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약선
Eo Yak-seon / 魚躍善
출생·사망
1914 ~
대표분야
감독
활동년대
1940, 1950

필모그래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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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
베일부인 (어약선, 1952)   
감격의 일기(원제:感激の日記) (신경균, 1945)   
혈과 한(피와 땀) (신경균, 1945)   

주요경력

1935년 경기도 매동보통학교(梅東普通學校) 교사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4년생으로 1934년 양정고보(養正高普)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경성사범학교(京城師範學校) 강습과에 입학하여 이듬해 졸업했다(동아일보a, b). 이후 경기도 매동보통학교(梅東普通學校)에서 교사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45년 신경균(申敬均)이 감독한 두 편의 영화 <감격의 일기(感激の日記)>와 <혈과 한(血と汗)>에서 각본을 맡으며 영화에 입문했다. 해방과 전쟁을 거친 후 자신이 각본을 쓴 멜로영화 <베일부인>(1952)으로 감독 데뷔한다. 그 후로는 주로 문화영화를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교동국민학교 교사인 신세균(申世均)의 원작으로 서울시 경찰국이 제작한 반공계몽영화 <창수만세>(1955), 이문교육영화연구소(以文敎育映畵硏究所)가 제작한 시청각 교재용 영화 <산바람, 강바람>(1955) 등이 그것이다(동아일보c, 경향신문a). 1956년 정비석(鄭飛石)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청춘의 윤리>를 감독할 예정이었으나 영화화되지 못했다(경향신문b). 1958년 『배우교실』이라는 책에 실은 글 「영화감독과 연출」에서 그는 “작가요 예술가로서의 영화감독”의 길을 강조하고 있다(원형두). 이후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5년 9월 15일자 4면
경향신문b 1956년 8월 13일자 4면
동아일보a 1934년 3월 4일자 2면
동아일보b 1935년 3월 24일자 2면
동아일보c 1954년 11월 25일자 4면
원형두 편, 『俳優敎室: 映畵와 演劇』, 토픽출판사, 1958, 127-133쪽.
직원록자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14년 9월 6일생. 출생지,학력 미상. 1952년 자신이 쓴 각본을 갖고 <베일 부인>으로 등장. 베일을 쓴 채 모델이 돼 준 미망인의 그림이 완성된 날 화가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끔찍한 흉터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미망인은 그가 실망한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피하지만 화가는 내가 사랑한 것은 당신의 얼굴이 아니라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해피엔드로 끝나는 송억,진랑 주연의 청구영화사 제작 영화. 이밖에 <피난일기>(1953),<창수만세>(1954)등 두 편의 영화를 더 남겼다. <피난일기>는 6.25 전쟁 때 시민들의 피난을 다룬 기록영화이고, <창수 만세>는 부부 간첩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초등학교 학생들이 경찰에 신고하여 그들과 더불어 붙잡게 된다는 아동용 반공계몽영화이다. 서울시 경찰국이 제작하고 김호연,김월순 등과 함께 교동국민학교 학생들이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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