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최운봉 - 배우 - 식민지 남성의 우울

by.이화진(한국영화사 연구자) 2015-07-29조회 1,219

최운봉(崔雲峯, 1914(?) ~ ?)의 공식적인 영화 이력은 최초의 조선어 발성영화 <춘향전>(1935)의 단역으로 출발한다. 원래 그는 기술 분야에 뜻을 두고 영화계에 입문해, 경성촬영소의 <홍길동전 후편>(1936)의 촬영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1938년 방한준 감독의 <한강>에서 한강 뱃사공 중 한 사람으로 출연하면서부터 배우로 전향해, <도생록>(1938), <국경>(1938), <귀착지>(1939) 등으로 점차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나갔다. 

실질적인 데뷔작 <한강> 이후 최운봉이 주연급 연기자로 이름을 알린 영화는 최인규 감독의 <국경>이다. 여기서 그는 빚쟁이에 몰려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밀수를 하고,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해 귀향한 날 과실치사(過失致死)로 징역을 살게 되는 ‘세림’ 역을 맡았다. 국경지대의 음울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했던 이 영화는 일본에서도 호평을 얻었는데,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는 ‘영자’ 역을 맡은 김소영에게 집중되었을 뿐 최운봉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해 방한준 감독이 정비석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성황당>(1938)에서는 산에서 숯을 구우며 살아가는 ‘현보’ 역을 누구보다도 잘 소화하며, 그때까지 출연작 중 가장 좋은 연기였다는 호평을 얻었다. <국경>과 <성황당>에서 그가 맡은 배역의 이미지는 자신이 속한 세계(‘고향’ 혹은 ‘자연’)가 외부의 폭력에 위협당한 선량한 사람이었다. ‘애인’이나 ‘아내’를 빼앗아가는 식민지 근대의 위력, 그리고 그러한 위기에 몰린 남성 주체의 무기력이란 나운규의 무성영화들로부터 이어지는 조선영화의 일관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최운봉이 연기한 인물들은 나운규의 영화처럼 그 무기력이 살인이나 방화로 이어지는 ‘피의 세계’가 아니라 운명을 받아들이거나 자연의 섭리를 믿는 ‘땅의 세계’에 존재했다. 

이러한 그의 남성 이미지는 1940년대 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박영희 원작을 안석영이 연출한 <지원병>(1941)에서 최운봉은 우울과 무기력에 휩싸여 있는 ‘춘호’ 역을 맡았다. 중학을 중퇴하고 부친의 뒤를 이어 마름 일을 하고 있는 ‘춘호’는 김 첨지의 모략으로 마름 자리에서도 밀려나고, 사랑하는 약혼녀 ‘분옥’(문예봉)과도 오해가 쌓여 궁지에 몰린다. 영화는 이러한 춘호의 무기력과 우울,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든 갈등 상황을 ‘조선인도 황군(皇軍)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춘호에게 출정(出征)의 기회를 던져줌으로써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지원병이 되어 출정 기차에 올라타는 마지막 순간 좀처럼 웃지 않는 ‘춘호’=최운봉의 얼굴에서 출정의 감흥을 읽기는 어렵다. 이 장면에서 클로즈업되는 최운봉의 표정에서는 연인과 노모(老母), 어린 여동생을 남겨두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식민지 청년의 비애를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 최운봉은 <그대와 나>(1941) <병정님>(1944) <감격의 일기>(1945) <우리들의 전장>(1945) 등 여러 편의 선전영화에 출연한다. 그러나 모두가 적극적이고 자발적이며 건강하고 명랑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그 시기에, 우울하고 무기력한 식민지 남성의 이미지는 발붙일 곳이 없었다. 법인 조영에서 남승민과 같은 새로운 배우가 부상하는 가운데, 최운봉은 조연이나 단역으로 밀려났고, 때로는 코믹 릴리프(comic relief)를 담당하는 희극적인 역할을 맡았다. 

해방 후 그는 한때 조선영화동맹에 가담하여 서울지부 집행위원으로 영화 대중화 운동에 참여했고, <똘똘이의 모험>(1946) <새로운 맹서>(1947) <마음의 고향>(1949) 등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많은 월북영화인들이 그러했듯이, 남한의 영화 제작 환경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미 그의 ‘좋았던 시절’은 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1950년 5월 정인택 원작을 영화화하는 <하얀 쪽배>에 출연할 예정이라는 기사(「<하얀쪽배> 영화화」, 「경향신문」 1950년 5월 18일 자)를 마지막으로 최운봉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한국전쟁 중 월북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월북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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