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기 발성영화 스타, 김소영

by.최소원(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2008-11-13조회 2,390

1913년생. 학창 시절 검은 드레스를 입고 불교연극을 하는 복혜숙의 모습에 반해 배우가 되고 싶다고 결심했으며, 1931년 <방아타령>으로 영화배우로 입문했다. 1937년 발성영화 <심청>에서 주연을 맡아 안석영 감독으로부터 ‘되도록 모나리자의 사진 같은 것을 많이 봐라’는 연기지도를 받았다는 김소영은 갸름한 얼굴과 수줍은 태도, 무대에서 훈련받은 연기가 토키 영화에 요구되는 배우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스타 대열에 올랐다. 중앙극장 청춘좌와 중앙무대 등에서 무대 활동을 병행했으며, <국경>(1939), <반도의 봄>(1941), <지원병>(1941), <너와 나>(1941) 등에 출연하며 문예봉, 김신재와 더불어 식민지기 대표적인 배우로 활동하였다. 좌익 이론가 추민과의 슬하에 1녀를 두었고, 이혼 후 안종화 감독의 <수우>(1948)를 마지막으로 무용가 조택원과 도미하여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시카고 등에서 민속무용, 춘향전 등을 공연했다. 이 시기에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를 함께 둘러본 안철영 감독은 그 내용을 「성림기행」이라는 책으로 엮어 1949년 출간했으며 현재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이 책의 첫 장에는 유니버설촬영소에서 김소영, 노먼 포스터 감독, 배우 필립 안이 안철영 감독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조택원과 결별을 한 1950년경 5년간 ‘미국의 소리(VOA, Voice of America)’ 방송의 드라마, 문화, 종교 프로그램에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존 포드 감독 등 미국영화인과 접촉하며 배우 재개를 타진하기도 했다. 이후 10년간 번역·출판회사에서 교정 일을 했으며, 1964년 미용사 자격을 따고 뉴욕에서 미용실을 개업해 운영했다. 1973년 한국으로 돌아와 토월회 창립50주년 대연극제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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