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인
Yu Ji-in / 兪知仁
출생·사망
1956 ~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그대의 찬손 1974
활동년대
1970, 1980, 2000, 2010

필모그래피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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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역전의 여왕 (김남원,정대윤 , 2010)   
찬란한 유산 (진혁, 2009) 오영란  
그린나이츠 (김상화, 2007)   
미리 마리 우리 두리 (고영남, 1988)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배창호, 1984) 수지  
아내 (황태현, 1983)   
별들의 고향 3 (이경태, 1981)   
사랑이 꽃피는 나무 (고응호, 1981)   
도시로 간 처녀 (김수용, 1981)   
내 모든 것을 빼앗겨도 (박호태, 1981)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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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73년 TBC 동양방송국 14기 입사
2012년 한국예술원 방송연예과 영상연기 전공 겸임교수 임용
2014년 한국예술원 학부장 임용

기타정보

주요 영화작품
그대의 찬손('74,박종호 감독)
광화사('74, 주동진 감독)
피막('80, 이두용 감독)
심봤다('79, 정진우 감독)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84, 배창호 감독) 등 다수
주요기타작품
■ 주요작품(TV)
TBC 드라마 '님'('75) 등 다수
수상내역(영화)
심봤다, 피막, 대종상 여우주연상,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주연상 등 다수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유지인 兪知仁

-배우. 1956년 1월 27일 서울 출생. 본명 이윤희(李潤姬). 중앙대 연극영화과 학사 및 석사.

중앙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중이던 74년, 연방영화사와 주간한국이 공동으로 모집한 신인배우 공모를 통해 연기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TBC TV의 탤런트로도 동시에 활동하였다. 78년 경에 이르면 장미희, 정윤희와 함께 소위 신트로이카를 형성하며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영화에서 먼저 데뷔하였지만 스타덤에 오른 것은 TV를 통해서였는데 영화배우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보인 것은 78년 한해 동안 6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그해 <마지막 겨울>(78, 정소영) (122,459명 동원)로 ‘흥행배우’가 되는데 성공한 그는 이듬해인 79년에는 그해 최다 관객동원을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79, 정소영) (239,718명 동원)를 비롯해서<26×365=0>(79, 노세한) (178,239명 동원) <청춘의 덫>(79, 김기)(176,744명 동원) <불행한 여자의 행복>(79, 변장호)(92,549명 동원) <가시를 삼킨 장미>(79, 정진우)(75,575명 동원)등 다수의 흥행작을 출연하였고 <심봤다>(79, 정진우)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배우로서는 최고의 해를 보냈다. 80년에 접어들어서도 영화출연은 계속되었지만 출연작 수에 비해 흥행성공의 사례는 전 해에 비해 급격히 감소하였다. 80년에 출연했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흥행에 성공하였던 <바람 불어 좋은날>(80, 이장호) (100,228명 동원)과 베니스 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하였던 <피막>(81, 이두용)이 있다. 80년 한해 동안 1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흥행 성과를 올리지 못한 탓인지 81년부터 영화 출연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후 주로 TV 드라마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스타성은 83년경에 이르면 거의 소진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다른 트로이카 스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84, 배창호)가 흥행에 성공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이미숙의 열연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였다. 이후 몇 편의 TV 드라마에 출연한 뒤 80년대 중반 결혼과 함께 사실상 배우활동을 중단하였다.
괴기영화의 괴물(<정형미인)[75, 장일호])에서부터 열녀형의 비련의 여주인공에 이르기까지 그가 맡았던 배역은 매우 다양하였지만 그러한 다양한 배역을 관통하는 특징적인 이미지는 존재했다. 그것은 부유한 신중 간계층 출신의 지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요약도리 수 있는 것이었는데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나 대학의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까지 진학했던 그의 개인사는 이러한 이미지를 강화하는 배경이 되었다. 호스티스 영화가 강력한 관객동원력을 가졌던 시기인 70년대의 여배우들은 술집 여자 배역을 맡는 것을 피할 수 없었으며 그 역시<26×365=0>에서 그가 대학생 출신의 술집여자로 등장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호스티스 영화에서도 그의 지적인 이미지는 계속 유지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성적으로 지배하기 어려운 특유의 카리스마와 연관되는 것이었는데 가난한 주인공 남성을 성적으로 농락하는 부잣집 딸로 등장했던 <바람불어 좋은 날>이나 죽은 아버지를 위해 주도면밀하고 잔인한 복수전을 펼치는 무녀로 등장했던 <피막>은 그와 같은 카리스마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영화들에서는, 70년대 영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던 여성에 대한 가학적인 쾌락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이호걸)

출연
-74 광화사, 그대의 찬 손, 나상, 출세작전, 환녀. -75 정형미인, 태백산맥. -76 돌아온 팔도강산, 푸른 꿈을 가득히. -77 너는 달 나는 해, 마지막 잎새. -78 마지막 겨울, 사랑과 죽음의 기록, 생사의 고백. -79 가시를 삼킨 장미, 경찰관, 내가 버린 남자, 불행한 여자의 행복, 심봤다, 영녀, 오빠가 있다, 26×365=0, 청춘의 덫, -80 갑자기 불꽃처럼, 그때 그 사람, 그 여자 사람잡네, 낯선 곳에서 하룻밤, 마지막 밀애, 매일 죽는 남자, 메아리, 미워할 수 없는 너, 바람불어 좋은 날, 아낌없이 바쳤는데, 여자의 방, 팔불출, 화려한 경험, 휴가받은 여자. -81 고래섬 소동, 그 사랑 한이 되어, 내 모든 것 빼앗겨도, 도시로 간 처녀, 별들의 고향 3부, 여자공부, 피막. -83 아내. -84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88 미리 마리 우리 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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