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Hwang Hae / 黃海
출생·사망
1920 ~ 2005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성벽을 뚫고 1949
활동년대
1940, 1950, 1960, 1970, 1980, 1990

필모그래피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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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꽃잎은 저야하나(일명.진실) (서석주, )   
그들도 우리처럼 (박광수, 1990) 심씨  
춘화춘풍 (최기풍, 1989)   
독불장군 (최기풍, 1987) 황노인  
대야망 (배화민, 1987)   
청(블루스케치) (이규형, 1986) 특별출연  
금달래 (장성환, 1986)   
이 한몸 돌이 되어 (최무룡, 1983)   
땜장이 아내 (박철수, 1983)   
철인들 (배창호, 1982)   

기타정보

주요 영화작품
성벽을 뚫고(1949,한형모감독)
청춘쌍곡선(1956,한형모감독)
한많은 청춘(1958,군영순감독)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1959,신상옥감독)
사랑의 함정(1960,강찬우감독)
5인의 해병(1961,김기덕감독)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임권택감독)
검은 장갑의 여인(1962,심우섭감독)
급행열차를 타라(1963,김묵감독)
새벽의 비상선(1964,신현호감독)
도망자(1965,이강원감독)
심술각하(1966,이형표감독)
이조잔영(1967,신상옥감독)
수학여행(1969,유현목감독)
독짓는 늙은이(1969,최하원감독)
특공대와 돌아오지 않는 해병(1970,설태호감독)
대전장(1971,박호태감독)
평양폭격대(1971,신상옥감독)
부초(1978,이한욱감독)
관세음보살(1978,최인현감독)
슬픔은 저별들에게도(1978,설태호감독)
심봤다(1979,정진우감독)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정진우감독)
철인들(1982,배창호감독)
독불장군(1987,최기풍감독)
그들도 우리처럼(1990,박광수감독)
하고싶은 말
2005. 2. 9 작고
수상내역(영화)
독짓는 늙은이-한국연극영화예술상(6회) 연기상/평양폭격대-대종상(11회)남우주연상/부초-한국연극영화예술상(14회)최우수연기상/심봤다-대종상(18회)남우조연상/대종상(1961) 남우조연상/한국영화 예술상(1970) 남우주연상/청룡상(1971) 남우조연상/대종상(16회) 특별상

1970년 제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연기상 (<독짓는 늙은이>)/
제13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독짓는 늙은이>)/
1971년 제8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황혼의 제3부두>)/
1972년 제11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평양폭격대>)/
1978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부초>)/
1979년 제18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 (<심봤다>)/
2003년 보관문화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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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형모] 박승배 촬영감독이 본 한형모 “그때 당시 악극계에서 활약 하던 사람들을 많이 픽업했죠. <자유부인>의 김동원씨도 악극계에서 활약하던 사람이고, 황해씨(각주-한형모 감독의 1949년작 <성벽을 뚫고>로 영화계 데뷔)도 그렇죠. 황해씨를 데리고 왔을 때는 일성(日星)이 있었대... by.박승배(촬영감독) 2008-08-28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0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경성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황해는 일제 말기에 만주와 톈진 등지를 돌아다니던 프로파간다 악극단 신태양(新太陽) 소속 배우로 활동했다. 그곳에서 그는 비밀리에 조선독립군의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일본군부대 위문공연 후에 조선인 병사 현황을 보고하는 등의 일을 했다고 전해진다(경향신문). ‘황해(黃海)’라는 예명은 그가 젊은 시절 독립운동 진영에 몸담게 되면서 알게 된 백범 김구 선생이 그에게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한겨레). 1949년 한형모 감독의 <성벽을 뚫고>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같은 감독의 <청춘쌍곡선>(1956), 김기덕의 <5인의 해병>(1961), 강대진의 <마부>(1961), 김묵의 <현상붙은 사나이>(1961), <급행열차를 타라>(1963), 유현목의 <김약국의 딸들>(1963), 이용호의 <불붙은 대륙>(1965), 이강원의 <도망자>(1965), 이만희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 등 다수의 영화에서 주연 및 조연으로 연기했으며, 특히 액션 영화에서 빛을 발했다. 최하원 감독의 <독짓는 늙은이>(1969)에서의 호연으로 백상예술대상,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신상옥의 <평양폭격대>(1971)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는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며, 한국영화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보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1990년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에 ‘심씨’ 역을 맡아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2005년 지병인 당뇨병으로 별세했다. 그의 아내는 가수 백설희이고, 아들은 가수 전영록이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79년 10월 8일자 7면
한겨레신문 2005년 2월 10일자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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