을 보며 최고라고 덕이가 말하는 장면에서 보듯, 그는 극단으로 가야 저력이 나오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신에서 우성 씨에게 요구하기를, 연민도 있지만 눈으로 직접 상대방을 보는 것에 대한 설렘도 함께 표현해달라고 했는데, 이것은 학규의 성장과도 관련이 있다. 참혹한 과정을 거쳐 죗값을 치렀지만, 결국 덕이 앞에 섰을 때의 학규의 심정은 어떨까? 그리고 그 여자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을 때의 복잡한 심정은? 두배우가 깊은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해줬다고 생각한다. 


평론가들이 뽑은 베스트 영화 리스트에 <마담 뺑덕>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흥행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당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거나, 관객이 이해를 못하거나, 애초부터 저주받은 감독. 스스로 어떤 감독이라 생각하가?

세 개 모두 해당된다.(일동 웃음) 하지만 난 운이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남극일기>는 매우 어두운 영화고, 최근엔 판타지 장르가 대중에게 익숙하지만 <헨젤과 그레텔>도 어렵게 촬영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도전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개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비평과 흥행 측면에서 기대에 못 미쳐 참담한 심정이었다. 이후 해외 영화제에서 상도 여러 차례 받고 권위 있는 매체에서 높은 별점도 받았으나 기분이 풀리지 않더라. 
지금은 그렇다. 흥행이 잘되면 당연히 좋겠지만 내 영화를 이해해주는 소수의 비평가, 관객이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친한 동료 감독이 흥행에 성공하면 솔직히 질투도 느꼈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마담 뺑덕>은 개인적으로 상업영화의 접점에서 최선을 다한 작품이다.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지만 이 경험들이 소중하고 제작 과정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송강호, 정우성 등 당대의 훌륭한 배우들과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영화감독으로서 일부 메이저사들에 의해 주도되는 한국영화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작가영화, 혹은 예술영화 감독들에게는 고난의 시대일 수 있다.(웃음) 하지만 독특한 개성과 창의력이 있다면 영화는 만들어지고 개봉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후배들이지만 연상호 감독, 나홍진 감독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소위 ‘미친’ 감독들이 있지 않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창작자 고유의 개성이 점차 중요성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를 보면 감독과 주연배우 크레디트에 앞서 모든 부분투자자의 이름까지 나온다. 물론 그들이 없다면 영화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산업이 너무 자본 중심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영화의 산업적 토대가 형성된 것은 2000년대 초중반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지구를 지켜라> <장화홍련>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의 분위기에서는, 과연 이러한 영화들을 데뷔작 혹은 후속작으로 찍는다고 했을 때 투자가 쉽게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올해 감독 데뷔 10년차가 되었다. 차기작은? 

오랫동안 <악의 꽃>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정우성 씨와 함께 기획 중인 영화도 있고, <적赤>이라는 국립무용단의 한국무용 공연도 6월에 무대에 올린다. 확실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감독으로서 태도가 완전히 바뀌거나 타협하는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것이 장편 데뷔10년차를 맞으며 확실하게 깨달은 점이다. 관객들의 전반적인 사랑을 받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지만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 영화의 밀도를 높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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