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진
Ju Dong-jin / 朱東振 / 1930  ~  2003
대표분야
제작/기획, 감독
활동년대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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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광화사 (주동진, 1974)
서로 좋아해 (주동진, 1974)
행운 (주동진, 1974)
의사 안중근 (주동진, 1972)
늦기 전에 (주동진, 1971)
떡국 (주동진, 1971)
사랑하는 마리아 (주동진, 1970)
마님 (주동진, 1970)

주요경력

1962년 중앙대학교 영화과 전임강사
1964년 3월 대한연합영화사 창립멤버. 전무
1967년 5월 23일 한국영화업자협회 산하 영화신용조합 운영위원
1967년, 1970년 한국영화제작가 협회 회장
1970년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수출진흥위원회 위원장
1970년 10월 27일 제8회 영화의 날 기념 문공부 장관 유공자 표창
1971년 공화당 중앙위원
1975년 영화제작자협회 배급협회 파견위원
미국 동부 한국예술인협회 회장

기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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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주동진 - 제작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는 산업이자 예술이며, 오락이다. 그것은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상당한 자본과 기술,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특히 한 해에 200편을 넘는 영화가 만들어졌던, 그리하여 적어도 편수로만 놓고 따지자면 세계 5대 영화산업국에 ... by.조준형(한국영상자료원 연구부) 2012-05-12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주동진은 평양 출생으로 1945년 해방이 되자 월남하였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강사로 일하다가 영화제작에 뛰어들었다(매일경제a).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나이>(1963)를 제작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아빠안녕>(1963)이 흥행하면서 1964년 연방영화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한국영상자료원). 주동진은 연방영화사 설립 후 남정임이 주연한 <유정>(1966)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
1970년에 신성일, 남정임 주연의 <사랑하는 마리아>(1970)를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사랑하는 마리아>는 가수 패티 김의 히트송을 영화화한 것으로 패티 김의 노래가 영화의 주제가로도 쓰였다. 주동진의 연출작인 <사랑하는 마리아>와 <마님>(1970) 모두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매일경제a).
주동진은 이색적인 영화제작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사랑하는 마리아>는 남자주인공의 정신병을 여자주인공이 섹스요법을 통해 치료한다는 다소 자극적인 내용이다. <정형미인>(1975)은 우리나라 최초의 심령과학영화로 일본의 극화작가 우메즈 가즈오의 『정형미녀(整形美女)』를 영화화한 것으로, 기존의 괴기, 공포영화와 달리 초능력을 가진 여인을 등장시켜 심령적인 공포를 만들어내었다(매일경제b). <행운>(1974)은 본격 뮤지컬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무용을 전공한 우연정이 주연을 맡았다(동아일보a).
주동진은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140여 편의 영화를 제작, 감독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에 ‘시네마 엠파이어’란 영화사를 설립해 영화수출입업을 하였다. 그는 미국동부 한인예술인협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1990년에는 남북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 남북영화제를 개최해 남북 영화교류에도 힘썼다(동아일보b). 2003년 뉴욕에서 작고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74년 2월 27일자 8면.
동아일보b 1990년 10월 19일자 31면.
매일경제a 1971년 2월 9일자 6면.
매일경제b 1975년 3월 14일자 8면.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4629&keyword=주동진)
한국영상자료원 구술사아카이브
(http://www.koreafilm.or.kr/main/institute/gusul_view.asp?page=1&seq=13)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0년 2월 20일 서울 태생으로 한양대학교 공대 기계과를 졸업했다. 과 신설 초기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출강했으나 연방영화사를 설립하면서 그만 두었다. 그동안 공개 모집을 통해 선발된 남정임을 주연으로 내세운 <유정>(1966)을 비롯하여 <하외이 연정>(1967),<화산댁>(1968),<광화사>(1974)등 50 여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한편, 1970년에는 신성일,남정임 주연의 <사랑하는 마리아>를 첫감독 작품으로 내놓았다. 잇따라 '수중섹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같은 배역의 <마님>을 같은 해에 내놓고 다음해부터 1974년까지 <떡국>,<늦기전에>(1971),<의사 안중근>(1972),<행운>,<서로 좋아해>,<광화사>(1974)를 제작,감독했다. <떡국>은 가정이 화목을, <늦기 전에>는 당시 잘 나가던 김추자의 히트송을, 김동인 원작의 <광화사>는 한 예술가의 무서운 집념을 각각 특징으로 내세웠다. 이중,김진규 주연의 <의사 안중근>은 제 11회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는 1967년 1970년 두 차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나 1970년대말 부사장이던 최춘지에게 연방영화사의 운영을 맡기고 도미함으로써 영화와 인연을 끊었다. 뉴욕 거주하다가 2003년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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