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조
Lee Bong-jo / 李鳳祚 / 1931  ~  1987
대표분야
음악
활동년대
1960, 1970, 198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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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여자가 더 좋아 (김기풍, 1965)
수탉같은 사나이 (박종호, 1965)
이 세상 끝까지 (고영남, 1965)

주요경력

1962년 이봉조악단 창단
1964년 동양TV방송국 전속악단장
1971년 아시아 예능인연합회 준비위원
1980년 KBS 전속 악단장
1987년 서울올림픽 문화행사 공연 분야 준비자문위원

기타정보

주요기타작품
1962년 밤안개
1968년 검은 상처의 부르스
1971년 너
1974년 좋아서 만났지요
1975년 무인도
1979년 꽃밭에서 등 다수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이봉조는 경상남도 남해에서 출생해 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진주중학교 재학 중 가요작곡가 이재호의 문하생이 되어 음악공부를 했다. 1952년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했고 이 시기 테너색소폰 연주가 엄토미(嚴吐美)의 문하생이 되어 색소폰을 배웠다(디지털전주문화대전). 1958년 한양대학교를 졸업 후 서울시청 토목과에서 일하다가 2년 만에 그만두고 1959년 김광수(金光洙) 악단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이봉조 악단을 결성해 미8군 나이트클럽 등에서 연주했다. 이봉조는 색소폰 연주가로 미국 재즈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트로트가 주를 이루던 1960년대 한국 가요계에 재즈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다(네이버 백과사전). 1962년 그가 작곡하고 가수 현미가 부른 ‘밤안개’가 히트하면서 가요작곡가로 각광받았다.
<가정교사>(1963)에서 음악을 맡으며 영화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맨발의 청춘>(1964)으로 1964년 제2회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영화음악감독으로 입지를 굳혔다. 1964년 동양TV방송국이 개국하면서 동양TV방송국 전속악단장이 되었다(디지털전주문화대전). 1971년에는 가수 정훈희와 함께 동경국제가요제에 ‘안개’로 참가하여 입상했고, 국위를 선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공보부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동아일보).
이봉조는 배우 신성일과 친분이 두터워 신성일의 감독 데뷔 작품인 <연애교실>(1971)의 음악을 맡기도 했다(경향신문a). 이봉조는 <연애교실>(1971)로 1971년 제17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음악상을 받는 등(경향신문b), 1960~70년대는 이봉조의 전성기로 이 시기 한국영화음악은 이봉조가 독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향신문c). 1987년 타계하기까지 113편의 영화음악을 맡았으며 300여 곡의 가요를 작곡했다(디지털전주문화대전).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71년 2월 17일자 5면.
경향신문a 1971년 5월 15일자 7면.
경향신문b 1971년 6월 9일자 5면.
경향신문c 1998년 1월 1일자 33면.
디지털전주문화대전
(http://jinju.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0401748)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895587)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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