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영화]꽃미남 시대의 도래 강동원, 원빈, 현빈, 조인성

by.최은영(영화평론가) 2011-03-16조회 2,099

자고로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의 인기 뒤편에는 시대적인 기류가 흐르게 마련이다. 그 시대의 문화적인 기운에 가장 적절히 맞아떨어지는 남성상, 혹은 여성상에 부합하는 스타들은 때로 자신의 매력이나 재능 이상의 어떤 문화적인 힘의 추동력으로 인해 각광받기도 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계를 주름잡았던 남성 스타들은 더 이상 반항심과 고독감으로 점철된 과묵한 남성이 아니었다. 완소남, 꽃미남 등의 애칭으로 분류되는 최근의 남성 스타들이 발산하는 매력의 기저에는 터프함 대신에 섬세함이, 여성을 휘어잡는 대신 여성을 위해 기꺼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부드러움이 자리 잡았다. 사실 이러한 남성상의 변화는 특정한 시간적 주기를 가지고 반복되어왔다. 강한 남성적 카리스마를 뽐내는 마초와 섬세한 여성적 카리스마로 모성애에 호소하는 완소남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수없이 자리바꿈을 하며 당대의 문화적 트렌드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냈다.

90년대 멋진 남성의 기준이었던 터프함과 남자다움, 동물적 매력은 2000년대 들어 부드러운, 여성스러운 남성의 매력에 자리를 내주었다. 선이 굵고 거친 남성적 매력 대신에 여성 관객들을 사로잡은 남성 스타를 지칭하는 키워드는 단연 ‘아름다움’이었다.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꽃처럼 아름다운 남성들이 여심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높아지는 여성들의 경제적 위치와 독립적인 생활 패턴으로 인해 보호받기 보다는 보호해주고 싶은 남성들에 대한 호감도 상승과 더불어, 남성과 여성에 적용되는 미의 기준이 점점 모호해지면서, 바야흐로 ‘꽃미남’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00년대를 주름잡은 꽃미남 스타들 가운데 대표 주자인 강동원, 원빈, 현빈, 조인성은 각각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호소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강동원과 원빈이 다소 비현실적인 분위기와 외모로 인해 현실과 유리된 판타지를 제공한다면, 현빈과 조인성은 또 다른 방식의 현실 속 판타지 안에서 부드럽고 상처 받기 쉬운 남성들을 연기하면서 모성애를 자극한다.

다크 시크릿 가이 - 강동원

강동원은 엄밀히 말하면 고전적인 미남형 배우는 아니다. 얼굴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큰 눈과 작은 이목구비, 강인하기보다 늘씬한 팔다리는 강동원을 현실 세계의 남성들과 동떨어진 다소 판타지에 가까운 존재로 보이게 만든다. 강동원이 갖고 있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영화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는데, 그중에서도 여고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일으켰던 귀여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이 맡았던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 정태성은 강동원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준 원형과도 같은 캐릭터다. 이 영화 이후 그가 지닌 ‘소년성’과 ‘비극’적 아우라는 그의 커리어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이미지였다.

밝은 캐릭터보다는 어두운 캐릭터에서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는 강동원이 이제껏 맡아왔던 캐릭터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가장 평범한 역할을 찾자면 조연에 가까울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던 <그녀를 믿지 마세요> 정도가 될 것이다. <늑대의 유혹>에서도 마음의 비밀로 인해 아파하던 고교생으로 등장했던 강동원은 <형사 : 듀얼리스트>의 미스터리한 자객 슬픈 눈, 비록 목소리만 출연하긴 했지만 <그놈 목소리>의 유괴범, 꿈과 현실 사이를 헤매어 다니는 < M>의 민우, <의형제>의 남파간첩, <초능력자>의 초인 등 그야말로 다종다기한 역할을 맡아왔다. 그가 맡은 역할 중 다수는 이름이 없이 단지 별칭으로만 불린다. 이는 그가 가진 미스터리한 매력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그의 존재 자체를 판타지의 영역으로 밀어넣음으로써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형사>나 <전우치>와 같은 영화가 강동원 캐릭터의 비현실성을 극도로 밀어붙인 케이스라면, <의형제>의 남파 간첩 송지원과 <초능력자>의 초인은 같이 등장하는 상대 남자 배우의 현실적인 이미지와 대칭을 이루게 하면서 캐릭터 간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진행시킨다. 강동원의 여성스럽고 신비로운 이미지는 2000년 이후 한국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실과 판타지의 약화된 경계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년에서 아저씨로 – 원빈

지나치리만큼 잘생긴 외모로 인해 원빈은 한동안 배우이기보다는 일종의 모델처럼 소구돼왔던 스타다. <우리 형> <킬러들의 수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영화들에서 다수의 남성 캐릭터 가운데 원빈의 캐릭터가 점유했던 이미지는 성숙한 남성들과 대비되는 원빈이 지닌 순수함, 그 백치미에서 기인한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는 남자이기보다는 소년을 연상시키는 외모와 분위기로 인해 행동의 주체라기보다는 시선의 대상이 되는 역할로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그러한 원빈의 단선적인 기존 이미지에 최초로 이중성을 이식시켰다는 점에서 배우 원빈으로서는 일종의 전환점이 될 만한 영화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도준이라는 캐릭터는 영화의 중요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청년이며, 순수와 광기를 오가는 대단히 복잡한 인물이다. <마더>를 통해 원빈은 자신의 외모가 지니고 있던 한계를 일종의 가능성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원빈의 잘생긴 외모는 <마더>에서 캐릭터의 이중성을 감추는 가면과 같은 역할을 한다. 원빈이 연기한 도준은 한편으로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순간적으로 감춰진 광기를 드러냄으로써 결코 하나의 모습으로 단정지을 수 없는 입체적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마더>에서 원빈은 더 이상 순수한 소년의 이미지가 아닌, 복잡다단한 내면을 지닌 남성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마더> 이후 원빈이 선택한 영화 <아저씨>에서 맡은 역은 <마더>의 도준과 대립적인 역할임과 동시에 원빈의 성숙한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배우로서의 원빈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주었던 영화다. <아저씨>의 원빈이 맡은 역은 고독한 킬러의 전형이지만, 이러한 장르적 전형성을 넘어서는 생생한 캐릭터의 매력은 원빈이 구축해낸 것이다.

완소남과 까도남 사이 – 현빈

두드러지게 화려하거나 개성적인 외모도 아닌 그저 반듯한 남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현빈은 처음에는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연하남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과 같은 드라마에서 구축한 이러한 철없는 연하남 이미지가 현빈을 각인시킨 최초의 이미지였다면, 그 스스로가 변화를 꾀한 캐릭터 또한 처음에는 드라마에서였다. 노희경 각본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현빈이 연기한 드라마 프로듀서 정지오는 또래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며 리더십이 강한 캐릭터였다. 이후로 그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러한 두 가지의 상반된 이미지를 오간다. 세상물정 모르는 매력적인 백만장자 왕자라는 캐릭터는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지탱하는 이미지이지만, 200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현빈은 자신의 곱상하고 철모르는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 동명의 영화를 곽경택 감독이 드라마로 연출한 <친구>에서, 원작에서 장동건이 연기했던 동수 역할과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에서 참혹한 가정사로 인해 정신병자가 된 청년 역을 맡으며, 현빈은 기존의 젠틀하고 말랑말랑한 이미지가 아닌 거칠고 어두운 이미지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틀에 박힌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현빈의 노력은 김태용 감독의 <만추>와 이윤기 감독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로 일정 정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두 편의 영화에서 현빈은 백마 탄 왕자가 아닌 현실에 붙박여 있는 지극히 평범한 남성을 연기한다. 현빈은 스타 가운데에서도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비교적 뚜렷이 가지고 가는 배우다. 한편으로 캐릭터의 영역을 점점 넓혀가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타성을 잃지 않는 영리한 배우이기도 하다.

애절한 사랑의 화신 - 조인성

조인성에 대한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단연 ‘눈물’이다. 그가 연기한 작품 속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등장하며, 조인성은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사랑만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던지는 비극적인 청춘의 이미지로 스타덤에 올랐다.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에도 콤플렉스로 가득한 남자 주인공역은 조인성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사랑의 고통을 절절하게 표현하는 데 있어 조인성은 또래 남성 스타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비극적 로미오의 이미지는 그를 명실 공히 스타덤에 올려놓은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과 <봄날>, 영화 <비열한 거리>와 <쌍화점>에서 지속적으로 변주되어왔다. 캐릭터의 폭은 넓지 않으나 그가 맡은 역할 속에서 보여주는 강렬한 에너지는 그를 200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의 이미지로 만들었다.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그의 맹목적 열정은 캐릭터의 순수성을 부각하고, 이는 특히 여성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했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마저 파괴하는 조인성이 연기한 캐릭터들이 낭만적 사랑의 비극적 판타지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면, 가진 것이 많지만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나약한 청년의 이미지는 일정 정도 2000년대의 청년 세대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더 이상 공통의 이상이 없는 청년들이 겪는 공허감과 상실감이 극단적으로 사랑을 추구하는 조인성의 캐릭터 안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는 비극적 청춘의 이미지는 다소 고전적인 것이기도 하다. 제임스 딘이나 리버 피닉스가 그랬던 것처럼, 젊음은 필연적으로 우울과 열정을 동시에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인성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젊음에 대한 감정적 캐리커처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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