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Choi Hoon / 崔薰 / 1922  ~  2005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모녀 1958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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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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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내일을 향해 뛰어라 (최훈, 1979)
단짝 (최훈, 1979)
꿈나무 (최훈, 1978)
이 한몸 다 바쳐 (최훈,이기원, 1978)
여신탐 (최훈,포학례, 1976)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최훈, 1976)
흑표객 (최훈,라마, 1974)
수선화 (최훈, 1973)
친정아버지 (최훈, 1971)
청산에 우는 새야 (최훈, 1971)

주요경력

1942 평남 신안주 공립 청강국민학교 훈도
1946 평남 안주여자중학교 교사
1949 '아세아영화공사'를 만들어 안종화감독이 "김상옥 혈사"제작했으나, 6.25로 수포로 돌아감
1950 유현목, 하한수, 정일택과 함께 이규환 감독의 연출조수로 "춘향전"
1958 "모녀"로 데뷔
1970 한국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위원장
1971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
1972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1983까지)
1973 영화진흥공사 이사
1974년 한국영화인협회 산하 권익옹호위원장
1975년 제14회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
1981년 한국영화유공자회 회장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교직생활을 하다가 6.25가 터진후 피난길에 유현목, 하한수, 정일택과 함께 이규환 감독의 연출조수로 <춘향전>을 찍은 것이 영화계의 첫 발이었다.
주요 영화작품
모녀(1958,최훈)
사모님(1959,최훈)
장마루촌의 이발사(1959,최훈)
꽃피는 시절(1959,최훈)
어느 여교사의 수기(1960,최훈)
내가슴에 그 노래를(1960,최훈)
양귀비(1962,최훈)
동학난(1962,최훈)
사랑의 동명왕(1962,최훈)
죽도록 사랑해서(1963,최훈)
부부조약(1963,최훈)
아빠안녕(1963,최훈)
목요일에 만납시다(1964,최훈)
울지마라 물새야(1964,최훈)
눈물의 자장가(1965,최훈)
이별의 강(1966,최훈)
밀어(1967,최훈)
지금 그 사람은(1968,최훈)
파문(1968,최훈)
마지막 편지(1969,최훈)
검은 야회복(1969,최훈)
이대로 간다해도(1969,최훈)
처와 처(1970,최훈)
결혼대작전(1970,최훈)
청산에 우는 새야(1971,최훈)
수선화(1973,최훈)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1976,최훈)
꿈나무(1978,최훈)
이 한몸 다 바쳐(1978,최훈)
내일을 향해 달려라(1979,최훈)
단짝(1979,최훈)
애착작품 및 사유
<장마루촌의 이발사>, <아빠 안녕>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초기때는 교육영화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느티나무 있는 언덕>, <어느 여교사의 수기> 등으로 출발하여 그 후 radio연속극으로 방송되었던 전쟁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로 히트를 치고 사극인 「동학란」이광수씨의 소설을 영화화한 <사랑의 동명왕> 등을 제작하고 중반기에는 멜로영화가 주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작품은 당시 대히트를 쳤던 엄앵란, 김진규, 조미령씨가 출연한 <아빠 안녕>, <죽도록 사랑해서> 등이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던 15년간 다양한 스타일을 만들어지만, 그래도 늘 교육과 계몽성을 마음에 두고 작품에 임했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2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평안 교원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와서 1942년부터 신의주 공립 청강공립학교에서 교원을 시작하였고, 1946년에는 안주여자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47년 서울 서대문으로 옮겨온다. 1948년에 아세아영화공사를 세우고, 1949년 안종화 감독의 연출로 <김상옥 혈사>을 제작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제작이 중단되고 필름 또한 분실하게 된다. 전쟁 때 공군본부 정훈감실에서 제작한 홍성기 감독의 <출격명령>에 조감독으로 일하며 처음으로 연출 수업을 받게 되고(한국영화감독사전), 전쟁 후에는 유현목, 하한수, 정일택 등과 함께 이규환 감독의 연출부로 들어가 <춘향전>(1955) 등의 영화에서 일하며 연출 수업을 받는다. 연출 데뷔작은 1958년의 <모녀>이고, 이어 연출한 <사모님>(1959) 등의 초기작에서 '건강한 모랄과 생활성'을 주제로 삼은 격조 높은 홈드라마'(동아일보), '견실하고 시정가화(市井佳話)의 서민적 '모랄'을 지닌 작품'(서울신문) 등 주로 교훈적인 소시민 영화를 내놓는 한편, 교직 생활의 경험을 살려 <느티나무 있는 언덕>(1958), <어느 여교사의 수기>(1960) 등의 교육, 계몽성을 강조하는 영화를 만든다. 이후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반의 사극 붐과 함께 <동학란>(1962), <양귀비>(1962), <사랑의 동명왕>(1962) 등을 연출하고, <장마루촌의 이발사>(1959)로 전쟁 기억과 가족의 문제를 멜로드라마의 틀에서 결합시켜 히트한다. 그러한 멜로드라마적 경향은 1963년의 <아빠 안녕>으로 15만 명이 넘는 흥행 성공작을 내놓으며, 주요 연출 스타일이 된다. 당시 <아빠 안녕>에 대해 한 신문의 평자는 '주중 오전임에도 장내는 여성관객들과 만원을 이루고 있는데, 그들의 손은 행커치프를 눈에 갖다 대기에 어지간히 바쁘다. 홍루파 팬에게는 그야말로 다시없는 A급에 속하는 최루신파의 아찔한 비극'(조선일보)이라고 평하는데, 이러한 스타일은 <목요일에 만납시다>(1964), <가짜여대생>(1965), <파문>(1968) 등을 거쳐 1969년 <물망초>로 또다시 관객 15만 명이 들며 히트한다. 1970년대에는 한국영화계의 현안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한국영화인협회의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1974년에는 한국영화인협회 각 분과 위원회의 대표들로 구성된 귄익옹호위원회를 만들고, 그 위원장이 되어 영화인 임금 현실화를 위한 논의를 주도하기도 한다. 2005년 11월 6일 타계한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59년 3월 29일 4면
서울신문 1959년 10월 11일 석간 4면
조선일보 1963년 12월 19일 5면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황미요조]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2년 7월 27일 생. 평남 안주군 남천리 2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가족 환경은 유복한 편이었으며 5남 3녀 중 둘째로 성장하였다. 해방 전 평양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후 1943년부터 신의주 청강공립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으며 해방 후 평양 중등고등학교 양성소를 졸업하여 안주여중에서 교사생활을 하였다. 학교현장에서 생활은 초기 작품인 <느티나무 있는 언덕>(1958)과 <어느 여교사의 수기>(1960)와 <수선화>(1973) 등에서 학교의 공간과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보여준다. 교사로서의 체험은 영화에서 교육적이고 계몽적인 주제를 통해 변주되어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영화계와의 인연은 1947년 해방공간에 질소비누를 한 배 가득 싣고 남하하여 서대문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일에 뛰어들면서 맺게된다. 1948년 남대문 부근에 아세아영화공사를 설립하여 안종화 감독에게 작품을 의뢰했으나 전쟁으로 인해 제작이 중단되고 필름을 분실하고 만다. 본격적인 연출수업은 공군본부 정훈감실에서 제작한 전쟁영화인 홍성기 감독의 <출격명령>에 조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쌓게된다. 이 영화는 공군조종사의 사랑과 전우애를 다룬 염매리· 이집길 주연의 반공영화다. 그후 이규환 감독의 조감독을 거쳐서 1958년 <모녀>로 영화 감독에 입문하게된다. <모녀>에서 1979년 <단짝>까지 52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대표작은 제 12회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하여 작품성이 검증된 <수선화>(1973)이다.
<수선화>는 평생을 고아를 위해 헌신한 윤선희(고은아 분)라는 초등학교 교사출신의 사회활동가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감독 스스로 강조해온 교육적이며 계몽적 내용을 담은 영화라는 테마에 가장 충실한 영화에 속한다. 윤선희는 북한생활을 피해 남하하여 박소령(장동휘 분)을 만나게되어 집없는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하게되어 평생의 소명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다바쳐 아이들 돌보는 일에 헌신한다. 이 영화는 전후 한국사회 분위기와 전쟁 고아문제를 언급하면서 한 여성의 휴머니티를 강조하여 건강하게 성장한 고아들을 통해 전후한국사회의 희망을 모색하는 민족주의를 강조한 계몽영화에 속한다.
대표작은 <장마루촌 이발사>(1959), <밤에 핀 해바라기>(1965), <물망초>(1969), <수선화>(1973), <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1976)등을 빼어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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