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를 거듭한 그 영화의 음악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1958)

by.이준희(대중음악비평가) 2013-03-21조회 1,610
지옥화

음반 수집가들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희귀 품목들 가운데 픽처(picture) 레코드라는 것이 있다. 소리가 녹음된 골이 있는 부분이 그냥 검은색인 보통 음반과 달리 전체 면에 그림이 입혀져 있어 보는 재미가 삼삼한 음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에 들어서야 픽처레코드가 등장했는데, 특히 1958년 전후 유니버살(Universal)레코드라는 음반회사에서 발매한 것들이 눈길을 끈다. 모두 영화 주제가를 수록하면서 그 영화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유니버살 발매 픽처 레코드 가운데 현재 확인되는 최초 사례는 영화 <지옥화>(1958년 4월 개봉)의 주제가 음반이다. 이보다 약간 앞서 3월에 개봉한 영화 <눈 내리는 밤>의 주제가도 픽처 레코드에 수록되었으나, 개봉은 늦었어도 주제가 음반 발매는 <지옥화>가 더 빨랐다. 음반의 발매 순서를 알 수 있는 번호가 <눈 내리는 밤>은 1206인 반면 <지옥화>는 1131이다. 당시 상황을 보면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지옥화>는 한 해 전인 1957년 늦여름 무렵 기본 촬영이 이미 마무리되어 있었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래서 당연하게도 주연 배우들은 시종일관 반소매 차림이다. <지옥화>의 음악을 담당하고 주제가 ‘양공주 아가씨’를 작곡한 이는 1913년에 태어나 올해 탄생 100주년이 되는 작곡가 손목인(孫牧人). ‘목포의 눈물’ ‘타향살이’ ‘아빠의 청춘’ 등 대중가요 명곡의 작가로 유명한 그에게도 영화 <지옥화>는 ‘최초’라는 의미가 있다. 주제가 작곡으로만 보면 이미 1939년 개봉작 <무정>의 주제가 ‘영채의 노래’를 만들기도 했으나, 영화의 음악을 온전히 담당하기로는 <지옥화>가 손목인의 첫 작품이었다(<무정>의 음악 담당은 당대의 평론가 김관이다). 동갑이자 라이벌이었던 작곡가 박시춘이 1940년대 말 이후 활발한 영화 관련 활동을 한 것에 비하면 꽤나 늦었던 셈이다. 그런데 손목인의 그러한 지각이 영화음악 자체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지옥화> 이후 약 10년 동안 스무 편이 넘는 영화에 음악 담당으로 참여했고, 1960년에 발족한 한국영화음악작곡가협회에서는 부회장을 맡을 만큼 열심이었다.

1957년 이전에 그가 영화음악과 별 인연이 없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으니, 바로 한국영화의 부활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던 때인 1950년대 중반을 일본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일본으로 밀항한 손목인은 거기서도 ‘가스바의 여인(カスバの女)’ 등 히트곡을 발표하며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지만(“담배연기 희미하게 자욱한~” ‘카스바의 여인’은 손목인과 관련이 없는 곡이다), 뒤늦게 불법체류가 문제 되어 1957년 7월 말에 추방 형식으로 귀국하게 된다. 5년 만에 돌아온 손목인에 대한 당시 대중문화계의 환영과 기대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귀국하자마자 8월에 유니버살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었고, 또 거의 동시에 영화 <지옥화> 작업에도 참여하게 되었던 듯하다. 오랜만에 돌아와 숨 돌릴 틈도 없이 맞게 된 그러한 요청은 손목인에게 다소 부담이 되었을 것도 같은데, 그렇게 경황이 좀 없었기 때문인지 <지옥화>의 음악은 사실 매우 단순하다. 영화 중간에 6분 정도 길게 묘사되는 실제 미군 대상 쇼 촬영 장면을 제외하고 보면, <지옥화>에 등장하는 음악은 딱 하나, 주제가인 ‘양공주 아가씨’뿐이다. 곡조 하나를 여러 장면에서 돌려쓰려다 보니, 그나마 각각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연주 형태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미군 군수품을 털어 먹고사는 건달들이 노닥거리는 장면에서는 하모니카 소리로 한가로운 느낌을 주고, 기지촌과는 어울리지 않는 순정의 인물 동식과 주디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잔잔한 연주로 언뜻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발적이고 자유분방한 양공주 소냐는 흥얼흥얼 콧노래로 주제가를 표현하고, 동식과 주디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식으로 경쾌한 하모니카 연주가 나온다. 다양한 주제가 변주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역시 소냐가 칼을 맞고 죽는 절정부라 할 수 있으니, 그 묘한 사운드는 안개 자욱한 갈대 개흙밭과 함께 치명적 매력을 지닌 요부(妖婦)의 최후를 효과적으로 부각한다. 지금 들어도 기이한 느낌을 주는 그 소리는 바로 클라비올린(clavioline)이라는 초창기 전자악기로 연주해낸 것이다. 1947년에 발명된 클라비올린을 국내에 처음 소개해 연주한 사람이 손목인이고, 손목인의 첫 영화음악이 <지옥화>였으니, <지옥화>의 음악은 아마도 한국영화에서 최초의 전자악기 사용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픽처레코드, 손목인, 전자악기 등 세 가지 최초가 겹쳐 있는 <지옥화>의 음악은, 그래서 간단한 가운데에도 다시 들어볼 만한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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