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원
Nam Koong Won / 南宮遠 / 1934  ~  2024
본명
홍경일 (Hong Gyeong-il)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그밤이 다시오면 1959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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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탈출명령 (박철수, )
[원로영화인 구술채록] 배우 - 남궁원 (, 2015) 구술자
한국 액션영화의 대부, 영화감독 정창화 (장정혜, 2003) 인터뷰
(이두용, 1999) 홍장군
크레이지 댄스 (박한순, 1996)
휘파람부는 여자 (신우철, 1995) (uncredited)
피아노가 있는 겨울 (조금환, 1995) 황사장
비설 (정길채, 1995) 미애부
아빠는 보디가드 (김기영, 1994) 현숙부
대통령의 딸 (이영실, 1994) 대통령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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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85년 한국 영화인협회 부이사장
1991~97년 한국영화배우협회 연기분과 회장
1991~97년 네델란드 네데코 한국지사 지사장
1997년 한국영화배우 복지회장
2002년 헤럴드미디어 고문
2004년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회장
2004년 프랑스 에르메스 공로상
2007년 제44회 대종상영화제 심사위원장
2007년 12월 헤럴드동아TV 명예회장
2011년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로 TV 드라마 입문
2013년 사단법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제25대 회장
2013년 대한민국예술원 신임 회원으로 선출
2015년 아름다운예술인상 공로예술인상

기타정보

주요기타작품
■ 연극
1961년 <로미오와 줄리엣>
1962년 <부활>
1963년 <닥터 지바고>

■ TV
2011년 SBS <여인의 향기>

■ CF
바이스타(태평양화학)
경남모직(남성복)
아로나민골드
갤럭시(제일모직)
훼미리쥬스(해태)
기넥신(약품)
펄칼크
금강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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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를 다니던 시절부터 유명 감독들이 캐스팅하고자 노력했으나, 연예인보다는 교수나 외교관에 뜻을 두고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에 유학을 준비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그 치료비를 마련하고자 친구의 아버지였던 아세아영화사의 사장 이재명을 찾아간다(신동아). 그렇게 영화계에 입문하여 처음 작업한 영화가 1958년 노필 감독의 <그 밤이 다시 오면>이다. 이어 신상옥 감독과 작업한 <자매의 화원>(1959)에서의 호연으로 이대엽과 함께 1959년의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꼽히며(동아일보1959), 신필름의 전속 배우가 된다.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던 지라 <닥터 지바고>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연극 무대에도 올라 연기를 배우려 노력하지만, 실제 본격적인 연기공부가 되었던 것은 홍콩에서의 체류 기간이었다고 한다. 신상옥 감독이 홍콩과의 합작 영화를 제작하며 6개월, 8개월씩 머물게 된 홍콩에서 일이 없을 때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그 영화 속 연기를 메모하고, 연습하며 배우로서 많은 성장을 한다(신동아). 신필름에서 <빨간 마후라>(1964), <내시>(1968) 등의 대표작들을 작업하는 한편, 1960년대 중반 이후 007 시리즈의 성공으로 생산된 <국제간첩>(1965), <극동의 무적자>(1970) 등의 스파이 액션물에서 주인공 역할들을 맡아한다. 이렇게 남성적이지만 수트가 잘 어울리는 세련된 역할을 자신의 이미지로 구축하는 한편, 1970년대 김기영 감독과의 작업인 <화녀>(1972), <충녀>(1972),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등에서는 나약한 남성의 모습을 연기하기도 한다. 1980년대 이루어진 이두용 감독과의 작업에서는 주로 악역을 맡아 1960년대 구축된 이미지를 벗어내며 폭 넓은 연기를 해낸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59년 12월 25일 4면
심영섭, "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 2 - 한국의 ‘그레고리 펙’ 남궁원", 신동아 통권 529호 (2003년 10월)

[작성: 황미요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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