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김예리 - 배우

by.듀나(영화평론가) 2012-08-07조회 464

나는 몇 년 전부터 김예리가 얼마나 예쁜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수사를 찾고 있다. 알고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다. 김예리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그런 시도를 해봤다. 요새 유행어를 빌어 말한다면, '참 예쁜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눈에는 분명 보이는 것 같은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말하지?

몇몇 시도가 있다. 인디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 윤성호 감독은 자기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통해 “약간 화난 임수정”이라는 표현을 시도했다. 시트콤 안에서 보니까 정말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정작 임수정 팬들에게 들려주면 또 아니란다. 그들 말을 들어보면 또 그런 것도 같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여자들이 더 좋아하는 얼굴이란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이게 (어느 정도 사실을 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게 손쉬운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올바른 수사를 찾는 길은 아직 멀고 멀었다.

왜 다들 그렇게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는 걸까. 아마 우리가 기준으로 세워 맞추어놓은 “연예인스러운 외모”에서 벗어난 사람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고 자꾸 호감이 가고 신경이 쓰이면, 그를 어떻게 해서라도 정당화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특히 그 누군가가 젊은 여성이라면 말이다. 생각해보면 참 쓸데없는 짓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예리의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외모에서 순박함을 읽고 그것이 이 배우의 매력의 바탕이라고 믿는다.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지금까지 자그마치 세 번이나 북한출신이나 연변 동포를 연기한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하긴 <푸른 강은 흘러라>를 본 관객들 중 상당수는 김예리가 실제 연변 처녀인 줄 알았다지. 실제 연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물론 김예리는 그런 역할을 잘 한다. 하지만 이 배우의 매력은 그보다는 더 복잡하다. 사실 이 배우의 매력 상당부분은 “순박함”과는 무관하다. 그건 김예리가 잘 할 수 있는 역의 절반에 불과하다.

확실한 건 김예리에게서 보통 예쁜 연예인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어떤 우아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김예리의 경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들 그 이유를 배우의 경력에서 찾는다. 김예리는 한예종 출신의 한국무용전공자이고 아직도 무대에 선다. 그렇다면 정말 그건 어쩌다가 영화배우의 길에 접어든 전문 무용인의 장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겐 그런 우아함이 노골적으로 표현적인 동작들보다는 무심코 그리는 가벼운 일상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김예리의 아름다움도 거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 김예리가 연기한 이모미 알파와 베타의 매력은 동작과 자세가 예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이들은 일종의 무심한 쿨함을 공유하고 있다.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인식하지 않거나, 인식하더라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만이 가진 그 정갈한 상태.

나는 <기린과 아프리카>나 <바다쪽으로 한 뼘 더>와 같은 영화들에서 김예리가 연기했던 고등학생들의 매력도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이들은 모두 통속적인 상황(부적절한 사제관계, 난치병)에 빠진 익숙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김예리가 이들을 그리는 방식에는 진부한 신파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 연기에는 모두 정곡을 찌르는 명쾌함이 있다. 김예리는 관객들에게 불필요한 동정을 요구하지도 않고 자기 연민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감정의 폭풍 속에서도 쿨하다. 아마, 윤성호 감독이 비교대상으로 임수정을 꺼낸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바다쪽으로 한 뼘 더>의 원우는 <아이엔지>의 민아와 닮은 구석이 많다.

아마 이 글은 내가 김예리를 김예리라고 부르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 김예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배우는 지금 한예리라고 불린다. 당황스럽다. 한예리라는 이름은 전혀 다른 외모와 이미지를 가진 배우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나도 적응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 글: 듀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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