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종
Byun Ki-jong / 卞基種
출생·사망
1895 ~ 1977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20, 1930, 1940, 1950,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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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이조 여인잔혹사 (신상옥, 1969)
윤심덕 (안현철, 1969)
북경열차 (권철휘, 1969)
방울대감 (나봉한, 1968)
제삼지대 (최무룡, 1968)
어떤 눈망울 (이강천, 1968)
춘향 (김수용, 1968)
상사초(想思草) (장일호, 1968)
낭자망나니 (나봉한, 1967)
이조잔영 (신상옥, 1967)

주요경력

1912년 11월 극단 청년파일단 조직
1913년 개성에서 이기세가 창립한 극단 유일단에 입단
1914년 말 유일단 해산 이후 이기세를 따라 예성좌에서 활동
1916년 예성좌 조직
1919년 7월 이기세의 조선문예단에 합류
1920년 4월 김도산의 신극좌에 입단, 연쇄극 출연
1925년 12월 민립극단 창설
1926년 10월 조선극우회 창설
1929년 12월 조선연극사 창설
1935년 11월 동양극장 전속극단 청춘좌 단장
1945년 광복 직후 조선연극동맹 산하 자유극장 위원장
1951년 극단 상록극회 동인
1953년 5월 극단 자유극회 창립동인
1955년 8월 극단 민극 창립동인
1956년 4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피선
1957년 3월 서울시 문화위원
1957년 6월 국립극단 초대 단장
1958년 10월 한국무대예술원 부원장
1961년 12월 개편된 국립극단원 및 연극협회 고문
1966년 한국연극협회 이사
1972년 1월 국립극단 명예단장
197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여

기타정보

기타이름
남계, 南溪
주요기타작품
TV 작품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2)
연극 작품
<신라의 달>(1935)
<발착점에 선 사람들>(1957)
<이순신>(1966)
<환절기>(1968)
수상내역(기타)
제6회 서울시문화상 연극부문(1957)/
제6회 예술원상 연예부문 공로상(1961)/
국민훈장무궁화장(1973)/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변기종은 1912년 연흥사에서 혁신단이 공연한 신파극 <진중설>을 보고 자극을 받아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활동사진 연쇄극에도 출연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조선문예단의 이기세가 연출한 <지기(知己)>와 신극좌의 김도산이 만든 <의적>(이상 1920)이다. 1925년 그는 이원규, 강성렬, 최성해 등과 함께 민립극단을 조직하였다(동아일보a1925년 12월 31일 3면). 1936년 동양극장 직영 동극좌(東劇座)의 멤버가 되었으며 같은 해 고려키네마가 제작하고 안종화가 감독한 조선 최초의 깽 영화인 <역습>에 출연하였다(동아일보b 1936년 2월 15일 6면; 조선일보a 1936년 2월 2일 석간 6면). 1939년에는 동양극장과 고려영화사가 합작으로 제작한 영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 출연하였다(동아일보c 1939년 2월 8일 5면). 해방 후 1948년 동아영화기업사에서 제작한 문예영화 <마음의 고향>에서 주지 역할로 출연하였다(동아일보d 1948년 12월 24일 2면). 계속해서 <낙동강>(1952), 고 춘사 나운규 20주기 추모기념작 <아리랑>(1954), <춘향전>(1955), <마인>, <에밀레종>(1956)에 출연하였다(경향신문a 1956년 10월 27일; 경향신문b 1956년 3월 7일). 다음 해에는 <애원의 고백>, <봉이 김선달>, <진리의 밤> 등에 출연하였다(경향신문c 1957년 1월 24일 4면). 이후 <청춘극장>, <꿈이여 다시 한 번>(1959), <낙화암>, <어머니의 힘>(1960), <이조여인잔혹사>(1969) 등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경향신문d 1959년 1월 4일 4면; 경향신문e 1960년 3월 23일; 대중예술인 사전). 이외에도 1962년 KBS 텔레비전이 처음으로 방송한 TV극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 출연하기도 하였다(동아일보e). 비록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였지만, 변기종은 영화보다는 연극계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연극에 대한 그의 공헌이 인정받아서, 1957년에는 예술원 연예부문 일반회원에 선출되었다(경향신문c). 이외에도 제6회 서울시문화상 연극부문을 수상하였고, 예술원이 수여하는 제6회 예술원상 연예부문 공로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1973년에는 전국문화예술인대회에서 연극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무궁화장을 받았다(경향신문d; 경향신문e; 경향신문h). 모두 연극계에서의 활동을 통해 얻은 성과들이었다. 1962년부터는 박진을 단장으로 한 국립극단에 참여하며 연극배우로서 활동을 이어나갔다(경향신문f). 1962년 10월에는 변기종의 무대생활 50년 기념공연으로 이용찬 작품 <고독은 외롭지 않는 것>이 국립극단이 참여한 가운데 무대에 올려졌다(경향신문g). 일생을 천주교에 의지해 독신으로 살다가 1977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장례는 연극인장으로 치러졌다(동아일보f).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25년 12월 31일 2면.
동아일보b 1936년 2월 5일 4면.
동아일보c 1936년 2월 15일 6면.
동아일보d 1939년 2월 8일 5면.
동아일보e 1962년 1월 26일 4면.
동아일보f 1977년 5월 17일 7면.
경향신문a 1948년 12월 7일 3면.
경향신문b 1949년 1월 6일 3면.
경향신문c 1957년 4월 25일 3면.
경향신문d 1957년 9월 25일 2면.
경향신문e 1961년 7월 17일 3면.
경향신문f 1962년 1월 18일 2면.
경향신문g 1962년 10월 1일 8면.
경향신문h 1973년 10월 20일 7면.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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