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영화작가들! 이만희 감독편 한국영화박물관 전시유물 소개 ⑥

by.이주영(한국영상자료원 연구부) 2013-08-10조회 440
이만희

이만희 감독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집 근처의 광무극장이나 그 밖의 동화극장, 동도극장 등에서 많은 영화를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이 무렵에 본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1946)는 이 감수성 풍부한 소년에게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게 된다. 1955년 암호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연극무대에 서며 영화계 진출을 엿보았으나 여의치 않았고 그런 가운데, 그에게 영화계와 인연을 맺게 한 것은 이웃에 사는 황학봉이었다. 그는 안종화 감독의 조감독으로 이만희의 시나리오를 보자 스승에게 소개해 주었고 마침 촬영을 준비 중이던 <천추의 한>(1956)에 조감독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같은 해 안종화 감독의 <사도세자>에는 스태프가 아닌 자객으로 출연했다.

이후 안종화, 박구, 김명제 감독의 문하에서 5년 가까이 연출 수업을 받았다. 1961년 데뷔작 <주마등>을 시작으로, 여자의 유산을 탐낸 전남편 일당의 음모와 위기에서 벗어나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긴장된 흑백화면으로 이끌어낸 최무룡, 문정숙 주연의 <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는 앞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주목하게 하는 뛰어난 연출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저력은 여섯 번째 연출작인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을 통해 여실히 증명된다. 이 영화는 서울에서만 22만8000명의 관객이 들어 이후 흥행감독의 대우를 받으며 많은 작품을 연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1964년에는 장르영화 <마의 계단>과 <검은 머리>를, 1965년에는 문희의 데뷔작 <흑맥>, 1966년에는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며 신화가 된 영화 <만추>와 문예영화 <물레방아>를, 1967년에는 <기적> <삼각의 공포> <귀로> <싸리골의 신화> <망각>등 1년 동안 무려 11편을 내놓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한국영화박물관은 1975년 45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한국영화사에 선명한 족적을 남긴 이만희 감독의 유품 중 말년의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이념의 경계를 넘어 인생을 돌아보는 관조의 세계와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친필 편지와 <만추>로 받은 백마상 감독상 상패를 전시 중이다. 이만희 감독의 차녀인 영화배우 이혜영이 기증한 이만희 감독의 유품이다. 사진설명 (좌)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이만희 감독의 친필 서신. (우)백마상 최우수감독상 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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