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균
Shin Kyeong-gyun / 申敬均
출생·사망
1912 ~ 1981
대표분야
감독, 편집, 제작/기획, 시나리오
활동년대
1930, 1940, 1950, 1960, 1970

필모그래피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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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홍콩부루스 (신경균, 1971)
홍콩서 온 철인 박 (신경균, 1971)
홍콩에서 온 여와 남 (신경균, 1970)
홍콩서 온 마담장 (신경균, 1970)
영번 상해돌파 (신경균, 1967)
일등공신 (신경균, 1967)
형부와 새언니 (신경균, 1964)
마도로스 박 (신경균, 1964)
행복한 고독 (신경균, 1963)
여자의 일생 (신경균, 1962)

주요경력

1932년 일본 도쿄 신흥키네마에 입사
1936년 귀국
1937년 <순정해협>으로 영화감독 데뷔
1942년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입사
1947년 청구영화사 설립

기타정보

기타이름
大空敬均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신경균은 1930년 교토 일본영화연극학원에 들어가 영화기초를 배우고 1935년 동보영화사 전신인 태진(태진)발성영화사 말단 조수로 입사하는 등 일본에서 영화제작 경험을 쌓고 귀국하였다(신경균). 귀국 후 함대훈의 원작인 <순정해협>(1937)의 각색과 연출을 담당하였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실패했다는 시각이 있기도 하다(삼천리 제10권 제11호, 1938년 11월). 1939년 <처녀도>를 비롯하여, 1945년 <우리들의 전쟁>, <감격의 일기>, <혈과 한> 등의 작품에서 감독을 맡았다. 해방 이후 <새로운 맹세>(1947)를 감독하면서 최은희를 은막에 발탁하고, 영화감독의 명성을 확고히 하였다. 이후 <대지의 아들>(1949), <여인애사(女人哀史)>(1950)등을 발표하였다. 청구영화사를 설립한 후에는 <찔레꽃>(1957), <노들강변>(1957), <애모>(1959), <여자의 일생>(1962), <홍콩부루스>(1971) 등을 만들었다(동아일보a; 동아일보b; 대중예술인사전).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59년 1월 22일.
동아일보b 1962년 3월 28일 4면.
신경균, 「나의 영화편력」,『격월간 영화』1978년 5ㆍ6월호.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12년 9월 15일 경상북도 선산 출생. 선산 공립보통학교를 나와 대구로 이사, 대구 농림학교를 졸업. 1930년 봄 영화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영화연극학원을 다녔고, 1935년 교토에 있는 한 발성영화사에 연출부 말단 조수로 입사하여 발성영화의 촬영 과정을 습득했다. 이 무렵 교토에는 동보영화사가 발성영화로 출범하고 송죽도 발성영화가 나왔다. 1935년 9월 영화의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들어와 안석영,사광제 등을 만나면서 영화를 논하게 된다. 이 무렵 대구에서 그의 감독 데뷔작 <순정해엽(純情海峽)>(1937,손일보 김영옥 김일해 출연)에 주연으로 발탁된 손전(그 당시 손일보)을 만났다. 시골 마을의 간이학교 교사가 사랑하는 여교사를 건달의 유혹으로 빼앗기자 학교를 그만두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재산을 탕진하고 몰락한 사내를 돕는 것으로 복수하는 이 영화는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후속작으로 일제의 강제징용에 끌려 나갔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고향인 어촌에 돌아온 세 청년이 마을 처녀들과 힘을 모아 부정과 폐습을 타파하고 황폐한 어촌을 재건해 나간다는 내용의 계몽영화 <새로운 맹세>(1947,국도극장 개봉)를 내놓았는데, 19세의 처녀 최은희가 배우로 기용된다. 일제의 강제징용, 징병으로 희생된 전쟁고아들을 모아 두 남녀 주인공이 역경을 헤치며 따듯하게 보살피는 <대지의 아들>(1949,신경균 각본). 이상 세 편의 영화는 그가 설립한 청구영화사 제작으로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해방 전, 두 편의 친일영화를 만든 바 있는 그로서는 역설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1944년 사단법인 조선영화주식회사를 발족시키고 여기에서 국책으로 포장된 적지 않은 어용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그에게 배당된 것이 <우리들의 전쟁>(1945)이었다. 징용에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고생을 참고 견딘다는 내용으로 전시 총력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모든 영화사를 통합하여 한국인으로 구성된 무용단이 일본 본토로 징용간 한국인을 찾아가 위문하고 그 가족들을 위로한다는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의 <감격의 일기>(1945)가 만들어진 것도 일제의 패망 직전인 이때였다. 그는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찔레꽃>,<노들강변>(1957),<화심>,<마도의 향불>(1958),<애모>,<유정무정>(1959),<회정>,<그대 목소리>,<울지 않으련다>,<연연>,<사랑이 피고 지던 날>(1960) 등 가장 많은 작품 활동을 했다. 이후 1971년 <홍콩부루스>를 마지막으로 1973년 영화법이 강화 개정(정식으로 허가된 회사외에는 대명도 안되고 그때까지 합법적으로 인정된 각사의 PD들도 제작이 허용되지 않음)되어 완성 단계에서 빛을 보지 못한 두 작품과 함께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지 못한 채 1981년 4월 22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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