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 최은희]신상옥 최은희를 추억하며 ① 영화에 인생 전부를 바치고 떠난 신상옥 감독

by.신영균(영화배우) 2013-06-12조회 1,061

신상옥 감독이라면 오르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살았고, 영화를 위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불사르고 떠난 사람이다. 나는 젊은 시절 한동안 그의 영화 속에 들어가 연출 작업에 몰입한 신 감독의 거친 숨소리와 정신없이 움직이는 열정적인 동작을 지척에서 지켜보며 작품 활동을 함께 한 때가 있었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그는 언제나 드라마의 빛을 좇는 불나방과 같았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위해 촬영장을 전쟁터로 만들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 소대장처럼 앞장서서 열정을 쏟았다. 북한산의 암벽 위에서 <연산군>(1961)을 촬영할 때 한쪽 눈을 감고 루페를 보며 앞으로 가다가 낭떠러지를 한 걸음 앞두고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

나 역시 연기를 하다가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다는 각오로 배우 활동을 했지만 곁에서 본 신 감독도 자신의 생명보다 영화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영화와 인생을 함께한 분이 최은희 여사였지만 최 여사의 부군 신상옥 감독은 사랑하는 아내보다도 영화를 더 우위에 두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화도령>(1963)을 찍을 때였다. 숨을 거두는 최 여사의 입술에 내가 물 한 모금을 입안에 넣어 생명을 살려내는 연기를 하게 됐을 때 감독인 부군이 눈앞에 있어서 입술을 정면으로 포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약간 비뚤어지게 닿으면 즉시 커트 처리를 하고 입술 연기를 제대로 하도록 요구했다. 수없이 NG를 내면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액션을 화면에 옮긴 것이다.

촬영 세트장에 고급 가구나 집기가 필요하면 자신의 집 안방에 있는 비싼 장롱이나 가구를 가져와 망가뜨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촬영장에서 두 끼 정도 밥을 굶고 촬영을 강행하는 때도 많았지만, 신들린듯한 영화감독의 연출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막을 사람도 없었다.

신상옥 감독은 그렇게 영화를 위해 태어나 우리 영화의 황금시대를 꽃피웠고 인생도 영화처럼 살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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