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충식
Shin Chaong-shik / 申忠植
출생·사망
1942 ~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1968
활동년대
1970, 1980, 1990, 2000, 2010

필모그래피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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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마마 앤드 파파 (장태령, 2010) 구멍가게주인
순정만화 (류장하, 2008) 세탁소부
조폭마누라 3 (조진규, 2006) 기철부
그림일기 (고영남, 2000) 두호부
자카르타 (정초신, 2000) 진사장
실락원 (장길수, 1998) 특별출연
베이비 세일 (김본, 1997) 특별출연
박봉곤 가출사건 (김태균, 1996) 고사장
보스 (유영진, 1996)
러브스토리 (배창호, 1996) 제작자

주요경력

1967년 TBC성우 3기 입사
1968년 MBC탤런트(특기생)활동
1980년 극단'대하'창단 단원
1980년 한국 TV연기자협회 감사
1987년 서울특별시장 감사장
1990년 대한 테니스 협회 이사
1991년 대한 테니스협회 심판 자격
1992년 ITF국제 공인 심판자격
1992년 <Rule of Tennis> 번역 출판
1993년 <테니스 룰 북> 자작 출간
1993년 MBC탤런트 실장
1996년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
1997년 영화협회 성남지부 감사
1999년 한국 방송 연기자협회 이사장 당선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원래 수의대학 출신이다. 대학졸업하고 몇개월 개업까지 했었는데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이 신이 나서 수술이고 뭐고 잘 하는데 대학다니면서 연극생각만 나는 거다. 그래서 과감히 정리하고 극단을 따라다니면서 몇개월 고생하다가 TBC에서 성우모집을 하길래 시험을 치고 덜컥 붙었다. 합격하고 다니는데 주위의 시선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집에선 얼마나 한심했겠나.대학 정상적으로 졸업하고 좋은 일터까지 가졌던 놈이 저러고 다니니..... 당시는 성우나 연예계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대상이 아니어서 나도 갈등이 오고,결국 일년도 못하고 그만 뒀다. 사람이 우스운게 하고 있으면 하기 싫고 멀어지니까 또 마음이 가고 그러던 중MBC에서 성우모집을 하는데 한 일 이년만 있으면 텔레비젼이라는 게 생긴다는 거고 거기서 활동할 수 있다는 거다. 거기어 마음이 혹했다. 그렇게 성우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전격적으로 텔레비젼의 시대가 왔다.일단 연기에 대한 기본적인 훈련이 돼 있던 사람들이니까 성우하던 사람들이 초기에 특기로 많이 갔다. 맨처음 맡은 역할은 <대원군>에서 김좌근 역할이다.
주요 영화작품
어우동(1985,이장호감독)
외인구단(1986,이장호감독)
임진왜란
아다다(1987,임권택감독)
성공시대(1988,장선우감독)
서울무지개(1989,김호선감독)
물의 나라(1989,유영진감독)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임권택감독)
불의 나라(1989,장길수감독)
우묵배미의 사랑(1990,장선우감독)
사의 찬미(1991,김호선감독)
천재선언(1995,이장호감독)
러브스토리(1996,배창호감독)
박봉곤 가출사건(1996,김태균감독)
실락원(1998,장길수감독)
주요기타작품
■ 주요작품(TV)
1973년 MBC <수사본부 113>
1980년 MBC <전원일기> 종기 부 역
1982년 MBC <고백>
1982년 MBC <미련>
1984년 MBC <설중매> 임사홍 역
1985년 MBC <임진왜란>
1988년 MBC <모래성>
1988년 MBC <원미동 사람들>
1989년 MBC <황제를 위하여>
1989년 MBC <대도전>
1989년 MBC <상처>
1989년 MBC <제5열>
1990년 MBC <재미있는 세상> 서형일 역
1992년 MBC <걸어서 하늘까지>
1993년 MBC <일지매>
1993년 MBC <파일럿>
1995년 MBC <제4공화국> 김정렴 역
1998년 MBC <사랑>
1999년 MBC <사랑해 당신을>
2000년 SBS <불꽃> 강욱 부 역
2001년 KBS2 <꽃밭에서>
2001년 MBC <길모퉁이>
2002년 KBS2 <햇빛 속으로>
2002년 KBS2 <장희빈> 김만중 역
2003년 KBS2 <보디가드> 성수 부 역
2004년 KBS2 <4월의 키스> 송영만 역
2005년 SBS <봄날> 서달호 역
2005년 MBC <제5공화국> 신현확 역
2006년 KBS2 <안녕하세요 하느님> 염 교장 역
2006년 MBC <있을 때 잘해> 오병갑 역
2007년 MBC <이산> 홍봉한 역
2010년 KBS2 <프레지던트> 조태호 역

■ 주요작품(CF)
인사돌(1987)
타스타
애착작품 및 사유
어느 하나 꼬집어 말할수는 없다. 일단 TV연기생활을 오래 하면서 단막극이나 여러가지 많은 드라마 연기를 해 왔기 때문에 확실하게 하나 기억남는 것도 별로 없고 영화 역시 배우생활의 맛을 한참 안 후에 하게 된 거고. 제일 오래 한게 <전원일기>니까. 그 작품 하면서는 내 성격도 많이 변화를 했다. 한작품 자체를 이십년 정도 했으니까.연기하면서 캐릭터도 계속 고쳐 나가고 함께 변화하고 .<어우동>촬영시에는 작품의 배경장소와 당시로서는 상당히 새로웠던 의상과 세트들이 기억에 남고 그렇게 사극 고증이 철저했던 작품이 없었다. 오래 기억에 남는건 이렇게 매 작품 할 때마다 순간순간 느껴지는 캐릭터상, 연습하던 과정, 촬영하는 공간들, 관객들의 갈채 그런 것들일 거다.
하고싶은 말
이제 국제화 시대 아닌가. 그에 걸맞게 우리 영화 드라마도 앞으로는 외국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시장에서 미국영화가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것은 주지할 필요도 없는사실 아닌가. 워낙 거대한 자금력과 시장원리를 퍼붓고 있고 만들 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하기 때문에 우리와는 시작 때 계산하는 것부터가 틀린 거다. 상황이 많이 열악하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후배 연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예전에는 종횡으로 선후배가 어울려서 공부도 함께 하고 대사 한마디도 서로 지적해 주고 했는데 스피드화 시대에 상업화, 전문화가 되고 매니저도 등장해서 팀웍이 예전 같지 않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 해도 과거 선배들의 경험이나 연기를 익혀야 하지 않을까? 개성과 혼자서 되기 위해서는 선배들이 쌓아온 연기의 전통이나 정석을 알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속 명소
<어우동>을 찍을 때 충청도 어느 계곡. 물도 맑고, 아주 절경 중의 하나다. <일지매>때의 선운사도 우리나라의 명소다. 그 뒷산 쪽의 암자와 주변경치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방송활동을 주로 하다 보니까 연기할 때 특별히 어떤 스타일을 잡아서 거기에만 몰두하기가 어렵다. 영화는 일년에 한 두편 정도로 여유도 있고 준비과정과 주인공의 성격화를 시키게 되는데 방송연기는 일상생활처럼 흐러가니까. <전원일기>처럼 오래된 캐릭터의 경우에는 밖에서 보기에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도 바뀌고 나도 연기를 하면서 캐릭터를 바꿔 나간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화하지 않겠나. 오래 하니까 이렇게도 셩격변화 시키고 저렇게도 시키고, 나도 성격이 바뀌고,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거다.
맡고 싶은 역할? 나이가 드니까 내면적으로 노인문제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된다. 예전에 노역 맡았을때는 그저 머리에 허연 물 들이고 수염 붙이는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진짜 노인문제,노인이 주인공이 되는 그런 드라마나 영화를 해 보고 싶다. 그런데 흥행성이 없어서 만들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자기소개 및 취미
-테니스협회 국제심판 자격까지 가지고 계신데 언제부터 테니스를?
테니스는 사실 전문적으로 시작한건 아니었고 건강관리도 할 겸 취미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까 테니스 경기 자체에도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큰 대회 열릴 때마다 관심을 갖고 열심히 관전했는데 의아했던 것이 경기 치러지는 걸 보면 한국심판이 없는거다.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까 그때까지 우리나라엔 공인 심판이 없었다. 그래서 되겠나?라는 생각을 하던 중 친분이 있던 차에 도전했는데 영어의 벽이 높았다. 삼분의 일 알아듣고 삼분의 이는 눈치로 보고 했더니 도저히 안되는 거다. 돌아와서 삼년 동안은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테니스 룰에 쓰이는 영어 자체는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게 아니지 않은가? 또 월간지에 테니스 칼럼을 연재하면서 테나스 룰 공부도 더 하는등 요령을 터득하니 자신이 생겨 다시 시험을 봤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시험에 강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구두시험은 눈치 보기에 아마 과락했던 것 같은데 실기에서는 MIPTC라는 프로테니스 멤버들을 관리하는 그학교 생기고 난 이래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자격을 얻은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심판이사를 맡고 여러 활동을 했다. 지금은 동호회 담당위원장을 맡고 있다.
수상내역(기타)
■ 수상내역(TV)
1972년 리포터 연예대상/
1974년 새국민대상 문화상 남자조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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