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실
Kim Yeon-sil / 金蓮實
출생·사망
1911 ~ 1997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20, 1930, 1940, 1980

필모그래피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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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탈출기 (신상옥, 1984)
돌아온 어머니 (이계하, 1949)
새로운 맹서 (신경균, 1947)
춘향전 (이명우, 1935)
대도전 (김소봉, 1935)
홍길동전 (김소봉,이명우, 1935) 홍길동
청춘의 십자로 (안종화, 1934) 계순
전과자 (김소봉, 1934)
종로 (양철, 1933)
임자없는 나룻배 (이규환, 1932)

기타정보

기타이름
金井實千代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7년 김연실은 나운규프로덕션 제1회 작품인 <잘 있거라>의 시골소녀 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심훈이 지적한 것처럼 신일선이 영화계에서 벗어난 이후 거의 모든 영화를 도맡아 출연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데뷔 이후, <세동무(삼걸인)>(1928), <종소리>(1929), <철인도>,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 <승방비곡>(1930), <임자 없는 나룻배>(1932), <종로>(1933), <청춘의 십자로>(1934) 등 여러 영화에 출연하였다. 김연실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변사인 오빠 김학근(金學根)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촬영기사인 김학성은 그의 친동생이기도 하다(김종원). 1930년 이후에는 대중가수로의 활동이 활발했다고 한다. <아리랑>의 주제가인 <신아리랑>을 불렀던 것도 김연실이었다. <세동무>, <암로>, <장한몽가> 등 영화주제가를 비롯하여 여러 가요를 취입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월북하였다. 북에서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를 지냈으며,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1997년 8월 사망하였다(동아일보a; 동아일보c; 동아일보d; 동아일보e; 동아일보f, 동아일보g; 동아일보h; 조선일보; 심훈; 최창호; 대중예술인 사전).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27년 10월 12일 3명.
동아일보b 1928년 3월 3일 5면.
동아일보c 1929년 2월 17일 3면.
동아일보d 1930년 4월 14일 1면.
조선일보e 1930년 9월 19일 석간 5면.
동아일보f 1931년 6월 28일 4면.
동아일보g 1932년 8월 19일 5면.
동아일보h 1933년 10월 6일 8면.
심훈,「朝鮮映畵人 언파레드」,『동광』제23호, 1931년 7월호.
최창호 외, 『라운규와 수난기 영화』, 한국문화사(영인), 2001.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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