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영화제
Daejong Film Awards
시작년도
1962년
개최월
12월

정부가 주관하는 영화 부문의 유일한 상으로 1958년부터 문교부(현 교육부)에 의해 실시되던 ‘국산영화상’을 2회 이후부터 공보부(현 문화관광부)에서 주관하면서 1961년 대종상으로 명칭을 바꾸어 1962년 제1회 시상식을 가졌다. 그 후 1969년 제8회와 1970년 제9회 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영화 부문)으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1971년 제10회부터 다시 대종상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제12~17회(1973~1978년)까지는 문공부와 영화진흥공사가 공동주최했고, 18~24회까지는 영화진흥공사 단독으로 행사를 주최했다. 제25회(1986년) 때는 다시 영화인협회와 영화진흥공사가 공동주최했으며, 이때부터 영화인협회의 본격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 제30회(1992년) 때부터 민간기업의 참여가 이루어졌는데 삼성그룹이 재정 후원을 담당했다. 이에 따라 행사주최도 영화인협회와 삼성 공동으로 이루어졌다. 제32회(1994년) 때부터는 삼성 계열 문화재단인 삼성미술문화재단이 대신 참여해 영화인협회와 삼성미술문화재단 공동주최로 바뀌었다. 대종상은 한국영화계의 대표적 영화제로 존속하면서 우수영화의 발굴 및 포상을 통한 진흥효과를 거둔 것은 긍정적이지만 정부의 영화계 통제수단으로 변질되거나 포상을 둘러싼 영화인들의 마찰 등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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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79
심의서류 테이블
순번 수상부문 작품명 제작년도 수상자
1 최우수작품상 깃발없는 기수 1979 화천공사
2 특별상 돛대도 아니달고 1979 이경태
3 우수반공영화상 지옥의 49일 1979 합동영화
4 감독상 심봤다 1979 정진우
5 남우주연상 달려라 만석아 1979 최불암
6 여우주연상 심봤다 1979 유지인
7 각본상 지옥의 49일 1979 이문웅
8 촬영상 장마 1979 유영길
9 남우조연상 심봤다 1979 황해
10 여우조연상 을화 1979 정애란
11 음악상 돛대도 아니달고 1979 정민섭
12 미술상 깃발없는 기수 1979 김유준
13 편집상 터질듯한 이 가슴을 1979 김희수
14 녹음상 심봤다 1979 김병수
15 녹음상 심봤다 1979 양후보
16 조명상 심봤다 1979 최입춘
17 신인상(남) 누가 이 아픔을 1979 이영주
18 신인상(여) 청춘의 덫 1979 원미경
19 특별상(우수아동영화) 달려라 만석아 1979 태창흥업
20 특별상(아역부문) 달려라 만석아 1979 정용식
21 우수작품상 장마 1979 남아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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