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백역사 윤성호, 2014

by.김이환(소설가,독립영화 칼럼니스트) 2015-06-17조회 5,188
백역사

남자는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약속한 주말 데이트를 꿈꾸며 여자를 찾아간다. 하지만 막상 만난 여자는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다.

영화는 ‘백역사’라는 제목에 낙천적인 결말을 암시한 듯하다. 도입부를 지켜보고 있으면 영화는 데이트에 마냥 설렌 철없는 남자가 결국 망신을 당하는 ‘흑역사’로 끝날 것 같다. 주인공은 잔업이 남은 직장에서도 눈치 없이 퇴근하고,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도 데이트 자금을 위해 가불을 부탁하다가 구박을 받는다. 여자가 일하는 중국집으로 찾아가지만 여자는 약속은커녕 남자의 얼굴 자체를 기억 못 한다.

하지만 제목이 ‘백역사’이니 느긋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남자는 철없지만 여자의 반응도 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자는 뜬금없이 남자와 사랑에 빠지더니 커플링을 갖고 싶어 한다. 이제 남자가 반지를 구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뛸수록 상황은 점점 민망해진다. 이들의 데이트는 약속대로 바다로 갈 수 있을지, 혹은 바다가 나오는 영화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는 황당한 상황의 연속이다.

영화 속 재미있는 상황들은 윤성호 감독 특유의 감성이 가득한, 냉소적이고 엉뚱한 것들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주인공의 모습 위로 음악이 깔리면서 전형적인 영화 도입부처럼 흘러가다가, 음악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장면이 이어지는 장면부터 윤성호 감독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 예매한 표를 확인하지 못해 실랑이를 벌이거나 시간을 모르자 노숙인에게 물어보는 상황 또한 그렇다.

한편으로 윤성호 감독은 그의 개성 있는 유머를 쉽고 깔끔한 화법 속에서 풀어놓고 있다. 그동안 윤성호 감독은 독특한 형식의 영화를 선보여 왔다. 이전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이나 <졸업영화> 등은 기존의 극영화와는 화법이 완전히 달랐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처럼 쉬운 화법 안에도 모큐멘터리 같은 독특한 형식을 시도했다. <백역사>는 정확한 극영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윤성호 감독의 개성이 드러나 있으며 또한 재미있다. 윤성호 감독이 코미디 자체에 재능 있으면서도 다양한 화법을 능숙하게 다를 줄 아는 다재다능한 감독임을 증명한 것이다. 주인공을 연기한 박종환 또한 개성 있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윤성호 감독의 재치 있는 연출과 배우의 좋은 연기 덕에 영화는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관객에게 유머를 선사한다.

<백역사>는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인 <오늘 영화> 속 세 편의 옴니버스 영화 중 한편이다. 영화를 소재로 삼은 <백역사>는 극장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영화를 어떤 나머지 두 편 <뇌물>, <연애다큐>와 함께 2014년 서울독립 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되었으며 세 편의 단편이 하나로 묶인 <오늘 영화>는 극장 개봉 예정이다.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