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래명
Seok Rae-myeong / 石來明
출생·사망
1936 ~ 2003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활동년대
1970, 1980, 1990

필모그래피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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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홀로서는 그날에 (석래명, 1990)
내사랑 동키호테 (석래명, 1989)
아스팔트위의 동키호테 (석래명, 1988)
해뜨는 집 (석래명, 1980)
가을비 우산속에 (석래명, 1979)
12인의 하숙생 (석래명, 1978)
에너지선생 (석래명, 1978)
우리들의 고교시대 (김응천,문여송,석래명, 1978)
여고얄개 (석래명, 1977)
얄개행진곡 (석래명, 1977)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6년 5월 10일 출생. 경복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법대를 수료한 후 노필 감독의 조감독으로 들어가 <꿈은 사라지고>, <사랑은 흘러가도>(1959), <심야의 블루스>(1960)등의 연출부를 거쳐 최훈 감독 아래서 <아빠 안녕>(1963), <파도>(1967)등 50여편의 정통 멜로드라마의 조감독을 거쳤다. 감독 데뷔는 1971년 최무룡, 문희 주연의 멜로드라마 <미워도 안녕>으로 했다. 가난한 문학소녀가 문학청년과 동거하다 남자가 병사한 후 아이를 홀로 키우다가 급기야 바에서 살인죄를 지고 감옥에 가게된다. 몇 년 후 시골에서 가정부와 살고 있는 아이를 잠깐의 휴가로 만나고 다시 돌아간다는, 한 여성의 불행과 모정으로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이다. 데뷔작의 실패 후 5년만에 재기한 영화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 가운데 하나인 <고교 얄개>(1976)였다. 조흔파의 명랑소설 '얄개전'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말썽꾸러기 나두수 학생의 좌충우돌 말썽담이다. 초반부는 두수의 말썽을 주로 다루지만 후반부로 넘어가면 형편이 어려운 호철을 돕는 두수의 선행과 그것을 계기로 맺어지는 우정을 확인한다. 물론 이 사이에 두수의 연애담, 국어교사와 두수 누나의 연애담도 들어간다. 이승현, 강주희 주연의 이 영화는 당시 26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하이틴영화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이승현, 김정훈, 강주희 주연의 비슷한 영화를 양산했다. <고교 꺼꾸리군 장다리군>,<얄개행진곡>,<여고얄개>(1977),<우리들의 고교시대>,<에너지 선생>,<12인의 하숙생>(1978) 등의 영화들은 비슷한 상황,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출연진을 내세워 어느정도 성공하기도 했지만, 결국 장르의 쇠퇴를 재촉하는 역할을 했다. 더구나 김응천, 문여송 감독의 하이틴 영화가 동시에 흥행에 성공을 하면서 갑자기 불어닥친 하이틴영화 붐은 이런 상황을 더욱 재촉하게 만들었다. 결국 1980년 하이틴영화가 사라지게 되자, 다시 오랜 침묵 끝에 그는 하이틴 영화보다 관객연령층이 높아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련의 청춘영화를 내놓았다. 당시 최고의 스타인 최재성, 최수지를 내세운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1987), 최재성, 박중훈을 내세운 <내사랑 동키호테>(1988), 김정훈, 송승환 주연의 <홀로서는 그날에>(1990)가 그런 영화들인데, 이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한편 1995년에 배우 진유영이 메가폰을 잡은 <도둑과 시인>을 제작했지만 흥행에 실패하면서 많은 ?G을 졌다. 재기를 다지며 투병 생활을 하던 그는 그러나 영원히 재기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하이틴영화의 전성기를 연 감독이지만, 비슷한 내용의 하이틴영화에 안주하면서 이내 침체하게 되었고, 이후 와신상담 끝에 들고 나온 청춘영화도 하이틴영화에서 크게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든 일련의 1970년대 하이틴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여러모로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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