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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팀: 영화 속의 또 다른 팀

글:이혜원(푸드앤컬쳐아카데미) / 201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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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팀: 영화 속의 또 다른 팀

한국영상자료원으로부터 영화 속의 푸드팀에 대한 글 문의를 받고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이런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을 만큼 그간 영화 속의 음식을 많이 진행했었구나, 두 번째는 수많은 영화에서의 음식을 선보였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쓰면 좀 더 맛깔나고 재미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2017년도 개봉 예정작에 선보일 음식 촬영 진행을 하며 작업할 영화들이 추가되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리에 앉아 고민하며 글을 써본다.

푸드팀이라는 단어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지지만 아직도 푸드팀과 한 번도 작업을 해보지 않았거나 아예 인지를 못 하고 있는 영화인들도 많다. 영화에서 푸드팀이라는 타이틀로 처음 일을 하게 된 것은 시간을 거슬러 2005년으로 올라간다. 영화 쪽에 먼저 발을 들여 일하고 있던 남동생이 우리를 영화의 세계로 입문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마침 남동생이 작업하던 이준익 감독님의 <왕의 남자>(2005)에 연회 씬이 아주 크게 나오는데, 미술과 소품의 영역으로 음식을 차리면 전문적이지 못하다고 요리 전문가를 모시고 세팅을 하길 원하신다는 감독님의 요청이 있었다며 연락이 왔다. 그땐 우리에게도 영화 속 음식이란 것이 너무도 생소해서 연출 제작팀과 끝없는 회의를 했음에도 지금 돌이켜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실수들이 잦았다. 팔팔 끓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연출을 원해서 닭백숙을 정말 뜨겁게 끓여 놓았는데 광대역의 배우들이 닭을 손으로 막 찢어 먹다가 입천장을 데어 다시 식혀 놓기도 하고, 모든 음식을 먹는 거라 이해하고 한 음식마다 정성을 다해 맛있게 간을 하여 세팅했지만 연출상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두 가지로 정해져 있어 수 시간 준비한 음식들을 맛도 보지 못하고 버리는 아픔이 있었다.


<왕의 남자>의 한 장면



<왕의 남자> 촬영현장의 음식 세팅

<왕의 남자> 이후로 <식객>(2007)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요리 만화 「식객」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벅차올랐었는데, 이런 큰 음식 영화가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해오다니! <식객>은 국내 최초로 본격적인 음식 영화이기도 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했던 셰프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라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을 갖고 도전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말 공부를 많이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십 편의 영화에서 음식을 담아냈지만 <식객> 때만큼은 우리가 미술 소품에 포함되는 푸드팀이 아닌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있는 푸드팀이었다. 음식 영화의 푸드팀장이라는 타이틀은 부담감도 매우 클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인가. 그때 참 날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며, 그간의 영화 경력을 다시 찾아보니 정말 많은 영화에서 음식을 선보였다. <왕의 남자>(2005) <식객>(2007) <미인도>(2008) <쌍화점>(2008) <폭풍전야>(2009) <식객-김치전쟁>(2010) <방자전>(2010) <미스터 아이돌>(2011) <후궁>(2011) <기술자들>(2014)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톱스타>(2013) <협녀, 칼의 기억>(2013)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상의원>(2014)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허삼관>(2014) <궁합>(2015) <검사외전>(2015) <봉이 김선달>(2016) <미쓰 와이프>(2015) <뷰티 인사이드>(2015)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 <침묵>(2016) <보통사람>(2017) <군함도>(2017) <공작> (2017) <남한산성> (2017)까지 약 17편의 크고 작은 영화에서 우리의 역할을 드러냈고, 또 드러낼 예정이다.


<식객-김치전쟁> 음식 세팅

<뷰티 인사이드> 음식 세팅

영화마다 남아있는 기억도 다양하다. 영화를 통해 평소에 전혀 접하지 않는 식재료들을 다루는데, <후궁> 때는 자라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김대승 감독님은 촬영 내내 음식에 대해 매우 세심하게 하나하나 신경을 쓰셨는데, 극 중 자라탕이 매우 혐오스럽게 보이길 원해 목이 나와 있는 상태로 탕을 끓이기도 했다. <검사외전> 촬영 때는 <군도> <허삼관> 때 함께 했던 연출, 제작, 미술, 소품팀을 다 같이 만나 매우 반갑게 촬영했다. 현재 촬영 중인 <공작>에서는 위의 세 개 영화를 함께 했던 팀들과 또다시 호흡을 맞춰서 정말 즐겁게 찍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고증에 입각한 음식을 선보이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다. <쌍화점>은 고려 시대가 배경이었으나 음식에 대한 고증은 기본만 따라가고 가장 화려하고 멋있게 세팅해달라는 연출과 미술팀의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시대극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색감의 음식들을 준비해 23회차씩이나 현장에 나가 음식을 세팅했는데 정작 영화 속 음식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아직 개봉 전인 영화 <궁합>은 <식객> 때 조감독님의 입봉작으로 확실히 음식 영화를 경험하셨던 분이라 영화 속 음식 연출에도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시고 (고증을 철저히 따랐다) 앵글에도 음식이 많이 보였다. 음식을 세팅하는 우리로선 화면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 가장 뿌듯하기에 신바람 나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후궁>의 자라탕



<쌍화점>의 화려한 음식

영화 <식객>의 인연으로 배우 임원희와는 지금까지도 매우 친하게 지낸다. 역할은 악역 봉주였지만 실제로는 성격이 좋고 너무도 친절했다. 그는 왼손잡이여서 칼 사용을 왼손으로 시작했었는데 2007년 촬영 당시 왼손잡이 요리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칼질을 오른손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대다수의 의견으로 피나는 연습을 통해 오른손 칼질을 앵글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때 그 연습 이후로 아직도 칼질 하나 만큼은 오른손으로 한다고 한다. 그가 예능 방송에 출연할 때 야간 매점 음식을 뭘 할지 고민하며 연락왔을 때도 내가 자주 해 먹는 야식 하나를 알려주었는데 예상치도 않게 1등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연락하며 안부 물으며 지내는 친한 지기이다.


<식객>의 배우 임원희

때로는 손 대역도 자처한다. 그간 다양한 영화에서 내 손이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이 비치기도 했다. <식객-김치전쟁>을 촬영할 때는 배우들의 조리 동선, 완성된 음식의 형태, 조리과정에 있어 NG 후 필요한 재료들에 대한 조치를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요리사 8’의 보조역할로 극 중에 투입되어 촬영하기도 했고, <허삼관>을 촬영할 때는 허삼관이 자주 가는 만두집의 만두를 직접 빚는 조리 장면, 피순대와 생고기를 투박하게 써는 장면, 붕어찜의 식재료를 전문적으로 써는 장면 등을 능수능란하게 선보이기도 했다. 내 손이 가녀리진 않지만 날씬하다고 알고 있었으나 화면에 비친 내 손은 아주 통통한 손이었다! <허삼관>을 촬영할 때는 내 평생 그렇게 피순대를 많이 썰어보기도 처음이었다. 아무리 음식을 하는 사람이라지만 피순대를 좋아하지 않는 이상 많이 먹어볼 일도 접할 일도 없는데, 촬영을 위해 엄청난 양이 필요했고 또 의외로 정말 맛있어서 촬영을 마치고 촬영 스텝들과 다 같이 나눠 먹기도 했다.


<식객-김치전쟁> 촬영현장

<허삼관>의 피순대

푸드팀의 역할이 무얼까. 이름에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우리는 영화 속 음식을 세팅하는 사람들이다. 시대극을 찍을 때는 시대적 배경에 맞아야 하며, 화려하거나 소박하거나, 감동이 느껴지거나 정치성이 보이거나 등등 음식만 보고서도 그 느낌이 전달될 수 있게 구성하고 세팅해야 한다. 푸드팀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제작, 연출, 미술, 소품팀과의 호흡도 중요하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게 되면 전체적인 배경색과 톤앤매너 협의, 소품팀과의 소품 정리, 감독님과 함께 논의하는 연출팀과의 다자간 미팅이 진행된다. 대화를 통해 음식 시안을 공유하며 메뉴 구성을 마치면 영화 촬영장에서는 푸드팀의 요리 마술이 시작된다.

현장에서 음식을 준비할 때는 조리 공간이 충분치 않아 이미 만들어 온 음식에서 살짝 손보는 정도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날이 더 많다. 또한 다른 팀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준비를 마쳐야 한다. 배우가 음식을 먹는 장면이면 NG 장면을 대비해 미리 음식을 준비하거나, 김이 나야 하는 장면은 슛 들어갈 때 그 김이 바로 보일 수 있게 사전 준비를 꼼꼼히 해야 하는 등 촬영하는 동안 푸드팀 일원들은 정말 바쁘게 움직인다. 영화 속 음식이라 대부분 먹지 못하는 음식을 만든다고 해서 요리를 못 해도 푸드팀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큰 오산이다. 음식을 누구보다도 전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게 푸드팀이다. 역사적 배경과 시대에 따라, 또 상황과 극 역할에 따라 수많은 음식의 종류와 가짓수가 바뀌고 이 부분을 이해, 설명, 그리고 조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푸드팀의 또 다른 역할. 영화 촬영장에 푸드팀이 함께하면 현장 분위기가 매우 훈훈해진다. 예전엔 음식 소품이라 해서 영화 속 음식을 먹지 않고 기피하였으나 정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눈에 보이면 스텝들 눈에도 소품이 아닌 일용할 양식으로 돌변하는 순간이 온다. 현장이 정말 바쁜 날이 아니면 우리가 별도의 조리를 하여 스텝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곤 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고된 촬영에 지친 스텝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된다.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길 때면 언제나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스텝들, 음식 옆을 지나가며 차마 먹을 수 없는 상황의 스텝들의 그렁그렁한 소 같은 눈. 감독님, 피디님부터 배우들, 각 팀의 막내까지 모두가 평등해지는 순간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일을 두 배로 만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눠먹으며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은 그 이상이 된다.

벌써 약 10년이 넘게 영화 쪽 음식을 진행하다 보니, 현장에 아는 사람들도 많고 함께 같이 여러 작품을 한 사람들도 많다. 10년 넘게 시간이 흐르니 영화 입문 초창기부터 봐 왔던 사람들이 어느덧 영화팀의 고참이 되어 현장에서 만나면 함께 예전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남동생의 영화 쪽 지인들을 내가 하는 영화에서 만나 같이 작업하며 친분도 쌓게 되고, 또 최근에 알게 되는 신참 팀원들의 열정적인 패기를 보며 때로는 그들의 열정에 자극을 받기도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곧 크랭크인 하는 큰 규모의 영화 속 음식 예시 안을 준비하고 있는데, 글을 쓰며 나 자신에게 동기부여 하는 시간이 된 것 같이 뿌듯하다. 약 10년차가 넘게 이쪽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우리 음식이 정말 맛있고 따뜻하게 보이는 마음, 훈훈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영화 <식객> 이후로 음식영화가 제작이 되지 않고 있는데, 그간 음식에 관련한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며 얻은 좋은 아이디어들을 토대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이번에 작업하게 되는 영화에서도 음식이 중요하게 보일 예정인데,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푸드팀으로써 더 맛있게 그리고 멋있게 음식을 세팅 해보려한다.

마지막으로 맹렬한 더위와 추위에도,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지금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모든 영화인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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