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림
Kim Ha-rim / 金河林
출생·사망
1940 ~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속 쥐띠부인 1972
활동년대
1980, 1990, 2000, 2010

필모그래피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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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내 나이가 어때서 (한명구, 2018) 주례
가자, 장미여관으로 (신정균, 2013) 기획사대표
화려한 휴가 (김지훈, 2007) 수습위원
저 하늘에도 슬픔이 (한명구, 2007) 문방구 주인
눈부신 날에 (박광수, 2007) 안과수술실의사
카리스마 탈출기 (권남기, 2005) 혜성고교장
우먼파트너 놀자 (김정용, 2000) 비디오방학생여
우먼파트너 놀자 (김정용, 2000) 부동산 김사장
엑스트라 (신승수, 1998) 특별출연
세상밖으로 (여균동, 1994)

주요경력

1968년 TBC 입사
서울극단 부대표
TBC총무
방송 연예인 노조 수석 부회장
KBS 극회 부회장
탤런트 협회이사
1972년 한국영화인협회 시나리오분과위원회 이사
1980년 탤런트협회 정화위원회 위원
1987년 한국영화임협회 시나리오분과위원회 위원장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비극적인 영화를 좋아했던 저는 어려서 부터 가설 극장에 많이 다녔다. 50-60년대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와 상황이 아니었기에 어른들 몰래 극장에 다니면서 영화를 보았고 배우에 대한 꿈을 가졌고,꿈을 키웠다. '장마르촌의 이발사','외나무 다리'등의 영화에서 열연한 최무룡씨의 연기는 저에게 연기자의 꿈을 갖게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충남에서 사범 고등학교를 다녔고 저의 가족은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던 해에 서울로 이사해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 나는 선생님의 길을 멀리하고 일반 대학에 들어가 한국배우 학원에 다니면서 꿈을 실현 시킨다. 교편에 계셨고 아들 역시 선생님이 되길 원하셨던 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여 몇년 동안 부모님을 만나지 못하고 연기 생활을 했던 때도 있었다. 학원에서 연기 공부를 하던 중 '군번 없는 용사'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 한유정씨의 권유로 68년TBC에 입사해 '124군부대'로 첫 방송 출연을 했다. TBC와 KBS의 통합으로 인원이 많아지자 영화쪽으로 다시 눈을 돌린 저는 영화에서도 첫테이프를 끊고 ,연극은 탤런트들로 구성된 '서울 극단'에서 시작했다.
주요 영화작품
속 쥐띠부인(1972,곽정환감독)
철권(1973,장일호감독)
미인(1975,이형표감독)
금욕(1976,김수형감독)
왕룡(1976,고영남감독)
청색시대(1976,정인엽감독)
어머니(1976,임원식)
뉴욕44번가(1976,이두용감독)
대근이가 왔소(1979,최영철감독)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1980,김수형감독)
여자의 이 아픔을(1980,박호태감독)
평양맨발(1980,남기남감독)
난 모르겠네(1980,심우섭감독)
애권(1980,이형표감독)
요(1980,김영효감독)
자유부인(1981,박호태감독)
노상에서(1981,남기남감독)
슬픈 계절에 만나요(1981,박남수감독)
0번 아가씨(1981,이사언감독)
피리소리(1981)
소림신방(1982,고응호감독)
질투(1983,김인수감독)
0시의 호텔(1983,남기남감독)
사부대형(1983,)
꽃잎이어라 낙옆이러라(1983,하휘룡감독)
어우동(1985,이장호감독)
칠수와 만수(1988,박광수감독)
껄덕쇠(1989,김진국감독)
그들도 우리처럼(1990,박광수감독)
대명(1993,김정용감독)
주요기타작품
■ 주요작품(CF)
농심 해물탕면
거품비누

1982년 TV 문학관 - 메밀꽃 필 무렵, 파도 (KBS)
1984년 경상도 아가씨 (KBS)
1987년 토지 (KBS)


1976년 푸른 꿈을 가득히 (KBS 라디오)
애착작품 및 사유
'대근이가 왔소' 영화에서의 첫 데뷔작이었고 신인으로서 큰배역이었고 처음이라서 고생도 많이 했다.그리고 이 영화를 하면서 '이제는 배우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었고 배우라는 것을 실감했다. '인목대비'간신 이이첨을 연기했던 작품이었다. 윤정희씨 주연으로 김순철씨등의 인기 배우와 연기했던 드라마로 역할이 개성있었고 그 동안 의 연기가 축약되어 나타났다는 연기평을 들으며 인정을 받았던 작품이라서 애착이 간다. 한편TV문학관'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계란 장사 연기는 많은 사람들로 부터 연기 인정을 받게 하는 작품이었다.
하고싶은 말
우선 연기자는 건강하고 겸손하고 인간적인 됨됨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스타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금전을 떠나서 연기에 몰입해야하고 경험을 관찰한 것을 기록해 두면 언젠가의 연기에 도움이 될것이다. 한국영화계에 바라고 싶은 점은 영화가 많이 활성화 되었으면 하고 젊은 감독들이 나이든 연기자를 출연시켰으면 한다. 일본등의 다른나라의 연기자에 비해 우리나라의 연기자의 수명이 많이 짧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연기생활 30년쯤되면 우쭐할 수도 있는 그인데 연기에서 보여준 진실한 모습이 실생활에서도 거짓이 아님을 보여준 그는 말한다. 지금의 본인이 있게한 작가 한유정씨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앞으로 힘 닿는 한 연기를 계속할 것이다.
영화속 명소
방송TV문학관에서 좋은 장소가 있었다. 강원도 정선 물레방아간-화엄약수가 있는 장소로써 산과 민가와 냇가 강물이 함께 있어서 한적한 산골마을 을 그리기에 좋은 장소이다. 이드라마에서도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한적한 산골마을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밖에 구례의 화엄사-산속에 있는 사찰이다. 등산코스로도 좋고, 너머에 지리산이 있고 온천도 참 좋다. 요즘은 대중 불교라고 해서 많은 사찰이 산밑에 지어지는데 화엄사는 쌍계사와 마찬가지로 산속에 있기에 진정 사찰다운 사찰이라고 생각된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30여년 동안 내시,간신,머슴등의 역할을 많이 했기에 서민층의 팬이 많다.주인공의 멋있는 연기보다는 격이 높지 않은 대중을 우선시하는 서민층연기를 계속하고 싶다. 일상에서도 있는 그대로 과장 안하고 진솔하게 생활한다. 연기에서도 그런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또한 어떤 배역을 맡으면 그에 가장 가까운 연기를 하기 위해서 공부한다. 내시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동두천 근처에 있는 내시촌에 갔었다.노력한 만큼 내시 연기로 인정을 받아 방송에서의 내시,계란장사하면 김하림, 영화에서 내시, 계란장사하면 김희갑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조연 역시 그 배역을 위해 충분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내시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거나 농촌 드라마에서 농사 짓는 사람이 지게를 어설프게 지는 것등의 연기를 볼때에는 아쉽다. 꼭해보고 싶은 배역이라면...주연배우에 대한 욕심은 없다 감초역할을 하는 조연으로 만족한다. 배우가 어떤역할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다면 자수성가한 회장의 연기를 해 보고 싶다. 고생을 많이 해서 사업을 일으킨 나이 많은 회장.
자기소개 및 취미
불자로서 주로 사찰에 다니면서 스님들과 이야기를 즐긴다. 저는 슈퍼스타 축구팀에 속하여 매주 운동을 한다. 한때 교육자도 꿈꾸었던 본인이 몰래 영화를 많이 보게 되면서 부터 시작된 배우에 대한 매력은 우선 공인이라는 점이다. 얼굴하나로 신분이 보장되고 공인이라는 입장이기에 본인의 실생활 자체도 다른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자제하고 건전한 생활을 하기위해 노력한다. 공인이라는 단점이 있다면 고등학교때까지 시골에서 지낸 누구보다 솔직하고 순박한 시골청년의 모습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아 11년동안 이나 TBC에서 총무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영화연기의 매력,이점이라면 스튜디오 연기보다 많이 편하다. 방송에서는 정해진 시간 틀안에서 3대의 카메라 모두를 신경쓰면서 긴장하게 되는데 영화는 우선 트인곳의 대자연에서의 촬영이 많아 답답하지가 않아 좋고, 연기의 활동범위도 넓어서 연기하기에 부담이 덜되고 편하다. 지식들이 영화계일을 한다면 돕겠다. 아들이 촬영감독을 하고자 하는데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연기를 하는 자신이나 촬영을하고 싶어하는 아들이나 둘다 예술가라고 생각하기에 예술가로서의 동질감까지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다.'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몸도 맘도 젊게 생활한다. 그래서 나이를 불문해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젊은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고 편하고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술과 담배을 안하는 것이 가장 큰 건강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상내역(영화)
1972년 제11회 대종상 영화제 : 각본상 (쥐띠부인)/
1987년 제26회 대종상 영화제 : 각색상 (감자)/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40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나왔고, 1967년 변장호 감독의 <태양은 내 것이다>로 시나리오 작가 데뷔한다. 이후 '전천후 작가'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멜로드라마, 청춘극은 물론이고 시대극까지 폭넣은 장르의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경향신문b). <태양은 내 것이다> 이후 변장호 감독과는 <안개속에 가버린 사랑>(1969), <비내리는 명동거리>(1970), <빗속에 떠날 사람> 등 멜로드라마를 작업하고, 이형표 감독과는 <푸른 침실>(1970), <맹물로 가는 자동차>(1974), <괴짜만세>(1977) 등 10여 편의 영화에서 멜로드라마와 하이틴 멜로드라마를 작업하는 한편, 이두용 감독과는 <죽엄의 다리>(1974), <무장해제>(1975), <뉴욕 44번가>(1976) 등 액션 영화를 작업한다. 1971년에는 이종호, 이희우, 김문엽, 김시연, 박철민 등 당시의 젊은 시나리오 작가들과 함께 '오리지널71'이라는 이름의 한국영화 부흥을 위한 작가 모임을 결성하기도 한다(매일경제). 1970년대 중반 이후 방송 드라마로 주요 활동 무대를 옮겨 <메밀꽃 필 무렵>(1982), <파도>(1982) 등 TV 문학관의 여러 작품들을 각색하기도 하고, 특히 1987년에는 박경리 원작 <토지>의 극본을 맡아 이후 22개월간 원고지 2만6천여 매 분량의 작업을 하기도 한다(경향신문a). 1987년 <토지> 제작 이전에, 동료 작가들인 이희우, 나한봉, 홍종원 등 세 명의 작가들과 함께 각색한 김동리 원작, 변장호 감독 <감자>로 제26회 대종상 영화제 각색상을 타기도 한다. 1993년 당뇨병 치료를 위해 적혈구 수혈을 받던 중 뇌사 상태에 빠져 1993년 4월 3일 53세를 일기로 별세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89년 8월 8월 12면
경향신문b 1993년 4월 4일 13면
매일경제 1971년 5월 27일 7면

[작성: 전민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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