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하
Yoon Yang-ha / 尹良河
출생·사망
1940 ~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빙점(김수용감독) 1968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필모그래피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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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란의 연가 (김영한, 2003) 원장
퀵맨 (이혁수, 2002) 아버지
천사의 시 (김영한, 2001)
골뱅이@실명제 (석도원, 2001) 교장선생님 out
그 여자의 숨소리 (방순덕, 1995)
도둑과 시인 (진유영, 1995) 한회장
립스틱 그리고 남자의 사랑 (고응호, 1994) 박수종
오사카의 푸른 밤 (정명, 1993)
여자의 시대는 끝나지 않는다 (이진, 1992)
나의 아내를 슬프게 하는 것들 (고영남, 1991) 황판사

주요경력

한국 영화배우협회 23, 24대 회장 역임
한국 영화배우협회 명예회장
바르셀로나, 아틀란타 올림픽 한국 유도 대표팀 단장
대한 유도회 수석 부회장
1985년 한국영화인협회 연기분과위원회 위원장
1990년 대한유도회 여성분과 위원
1992년 대한유도회 여성분과 위원장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대학에서 유도를 전공하고 YMCA에서 유도사범을 하고 있었던 나는 당시 합도영화사에서 실시한 오디션에서 윤정희씨와 함께 뽑히게 되었다. 전부터 김승호, 박암, 장민호씨의 연기에 매료되어 홀로 연기공부를 해오던 나에게 있어서는 더 할 수 없는 기회였던 것이다. 이후 김수용 감독님의 "빙점"을 시작으로 각양각층의 인생을 연기해오고 있다.
주요 영화작품
소문난 여자(1966,이형표감독)
폭로(1967,정진우감독)
빙점(1967,김수용감독)
시발점(1969,김수용감독)
필살의 검(1969,김시현감독)
벌거벗은 태양(1970,임원식감독)
밤차로 온 사나이(1970)
원한의 두 꼽추(1971,임권택감독)
요검(1971,임권택감독)
별이 빛나는 밤에(1972,김기덕감독)
앙케의 영웅들(1973,김 묵감독)
일요일의 손님들(1973,김수용감독)
악인의 계곡(1973,김 묵감독)
하얀 손수건(1974,정소영감독)
흑귀(1976,이용민감독)
임진란과 계월향(1977,임권택감독)
오륙도 이무기(1978,김영효감독)
30일간의 야유회(1979,최하원감독)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정진우감독)
만다라(1981,임권택감독)
아벤고 공수군단(1982,임권택감독)
불의 딸(1983,임권택감독)
이 한몸 돌이 되어(1983,최성룡감독)
일송정 푸른솔(1983,이장호감독)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1984,임권택감독)
물목(1985,조명화감독)
씨받이(1986,임권택감독)
물망초(1987,이미례감독)
지옥의 링(1987,장영일감독)
지금은 양지(1988,진유영감독)
립스틱 그리고 남자의 사랑(1994,고응호감독)
도둑과 시인(1995,진유영감독)
갈매기 떼
애착작품 및 사유
"갈매기떼"이 작품은 차범석씨 원작으로 뭍 사나이의 젊음의 의지를 잘 나타낸 작품으로 당시 시대상과도 잘 어울렸고, 주제가 내 성향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밤차로 온 사나이"박노식씨와의 액션씬에서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는 것이었는데 뼈가 부러지는지도 모르고 열연하였던 기억이 난다.
"빙점"나의 데뷔작으로 연기에 대한 기틀을 세울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하고싶은 말
아드님도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요...나를 닮아 건장한 체구(186Cm, 78Kg)에 얼굴선이 굵은 아들(윤세웅)은 어릴 적부터 연기에 재능을 보였으나 처음에는 만류했다. 연기자의 길이란 겉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그렇게 쉬운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극구 만류하자 그 뜻을 접고 운동을 시작, 아이스하키 국가대표까지 지내 포기했는가 싶었는데 97년 SBS탤런트 공모에 몰래 응시, 합격했다. 자식이 원하는 일이고, 이제 "은실이"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가능성 있는 신인으로 떠오른 아들을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 생각이다.
남부군의 요새로 유명한 해문산 자리에 청소년 수련원을 겸한 YOUTH HOSTEL을 짓고 있다. 날로 나약해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심신 수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열악한 연기 환경이지만 후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해 주었으면 한다.
영화속 명소
우리나라에서는 헐리우드 영화처럼 광활한 광야를 배경으로 한 전쟁물을 촬영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다만 위안이 된다면 이장호 감독과 함께 "일송정 푸른솔"을 찍었던 광릉내 일대가 그런대로 광활한 평야의 일부분이라도 그려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일찍이 운동을 시작한 나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하는 성격이다. 운동경기에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뛰어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승부근성이 몸에 밴 나는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도 온몸을 바쳐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내 자신이 편했고, 관객들도 그런 나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역할을 해 봐서 역할에 대한 욕심은 그렇게 없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김승호 선생님이 연기하셨던 서민적이고 우직한 연기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자기소개 및 취미
지난 30여년간 저의 연기를 사랑해 주시고 기억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저는 지금도 테니스, 등산등으로 체력을 지키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유도 8단인 저는 우리나라 유도의 발전을 위해서도 미력하나마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날로 나약해지는 청소년들의 심신을 개선할 수 있는 시설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윤양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항상 여러분에게 새롭고 신선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따뜻한 사랑과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취미: 테니스
특기: 유도, 골프
수상내역(영화)
1972년 전남일보 신인상/
1973년 호남일보사 남우조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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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40년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체육학과에서 유도를 전공하고, 국가대표 선발전 준결승까지 올라갈 정도의 유도 실력을 갖추었으나 영화배우의 꿈을 품고 충무로의 한국배우전문학원을 다니며 김수용 감독과 연을 맺는다(조선일보). 그래서 처음 출연했던 역할이, 1967년 3월 <산불>에서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경찰 셋 가운데 한명으로 단역 출연이었다. 이때 김수용 감독이 '배우의 감정은 마르지 않는 좋은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뜻에서 좋은 강물, 즉 양하(良河)라는 예명을 만들어준다(씨네21). 그리고 곧바로 그 다음 달, 김수용 감독의 다음 작품 <빙점>에서 조역을 맡으며 영화배우로 정식 데뷔한다. 데뷔 이후, <동경특파원>(1968), <지하실의 7인>(1969), <30년만의 대결>(1970) 등 주로 액션 영화에 출연하여 액션 연기를 펼치는 한편, <까치소리>(1967), <언제나 타인>(1969) 등의 드라마에서도 호연을 보여준다. 임권택 감독과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20여 편의 영화에서 작업했으며, 김수용 감독과는 1970년대 중반까지 10여 편의 영화에서 작업한다. 1985년에는 한국영화인협회 영화배우분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유도에 대한 열정도 버리지 않아 1990년대 중반에는 대한유도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때 유도 대표팀 단장을 맡기도 한다.

* 참고문헌
조선일보 1967년 4월 30일 8면
김수용, "배우의 예명짓기", 『씨네21』 175호(1998년 11월 10일)

[작성: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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