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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리스트: <시인의 사랑>, 빛과 색으로 영화의 인상을 만든다

글:정혜리(컬러리스트) / 201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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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리스트: <시인의 사랑>, 빛과 색으로 영화의 인상을 만든다

‘영화 컬러리스트’라는 직업은 영화인이 아니라면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다. 가까운 지인들도 단어만 듣고서는 도통 내가 영화 안에서 어떤 일을 담당하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한다. 그만큼 아직 친숙한 크레디트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빛’과 ‘색’으로 영화에 맞는 ‘색감’을 찾아, 그 ‘분위기’를 입히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영화 후반 작업의 한 과정으로, 자주 D.I(Digital Intermediate)라고 통칭하여 불린다. 이 파트는 영화가 필름 작업에서 디지털 작업으로 넘어오면서 더욱 활발해진 영역이다. 현재 영화 후반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파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크게는 미학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색보정 파트와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마스터링 파트로 나누는데, 나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색보정에 관한 모든 일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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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작업을 마친 영화 <시인의 사랑>은 한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등장하는 시인을 비롯하여 주요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선’이 매우 중요한 영화다. 본격적으로 색보정 작업에 들어가기 전 촬영 감독님과 영화 콘셉트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영화 <시인의 사랑>은 스토리와 감정선 구조에 집중시키는 색보정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영화 연출 의도에 맞는 전체적인 색감을 잡은 뒤, 각 장면의 역할에 맞게 세부적인 색보정 작업을 해나갔다.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느낀 것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뿐만 아니라 인물들이 등장하는 ‘배경’ 또한 영화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 <시인의 사랑>은 미세먼지 가득한 도시에서는 담기 힘든 공기 속 수분감이 잘 담겨있었는데, 바다로 둘러싸인 섬만이 가지는 특징이었다. 그런 제주도의 습기와 독특한 지형이 만나니, 자연을 담아내는 이미지가 더욱 생생하고 독특한 질감을 주었다. 나는 이 부분이 이 영화가 가지는 이미지로써 매력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장점들을 잘 보여주는 색감과 질감을 발현하는 데 집중하여 색보정 작업을 했다.


위: 색보정 전 / 아래: 색보정 후 [크게 보기]

위: 색보정 전 / 아래: 색보정 후 [크게 보기]
등장인물을 둘러싼 상황과 감정을 색감으로 표현

이처럼 색보정 작업 초반에는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는 것이 콘셉트를 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영화의 전체적인 색감을 디자인하고, 연출과 촬영 의도에 맞게 장면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 시키기도 하며, 영화에 맞는 색감들을 촬영 감독님에게 제안하여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여러 개의 컷과 씬, 시퀀스가 모이면 하나의 영화, 그리고 전체의 색감이 완성된다.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촬영된 각 컷으로 색상, 명도, 채도, 콘트라스트 등을 조정하여 세세한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흔히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보았을 때 받는 ‘인상’을 좌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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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작업을 담당하고는 있지만 자연스럽게 영화의 제작 공정을 지켜보게 되는데, 프리 프로덕션 때 결정된 시나리오와 콘티를 토대로 본 촬영에 들어가면 많은 컷이 추가로 생기고 생략되고 교체되기도 한다. 이후 편집 단계에서도 영화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낮에 찍었던 씬을 밤 씬에 사용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장면의 컷들을 가져와 붙이기도 한다. 이럴 때도 색보정은 유용하게 작용한다. 앞뒤 장면의 컬러와 카메라 움직임을 맞춤으로, 각기 떨어져 있던 컷들이 하나의 영화, 하나의 장면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컬러리스트는 색과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된다. 화면 안에서도 인물과 배경, 소품, 동선 등 어디에 힘을 주어 색보정을 할 것인지, 관객이 영화를 보는데 어떤 요소와 구성이 도움이 되는지를 매번 영화에 맞게 설계하고 고민해 나간다. 보는 사람이 화면 안에서 집중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들고, 입체감을 불어넣어 최종 하나의 화면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색보정의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위: 색보정 전 / 아래: 색보정 후 [크게 보기]

위: 색보정 전 / 아래: 색보정 후 [크게 보기]
밝게 찍힌 공간의 시간을 바꾸고 영화에 맞는 분위기를 표현

그렇다면 컬러리스트의 역할이 후반 작업에만 필요한 것인가 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미 많은 영화의 촬영 감독들이 본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컬러리스트와 함께 ‘촬영 테스트’를 진행한다. ‘촬영 테스트’는 본 촬영이 들어가기 전, 모든 룩에 관련된 부분들을 점검하는 테스트이다. 조명, 미술, 의상, 소품, 분장 등 여러 팀이 모여 실제 촬영처럼 세팅하고 촬영을 진행한 후 D.I실에서 결과물을 확인한다. 그 과정에서 최종으로 나올 룩을 미리 잡아봄으로, 앞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될 본 촬영 현장에서 추가로 필요한 부분들을 상세하게 준비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후반 작업 파트라고 해서 영화 현장 스태프와의 교류가 없는 것이 아니다.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색감을 비롯한 촬영 룩업을 맞추고, 메인 프로덕션이 진행되는 동안 내부에서 촬영된 데이터 전달받아 확인하는 등 계속해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부분을 염두해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미리 설계하고 신경 쓴다면 더욱더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영화 <시인의 사랑>의 경우는 아쉽게도 촬영 테스트부터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색보정을 할 무렵 약간 걱정이 앞섰는데, 촬영 데이터를 받아보고 나서는 그 걱정이 사라졌다. 현장 스태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촬영한 노력과 결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각 분야의 숙련된 스태프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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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은 이렇게 당연하게 여기는 ‘협력’ 작업을 내가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진예술을 전공했던 나는 주로 혼자서 작업하는 것에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매체와는 굉장히 다른 방식의 작업이었다. 내가 영화 컬리리스트가 된 것은 KT&G상상마당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면서, 같은 층에 있던 시네랩 김형희 기사님을 알게 된 후부터이다. 나는 김형희 기사님의 제안으로, D.I 파트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개인 작업자로서가 아니라, 영화 안에서 한 파트, 구성요소로 작업하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영화가 많은 사람의 기여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갔기 때문이다. 함께 만든다. 잘 알고 있지만 작업자 개인으로서 서운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본 영화의 색보정이 끝나고, 예고편 색보정 작업을 진행할 때에 나는 때때로 고충을 겪는다.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가끔 예고편 팀의 요청으로 본 영화의 작업 된 콘셉트를 밀어버리는 경우가 생길 때 매우 속상하다.

장비와 프로그램이 간소화되면서, 색보정 작업이 점점 대중화되어가는 등 국내 D.I 파트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드문 ‘현장 색보정’ 포지션에 대한 시도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장 색보정이 영화현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기대가 크지만, 어떻게 될지 앞으로 1-2년정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한국영화 현장에 잘 정착되길 바라고 있다.

현재 한국은 컬러리스트와 마스터링을 겸해서 일하는 D.I 작업환경이 많다. 아직 전문화, 세분화가 많이 되지 않은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장기적으로 세분화되어 더 나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함께 작업하고 있는 랩 테크니션 슈퍼바이저 이병희 실장님과 같은 역할이 더 많아지고, 더 전문적이 되어야 점점 더 좋은 퀄리티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병희 실장님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컬러리스트로써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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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영화 컬러리스트에 대해 짧게나마 내가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이 글 안에서 영화 촬영 현장과 후반 작업 현장 분위기의 차이도 어느 정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다양한 환경과 날씨에서 작업하는 영화 현장과는 달리, D.I실은 아주 깜깜한 밀실로 되어있다. 이곳에서 나는 장시간 앉아 근무한다. 하지만 그것이 고립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영화를 마무리 짓기 위해 많은 스태프들이 매일 오고 간다. 촬영 현장과 후반 현장의 장소, 분위기, 장비들은 다를지는 몰라도, 영화를 작업하는 사람들의 온도는 모두 같다고 나는 이야기 하고 싶다. 또 모를 일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후반 작업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일지. 나는 앞으로도 더 다채로운 영화와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작업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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