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정
Ma Ho-jeong / 馬豪政
대표분야
배우, 제작/기획
활동년대
1920

필모그래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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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호열자 (김소랑, 1920)
장한몽 (이기세, 1920)

주요경력

구황실의 나인 출신
1918년 연극인인 남편 김소랑이 취성좌를 조직하였을 때 취성좌의 부좌장겸 내정 책임자이자 배우로 활동
1917년 취성좌 창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마호정은 조선 말기에 궁내부의 나인이었는데 감원 때문에 궁에서 나왔다고 한다. 40대가 되어서야 연극에 발을 디뎠다. 취성좌에서 활동한 마호정은 단장인 김소랑이 남편이었다. 마호정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취성좌를 운영하는데 사용하였다(최창호 외; 동아일보b). 1920년 경성부 위생계의 원조로 일반시민에게 위생에 대한 주의를 주기 위하여 위생연극 우미관에서 공연하기도 하였다. 이때의 각본이 <인생의 구(仇)>였다(동아일보a). 마호정은 계모나 악모 역할로 많이 출연하였다고 한다(최창호 외). 마호정은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취성좌를 1920년대 가장 중요한 극단의 하나로 성장시켰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20년 7월 29일 3면.
동아일보b 1981년 5월 6일 7면.
최창호 외, 『라운규와 수난기 영화』, 한국문화사(영인), 200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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