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화 단체 & 임순례 감독 인터뷰 여성을 위해, 여성을 중심으로 모인

by.황희연(영화칼럼리스트) 2019-01-04조회 1,415
임순례

바리터
장산곶매, 서울영상집단 등 다양한 영화창작 집단이 출현하던 1980년대 후반, 젊은 여성 영화인들이 모여 ‘바리터’라는 이름의 영화 공동체를 결성했다. 이들은 함께 영화를 만드는 창작 집단의 형식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첫 영화는 여성민우회의 의뢰로 만든 사무직 여성들의 이야기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 이 밖에 <우리네 아이들> <가자, 이 땅의 여성들아> 등의 작품을 함께 만들었으며 1991년 이후 활동이 중단됐다. 바리터 출신 영화인으로는 <낮은 목소리> 시리즈와 <밀애>(2002), <화차>(2011) 등의 변영주 감독, <굿바이 마이 러브, NK>의 감독이자 영상원 교수로 재직 중인 김소영 교수, 오랫동안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김선아 집행위원장 등이 있다.
여성영화인모임
2000년 4월 19일 결성된 국내에서 가장 크고 공신력 있는 여성 영화인들의 협의체다. 한국영화산업 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여성 영화인들이 좀 더 성평등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연대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모임 발족 후 매년 여성영화인축제를 개최하며 한 해 동안 활발히 활동한 여성 영화인이나 여성 중심적 시각의 영화들을 격려하고 있으며, 여성영화인 백서를 꾸준히 개정해 국내 여성 영화 인력의 현황 및 흐름을 아카이빙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밖에도 여성영화인모임은 한국 여성 감독 역사를 정리하는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2001)을 제작했으며, 여성 감독이 연출한 <밀애> <질투는 나의 힘>(2002) 등의 제작기를 담은 워크북 발간, 여성 영화인을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워크숍(프로듀서, 홍보마케팅, 프러덕션 디자인 과정 등) 개최, 해외 여성 영화인 단체와의 교류 및 협력 행사 등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서울여성영화제
1997년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라’는 슬로건 아래 격년제 행사로 처음 시작됐다. 3회 행사부터 연례 영화제로 안착했으며 올해 20주년을 맞아 ‘20주년 기념 앵콜전’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열었다. 전 세계 여성 영화인을 발굴하고 여성주의 시각을 가진 영화를 다채롭게 소개하고 있으며 국제 규모의 페미니즘 콘퍼런스와 다양한 성평등 관련 포럼을 개최한다. 세계 최고, 최대 규모의 여성 영화제답게 관객 호응이 뜨겁고, 좌석 점유율과 관객 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이 밖에도 영화제 기간이 끝난 후 아카이브 보라를 운영, 역대 상영작 중 뛰어난 작품성과 탁월한 문제의식을 지닌 화제작을 엄선해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2~3가지 주제의 강좌를 개최, 여성적 시각에서 영상을 다시 보고 탐구하는 씨네 페미니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영화계 내 성폭력 및 성차별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2018년 3월 영화진흥위원회와 여성영화인모임이 함께 설립한 한국영화 성평등 단체다. 인터넷상에서 성폭력 관련 해시태그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무렵, 이 사안에 크게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느낀 영화진흥위원회와 여성영화인모임이 영화계 내 성폭력 실태를 함께 조사하고 상설 기구를 만들자는 논의를 이어간 끝에 든든센터가 공식 출범했다. 임순례 감독과 심재명 대표가 공동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상근직으로 한유림 전문위원이 활동 중이다. 든든은 현재 영화계 내 성폭력, 성희롱 실태조사 연구와 피해자 상담, 영화 현장에서 성평등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성평등 정책 연구를 이어가 정책 제안 및 입안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심재명 센터장은 “50대 50을 모토로 삼아 여성주의 영화, 여성 감독과 제작자의 영화, 여성 주연 영화에 대한 과감한 지원을 끌어내고자 한다”고 장기적 비전을 밝혔다.
찍는 페미
영화계 내 성폭력 관련 해시태그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2016년, 사회 이슈에 중요 발언을 꾸준히 해오던 김꽃비 배우, 단편 <폐함>으로 인디계의 주목을 받은 신희주 감독, 박효선 독립영화 감독 등이 주축이 되어 SNS상에서 만들어진 페미니스트 영화인 모임이다. SNS를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던 여성 영화인들이 영화계 내 성폭력 및 성차별을 없애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이후 이들은 영상 콘텐츠계의 다양한 성폭력, 성차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한목소리를 냈으며 미투 지지 발언 등을 통해 성범죄 피해자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또 미투라는 용어를 상업적으로 악용한 <미투의 숨겨진 진실> 상영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등 영화계 안팎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INTERVIE 임순례 감독: <아름다운 생존> 그 후의 이야기
Q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감독님의 영화 <아름다운 생존>과 같은 제목의 기획전을 연다고 했을 때 먼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6인의 여성 감독에 제가 포함됐다는 게 약간 묘했어요. 다섯 분의 감독님은 현재 돌아가셨거나 은퇴한 지 꽤 되셨는데 저는 아직 현역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나이나 세대 면에서 양쪽에 걸쳐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나이와 위치에 맞는 자리매김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책임감을 좀 느꼈죠.
Q 너무 오래전 이야기지만 <아름다운 생존>이 시작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1년이면 감독님도 여성 감독으로서 한창 상업영화 진영에서 어려움을 많이 느끼던 시기였을 텐데요.
이 영화는 주로 2000년에 촬영됐어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9년, 중앙대학교 영화과 주진숙 교수님과 올댓시네마 채윤희 이사님 등 몇몇 여성 영화인이 부산영화제에서 우연히 만나 밥을 먹은 게 계기가 됐죠. “우리에게도 영화 현장이나 학계를 아우르는 여성 영화인 모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고, 그게 지금의 여성영화인모임으로 발전하게 된 거죠. 이 영화는 바로 그 여성영화인모임에서 제작한 영화인데, 한국 여성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한번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에, 저는 그전까지 한 번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본 적이 없지만 한국 여성 감독의 역사를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죠. 그때 이미 「여성영화인사전」이 만들어졌고, 제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박남옥 감독님을 발굴해 자료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죠. 박남옥 감독님은 한국 여성 영화계의 상징적인 인물인데 이 영화를 만들 무렵 마침 한국에 나와 계셔서 한 차례 만나 뵙고 다시 LA에서 만났죠.
Q 기획전에서 제일 인상 깊은 건 박남옥 감독님이 임 감독님께 보낸 세 통의 편지인데요. 두 분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두 분이 서신을 주고받게 되었나요?
A 박남옥 감독님이 원래 편지 쓰는 걸 참 좋아하세요. 처음 뵌 건 박 감독님이 일산 남동생 댁에 머물 때, 다큐멘터리 촬영차 뵙게 되었는데 만나자마자 저를 참 어여삐 여기셨어요. “넌 (몸집도 크고 힘이 세서) 내 과야, 머슴과”라며 예뻐해주셨죠. 이후 감독님과 2000년대 초부터 2014년까지 약 15년간 20~30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전시된 편지는 그 중 몇 통만 발췌한 거죠. 나중에 미국 LA 댁에 방문해서 보니까, 박 감독님이 저에 대한 기사는 물론이고 후배 여성 감독들의 기사를 모두 스크랩해 꼼꼼히 정리해놓으셨더라고요. 그만큼 영화에 대해, 후배에 대해 애정이 많으셨어요. 근데 사실 편지를 받으면 독해가 조금 어려워요. 한자와 일본어를 많이 쓰시고 글도 세로로 쓰셨거든요(웃음). 제가 조금 덜 바빴으면 편지를 더 자주 주고받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원하는 만큼 양껏 편지를 주고받진 못한 것 같아요.
Q 그런 인연이 있었다면, 작년 박남옥 감독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상심이 컸을 것 같아요.
A  2014년 무렵 뉴욕에 갈 일이 있어 박 감독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90세가 넘으셔서 그런지 육체적으로 많이 쇠약해지셨더라고요. 자서전을 쓰시면 어떨까 싶어 여쭤보니 다행히 준비를 많이 해두셨어요. 이후 따님이 정리를 잘 하셔서 책으로 묶여 나왔죠. 옛이야기를 나눠보면 감독님 기억력이 참 출중해요. 수십 년 전 이야기를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시고, 영화에 대한 애정도 무척 깊으셨죠.
Q <아름다운 생존> 이후 17년. 이제 상업영화 진영에서도 여성 감독이나 스태프 수가 부쩍 늘어난 듯한데, 변화를 실감하나요?
A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영화 현장이라는 게 남성 중심적으로 움직여요. 이건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이죠. 예전에 비해 여성 스태프가 양적으로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산업 내 비율이나 임금 비중으로 볼 때 중요 파트에선 여성 스태프의 비율이 많이 떨어져요. 이건 여전히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뚫고 나가기 어려운 부분이 남아 있다는 뜻이에요. 이런 상황은 사실 서유럽도 마찬가지죠.
Q 곧 <아름다운 생존> 2부가 나올 거라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여성영화인모임 20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다시 만들어질 것 같아요. 제가 연출하는 건 아니고 이번엔 다큐멘터리를 잘 만드는 여성 감독이 연출해야죠. 1편 땐 연출할 사람이 마땅히 없어서 제가 연출을 맡았는데 지금 다시 보면 너무 못 만들었어요(웃음). 이제 달라진 환경 내에서 현황이나 문제점을 정확히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아직 연출자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몇몇 분과 이야기를 진행 중이에요.
Q 후배 여성 감독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요즘 젊은 여성 영화학도들을 보면 정말 뛰어난 인재가 많아요. 단편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여성들이 남성보다 영화를 훨씬 잘 만드는데 이들이 상업영화계에 안착해서 성과를 거둘 트랙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보니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아요. 영화 현장의 마초적인 분위기, 남성 중심적 분위기에 정나미가 떨어져 도망치듯 나가는 모습도 많이 봤고요. 재능 있는 여성 친구들이 이런 걱정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죠. 저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지레짐작하지 말고, 겁먹지 말고, 영화계에 들어와서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라고. 앞으로 여성들이 영화계에 더 많이 들어와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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