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봉
Mun Ye-bong / 文藝峰
출생·사망
1917 ~ 1999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30, 1940, 1980, 1990

필모그래피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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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우리 새 세대 (장인학, 1996) 할머니
돌아오지 않은 밀사 (신상옥, 1984)
내고향 (강홍식, 1949)
태양의 아이들(원제:太陽の子供達) (최인규, 1944)
젊은 모습(원제:若き姿) (도요타 시로, 1943) 복순
조선해협 (박기채, 1943) 긴슈쿠
우르러라 창공(원제:仰げ大空) (김영화, 1943) 어머니
신개지 (윤봉춘, 1942)
그대와 나(君と僕) (허영, 1941)
창공(원제:돌쇠) (이규환, 1941) 탄실

주요경력

1932년 <임자없는 나룻배>로 데뷔
1937년 극작가 임선규와 결혼
1938년 조선영화주식회사 입사
1948년 3월 임선규와 함께 월북
1952년 북조선 최초의 공훈배우 칭호 받음
1967년 나운규를 칭송하는 글을 써 반혁명반동으로 몰려 안주협동농장으로 추방
1980년 <춘향전>의 월매 역으로 복귀
1982년 인민배우 칭호 및 국기훈장 1호 받음
1985년 남북고향방문단 일원으로 서울 방문

기타정보

기타이름
하야시 데이켄, 林丁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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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아버지 문수일을 따라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하였다. 13살에 처음 무대에 섰다. 극단에서 계속 활동하다가 1932년에 영화배우로 데뷔하였다. 이규환 감독이 연출한 <임자 없는 나룻배>에서 뱃사공의 딸로 출연하였다. 이어서 1935년에는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맡으면서 당대 최고의 스타에 올라섰다. 이즈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홍개명 감독의 1935년 <아리랑 고개>에서 문예봉은 노재신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영화의 내용은 완고한 양반집에서 태어난 아랑아가씨가 어려서 같이 자라던 종의 아들 칠성이와 사랑하게 되면서 겪는 어려움을 그린 영화였다. 재미있는 것은 아랑 역은 노재신이, 칠성 역은 문예봉이 맡았다는 것이다. 두 여배우가 남녀 주인공을 연기한 것이다. 어린 시절 극단에서 남자 역을 맡기도 하였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문예봉은 남자 역을 소화했던 것이다. 이어서 1937년 출연한 <나그네>는 문예봉의 인기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1929년 영화인 등록제가 실시되자 영화배우로 등록했으며, 1940년 조선영화령 시행 이후에는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선전영화에 계속 출연하였다. 해방 후에는 조선영화동맹의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는 등 좌익계열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월북하였다. 1949년 북한 최초의 극영화로 강홍식이 연출한 <내고향>에 출연하였다. 1982년 인민배우가 되었다. 1999년 3월 26일 사망하였고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35년 12월 28일 4면.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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