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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우먼 (미츠다케 쿠란도,2014)

글:김봉석(영화평론가) / 201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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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우먼

일본에는 B급 영화의 전통이 선명하다. 메이저영화사가 아닌 소규모의 영화사에서 만들어낸 영화들을 주로 칭하지만 불황이었던 1970년대에는 도에이, 니카츠, 신도호 등의 메이저에서도 기묘한 영화들을 양산했다. 이시이 테루오의 <공포기형인간> <망팔무사도>와 스즈키 노미후리의 <도쿠가와 섹스 금지령> <성수 학원> 같은 ‘불량성감도’영화를 만든 도에이가 선두였다. 그중에서도 도에이의 여반장 시리즈와 공포여자고교 시리즈, 사소리 시리즈 등은 ‘핑키 바이올런스’라고 불렀다. ‘불량’ 여자들의 세계를 그린 야하고 폭력적인 영화들이었다. 80년대에 V시네마로 이어진 B급영화의 전통은 지금도 <라이브>와 <데드스시>의 이구치 노보루, <헬 드라이버>와 < V 소녀 대 F 소녀 >의 니시무라 요시히로 등의 감독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미츠다케 쿠란도의 <건 우먼>은 일본 B급 영화의 흐름에 놓인 영화다. 벌거벗은 여인이 등장하여 잔인한 살육을 벌인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여성의 팔에 총을 장착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블 데드> 시리즈의 애쉬처럼 팔에 전기톱을 단 소녀가 등장하는 <머신 걸>이라는 영화도 있었고, 팔에 사이코건을 달고 싸우는 우주해적 코브라도 있다. <건 우먼>의 일본 제목은 ‘여체총(女?銃)’이었다. 그런데 여체가 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체에 총을 집어넣는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에서 제임스 우즈가 배에 총을 집어넣는 장면이 있다. 그 몽환적인 장면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이상한 몽상처럼 흘러가는 괴이한 영화가 <건우먼>이다.

재벌의 아들인 하마자키는 수많은 여성을 강간, 살해했다. 그에게 아내를 잃은 의사 마스터마인드는 복수를 하기 위해 인신매매 조직에서 마유미를 데려온다.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마유미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사격과 격투술을 배운다. 미국으로 도망 온 하마자키는 늘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있다. 유일한 기회는 더 룸이라 불리는 곳이다. <호스텔>의 그곳처럼, 부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파라다이스 혹은 지옥. 시체애호증인 하마자키는 더 룸에서 변태적 욕망을 해소한다. 보디가드가 따라가지 못하지만 마유미도 무기를 가져갈 수 없고, 경비에게 무기를 빼앗아도 지문 인식이기에 사용이 불가능하다. 벌거벗은 채 시체로 위장해 들어가야 하는 마유미가 총을 가져갈 방법은 단 하나다. 몸을 갈라 총을 집어넣고는 다시 꿰매는 것이다.

<건 우먼>은 시종일관 비장하다. 그들이 처한 상황, 그들이 하는 행동 모두가 처절하다. 그러나 현실을 연상시키는 리얼리티는 없다. 지극히 과장된 상황과 연기만이 있다. 마유미의 스토리를 들은 킬러가 말한다. “그거 일본 만화에나 나오는 거잖아. 뤽 베송 영화나.”영화 속 캐릭터조차도 딱히 현실이라고 믿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마유미가 자신의 몸을 갈라 총을 꺼낸 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22분이다. 그 이상이면 출혈 과다로 죽게 된다. 점점 몽롱해져 가는 상황에서, 온몸을 적신 피가 유니폼이 된 마유미가 악당들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박력이 넘친다. 적을 바라볼 때의 마유미의 눈은 강렬하게 불타오른다. 너무나 비현실적이지만 마유미가 펼치는 액션은 에너지가 넘쳐 보는 사람을 들끓게 한다. 물론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만

마유미도, 마스터마인드도 모든 것을 걸었다. 마스터마인드는 마유미를 각성시키기 위해 많은 이를 죽였다. 때로 무고한 이도. 하지만 마스터마인드는 말한다. ‘복수를 끝내고 나면 나는 지옥으로 갈 거야.’자신이 나락으로 빠질 것을 알면서도 복수를 해야만 할 때가 있다. 마유미는 그의 도구로 시작했지만, 기꺼이 자신의 의지로 킬러가 된다. <건 우먼>의 영상도, 음악도, 마유미를 연기하는 아사미도 모두 70년대의 ‘핑키 바이올런스’를 연상시킨다. ‘핑키 바이올런스’는 단지 여성을 관음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남자를 압도하면서 그녀들은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길로 나아간다. <건 우먼>의 마스터마인드도 그런 말을 한다. “남자는 피의 1/3만 흘려도 죽지. 여자는 2/3을 잃어도 아직 살아 있어. 신은 남자보다 여자를 정교하게 만들었어.”

마유미를 보고 있으면 <여수 701호 사소리>를 비롯해 ‘핑키 바이올런스’의 그녀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드모델로 시작한 아사미는 AV 배우와 영화배우를 겸업했다. 그러다 만난 이구치 노보루 감독에게 ‘핑크 바이올런스’의 여배우들을 닮은 마스크라는 말을 들었고, 주로 미소녀 스타일을 보여줬던 아사미는 점차 액션계열 배우로 이미지를 바꾸게 된다. 2009년에는 AV를 은퇴했고 <고스 로리 처형인> <헬 드라이버> <데드 스시> <아이언 걸> 등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건 우먼>을 만든 1973년생인 미츠다케 쿠란도 감독은 고등학교 때 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졸업 후 미국에서 방송과 영화판에서 일하다가 2004년 <몬스터즈Monsters Do not Get to Cry>로 감독 데뷔를 한다. 영화에 뛰어든 계기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격돌Dual>과 미스미 겐지의 <아들을 동반한 검객>였다고 한다. 2008년에는 스승으로 여기는 오카모토 키하치에게 바치는 <사무라이 어벤져>의 주연, 각본, 연출, 제작을 했다. 2013년 작인 <건 우먼>은 유바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2015년 일본영화감독협회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사무라이 어벤져>에서 검, <건 우먼>에서 총을 다룬 미츠다케 쿠란도는 신작인 <가라데 킬>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무기로 쓰고 있다.

미츠다케 쿠란도는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했으면서도 지극히 일본적인 영화를 만든다. 그것도 B급의 잔혹하고 뒤틀린 영화를. 그걸 일본에서는 ‘에로 그로 넌센스 & 바이올런스’라고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조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는 1930년대 일본에 형성된 오랜 전통이다.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를 쓴 미리엄 실버버그의 말에 따르면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말은, 정당 정치에 대한 고발이나 거리에 팽배한 호전적 분위기를 무시한 채 감각적 쾌락이 빚어내는 퇴폐에 심취한 것처럼 보였던 데카당트로 표현되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건 우먼>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전통이 100여 년 가까이 흐르면서 ‘저패니즘 익스트림’으로 변형되었고 확장되었다. <건 우먼>은 그런 전통의 연장선에 놓인 기묘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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