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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티스트: 소리를 재창조하며 감정의 옷을 입히는 사람

글:이충규(폴리아티스트) /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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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티스트: 소리를 재창조하며 감정의 옷을 입히는 사람

폴리아티스트란 영화에 나오는 목소리와 음악을 제외한 모든 소리를 진짜처럼 재창조하며 그 소리에 감정까지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엔지니어’가 아닌 ‘아티스트’라고 불린다.

2008년 처음 폴리아티스트란 일을 시작했으니 내년이면 딱 10년째다. 처음엔 이 직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나 군대에서 TV를 보다가 우연히 폴리아티스트란 직종을 처음 접했고, 그 후로 막연히 이 일을 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사운드 후반 작업은 크게 대사, 폴리, 이펙트, 앰비언스로 나뉜다. 그중의 한 파트가 바로 내가 담당하는 폴리(Foley) 파트이다. 군 제대 후 학교에 복학하고 주위 선배, 친구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운 좋게도 학교 선배 중 한 분이 폴리아티스트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연락처를 받아내고 여러 번의 연락을 거쳐 어렵게 선배가 일하는 장소로 구경을 가게 되었다. 첫눈에 난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폴리아티스트란 직업의 매료되어 버렸고, 무조건 폴리아티스트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건하게 다졌다. 그 이후로도 선배에게 계속 연락하며 선배가 일하는 회사에 자주 놀러갔었는데 그때 회사에서 작업하던 작품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었다. 그때 선배가 “한번 녹음해볼래?” 해서 엉겁결에 폴리 부스에 들어가 쇠사슬 소리와 자물쇠 소리를 녹음을 했고, 그것이 바로 내 인생 최초의 폴리 녹음이 되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시간 날 때마다 선배 회사에 놀러 가게 되었고 운 좋게 학생 인턴에 뽑혀 한 달간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미쓰 홍당무>를 할 때였는데, 선배들이 녹음하는 걸 한 달간 지켜보면서 더욱더 이 일에 대한 애정이 깊어만 갔다. 한 달 학생 인턴이 끝나고 선배 회사에서 아티스트를 뽑는다는 연락을 받았고, 대망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8월부터 회사에 출근하라는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기쁨도 잠시, 회사에 폴리아티스트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선배가 폴리 녹음하는 현장을 구경하고 선배가 작업한 폴리세션으로 에디팅 하며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느낌이 들어 회사에서 작업했던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입사하고 약 한 달간 40~50편의 영화를 봤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주위 환경 때문에 폴리녹음을 밤 10시부터 시작했는데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폴리 녹음을 구경하는 시간이 계속 반복되었다. 선배가 녹음을 하지 않는 시간이나 쉬는 날에 혼자 나와서 걷는 발, 뛰는 발 등등 발 연습을 했고, 길을 걸으면서도 앞에 지나가는 사람의 걸음을 따라 하는 연습을 가장 많이 했었다. 그래도 혈기왕성했던 신입 시절, 뭔가 아쉬웠는지 당시 회사가 대치동에 있었는데 퇴근하고 삼성 코엑스에서 심야 영화로 영화를 항상 챙겨보고 했었다.

회사에서 그때 진행 중이던 작품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쌍화점> <핸드폰>이었는데 선배가 작업하는 걸 보면서 녹음하는 방식이나 걷는 방법, 소리 내는 방식을 배우려 부단히 노력하며 똑같이 따라 했지만 나에겐 전혀 그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또 좋은 소리도 아니었다. 사람의 몸은 모두 달라 단순히 따라 한다고 같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결국 내 방식을 찾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러던 중,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였다.

본격 폴리아티스트로 투입된 첫 작품인 만큼, 내가 이 영화의 폴리를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것에 굉장히 부담스럽고 떨리며 긴장되었지만 한편으론 폴리아티스트로서 제대로 작업을 하게 되어 기쁜 마음도 컸다.

편집본을 받고 그림을 보며 제작부에게 폴리도구를 요청을 했고, 그래서 약재, 약재 자르는 칼, 문아정(문희라)의 마네킹, 도준 모(김혜자)의 신발, 침 상자 등을 받을 수 있었다. 이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도준 모의 신발, 즉 도준 모의 발소리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발들로는 그림과 어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고 해서 도준 모의 신발을 요청하여 받았지만 김혜자 배우의 발이 무척 작아 신을 수조차 없었다. 지금이야 여러 경험을 통해 신발 소리는 충분히 낼 수 있지만 그때 당시엔 엄청나게 고민이 많았다. 시장에 있는 신발 가게, 백화점 신발 코너 등을 전전하며 비슷한 소리가 나는 신발을 구매하였으나 여전히 그림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결국 영화에 사용된 도준 모의 신발을 억지로 신고 발소리를 녹음하게 되었다. 처음 작업하는 거라 익숙지 않아서인지 선배가 하면 두 번의 녹음으로 끝낼 것을 당시에 난 10번, 20번, 30번을 해야 하나의 소리가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6개월간 연습을 했지만 실제 녹음에 들어가니 그림과 싱크 맞추랴 느낌 맞추랴 강약 맞추랴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녹음을 들어가기 전에 그림을 외운다곤 했지만 정작 들어가면 싱크 맞추는 데 급급했다. 영화 속 인물이 열 발자국을 걸으면 처음에 녹음했던 발 두 개의 소리, 두 번째로 녹음했던 발 두 개의 소리, 세 번째에 녹음했던 발 두 개의 소리... 이런 식으로 열 개의 걸음이더라도 최소 5~10번 정도의 녹음을 해서 하나의 발소리를 완성시켜야했다. 이렇게 작업을 하니 하루 종일 녹음했는데도 약 10분 정도의 분량이 나올 뿐이었다. 그러니 녹음하다 동이 트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작업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마더>에서 도준(원빈)이 벽에 소변을 보는데 도준 모가 쫓아와 도준에게 약을 주는 장면이 있다. 스파팅 때 봉준호 감독은 도준이 오줌 누는 줄기가 굉장히 세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걸 녹음하려고 정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녹음을 시도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폴리룸이 물바다가 될 정도로 물을 뿌리기도 하고 물총에 넣어 쏴 보기도 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생각처럼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진짜로 소변을 극한으로 참았다가 싸는 소리를 실제로 녹음하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새벽에 녹음기 들고 밖으로 나가 소변 소리를 녹음했고(녹음 후 청소는 깨끗이 했다...) 결국 영화에 실제로 쓰인 소리는 나와 폴리 레코딩 한 선배의 소리, 그러니까 두 명이 소변보는 소리가 쓰인 것이다. 이후 과정은 무사히 끝냈고, 그렇게 나는 폴리아티스트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 폴리 작업은 계속 진행되었고 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면 정말 소리를 쉽고 편하게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고민은 끝이 없다.

<차우>의 멧돼지 발소리, <해운대>의 물소리, <설국열차>의 각 칸마다 들리는 발소리, <최종병기 활>의 속도감이 느껴지는 발소리 등등 매 작품마다 다르고 어렵고 그래서 고민하며 여러 에피소드가 불쑥불쑥 생기지만 그중 가장 어려운 건 각 캐릭터마다 소리를 다르게 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캐릭터의 성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건 늘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술을 한잔 걸치고 집으로 향하는 발소리, 상대방에게 복수하고 돌아가는 발소리, 슬프지만 상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즐거운 척 하는 발소리... 발소리 말고도 장례식장에는 담배를 꺼내 피는 소리, 양아치가 씹는 껌 소리 등. 영화에 나오는 여러 장면, 여러 감정들을 소리로 표현해 내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다양하게 녹음하여 그림과 딱 맞는 소리를 찾는 건 정말 인내심이 많이 요구된다. 1 더하기 1은 2. 이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며, 그냥 듣는 내 귀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는 거니까. 100%의 정답도 없고 100%의 오답도 없는 그런 분야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운드의 최종 목적은 딱 하나다. 너무 당연하고 간단한 것 같지만 ‘진짜 같은 소리’를 만드는 것. 관객들이 듣는 소리는 진짜 리얼 사운드는 아니지만 그게 마치 리얼하게 느껴지고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며 폴리아티스트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면 난 성공한 거로 생각한다. 10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최종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또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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