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Kim Seong-chun / 金聖春
출생·사망
1905 ~ 1977
대표분야
조명, 배우, 감독, 제작/기획, 시나리오
활동년대
1930, 1940,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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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색 :
영번 상해돌파 (신경균, 1967)
배우 :
국경 (최인규, 1939)
살수차(포도의 이단자) (방한준, 1935)

주요경력

1921년 일본에 건너가 나고야(名古屋)에 있는 동아키네마에 입사
일본 신흥 키네마와 다카다(高田)프로덕션 등에서 조명기사로 활동
1932년 귀국
1960년 11월 21일 서울시 문화상
1936년 조선영화주식회사 조명부장
1955년 한국기술협회 초대회장
1962년 한국영화인협회 기술분과 초대위원장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서울 출신이다. 1919년 경 도일하여 연기와 영화기술을 배웠다. 일본의 유명배우 다카다 미노루(高田稔) 문하에서 영화기초를 익히고, 1922년 나고야 다카다 프로덕션 조명기사로 입사하여, 1925년에는 신흥키네마사 나가사키 촬영소 조명조장을 지냈다. 1934년 귀국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조명기사가 되었다(대중예술인 사전; 박누월). 1935년에는 방한준(方漢駿)이 감독한 <살수차(撒水車)>의 제작, 출연, 조명 등을 맡았다. 한국영화 최초로 70Kw전기를 사용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후 <무정>(1939), <새출발>(1939), <수선화>(1940) 등의 작품에서 조명을 담당했다. 1942년에는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영화조명 총책임자가 되어 <조선해협>, <망루의 결사대>, <태양의 아이들> 등의 작품에서 조명을 담당했다. 해방이후 <자유만세>(1946), <시집 가는 날>(1956), <인생차압>(1958) 등의 영화에서 조명을 담당했고 1961년 유현목의 <오발탄>을 제작했다(경향신문).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영화기술자협회장 등을 역임했다(대중예술인 사전).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1년 12월 28일 4면
박누월, <<영화배우술>>, 삼중당서점, 1939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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