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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제작기

글:박홍민(영화감독) / 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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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제작기

2011년 10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연출한 첫 번째 장편영화 <물고기>가 처음 상영되었다. 이전에 7편의 단편영화를 찍었지만 국내 영화제에 단 한 번도 초청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감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3D영화인 <물고기>는 연출자인 내가 후반작업 공정을 감당해야 했는데,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3D작업은 많은 작업량이 필요한데다, 사실 촬영 전부터 제작사가 투자 이외에는 작품 제작에 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평 남짓한 조그만 방에서 오랜 시간 작업하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다행히 부산에 초청된 이후, 로테르담국제영화제부터 밴쿠버국제영화제까지 열 군데가 넘는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토니 레인즈(영화 평론가), 거윈(로테르담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많은 해외 영화인들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또한 이광국 감독(<로맨스 조> <꿈보다 해몽>), 박정범 감독(<무산일기> <산다>), 이돈구 감독(<가시꽃> <현기증>) 등 멋진 작업을 하는 감독들과 교류하며 영화작업 외적인 행복감도 느꼈다.

이후 <물고기>는 2013년 1월에 개봉했고, 언론배급시사회와 유료시사회는 전부 3D로 상영했지만 정작 본 개봉은 3D 관을 하나도 잡지 못하고 소수의 일반 상영관에서만 개봉을 하며 500명을 간신히 넘는 스코어를 기록하고 말았다. 열패감이 심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사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2년간 <황사>라는 시나리오를 열심히 취재하며 썼고, 2년 넘는 작업 끝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러나 결국 여러 지원 프로그램에서 떨어지고 제작하려는 사람도 없게 되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방향을 잃어버리니 스스로가 점점 고립되어 갔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될 그즈음 이광국 감독은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 <꿈보다 해몽>을 완성하였고(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내가 매일 혼자 방에 있는 것을 알고는 수시로 작업실로 찾아오며 대화상대를 해줬다. 이돈구 감독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실에 와서 재능을 의심하고 있는 나에게 큰 힘을 주곤 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할까.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영화를 찍고 싶다. 왜 찍고 싶을까? 영화를 통해서 내 고민을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내가 흥미 있는 방식으로 솔직하게 영화로 만들어보자. 또한 어차피 고독할 거라면 내가 모든 제작 공정을 전부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며 시작한 영화가 바로 <혼자>이다.

<혼자>라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체에 몰입하며 여러 복잡한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었다. 한참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 구상하고 있을 때 박정범 감독이 갑자기 차를 몰고 왔고, 함께 정동진독립영화제에 가게 되었다. 바닷가에서 돗자리만 펴고 잠든 다음 날, 나는 박정범 감독에게 “대낮에 살인을 저지른 괴한이 내 작업실에 창문을 부수고 들어와 목격자인 나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데, 나는 죽지 않고 맞은편 정자에서 알몸으로 깨어난다.”는 기본 줄거리를 처음 이야기했고 그러자 “재밌겠네.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있는 작업실의 맞은편 동네는 신당9구역 재개발지역으로 신당동에 마지막 남은 재개발 구역이다. 현재는 재개발과 도시재생 사이에서 첨예한 대립각에 놓여있다. 힘들 때 옥상에 올라가면 이 동네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데, 언덕 빽빽이 놓인 집들의 모습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왠지 아름답기도 하고 압도적이기도 하고. 힘들 때 동네를 보고 있으면 이 동네의 모습이 마치 내 뇌 속 같다는 느낌도 들곤 했다.

이러한 느낌들을 영화로 구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일 그 동네를 걸어 다니며 고민하고 관찰했다. 그리고 그 복잡 미묘한 동네의 모습과 내 무의식의 흐름을 대입시켜 표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움직이는 롱테이크를 사용하면 무의식의 흐름이 긴 줄기처럼 효과적으로 표현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칙은 CG는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본 촬영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감당할 것. 그리고 무의식의 흐름을 긴 줄기처럼 표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롱테이크 기법을 최대한 활용할 것. 이었다. 움직이는 롱테이크를 잘 구현하려면 안정적인 카메라 움직임이 필요했고, 이에 대해 고민을 해야 했다.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일단 테스트가 필요했고, 장비 렌탈을 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직접 구비하고 되파는 방식을 선택했다. 우선 갖고 있는 물건들을 팔고 빌려 돈을 마련했고, 필요한 촬영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블랙매직 포켓 카메라
이미지 출처: https://www.blackmagicdesign.com/products/blackmagicpocketcinemacamera

일단 작은 카메라를 사용하고 싶어서 블랙매직 포켓 카메라를 구매했다(마침 차기 제품이 나오기 전 반값으로 할인하는 특별행사 기간이었다). 일반적인 DSLR류 카메라는 압축코덱을 사용하여 색보정 시 열화가 발생할 확률이 높지만 이 카메라의 경우는 저가 카메라에서는 보통 채택하지 않는 무압축 코덱(RAW)을 지원하고 계조가 13스톱이기 때문에 색보정 시 여러 가지 유리한 점이 많았다. 대신 단점도 많았는데 일단 선예도가 뛰어나지 않고 환산화각이 2.88:1 배율이라 화각이 너무 좁아 12mm 렌즈를 사용해야 간신히 표준 사이즈로 들어올 수 있었다. 추가 화각을 확보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결국 30%가량의 화각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화각 확보도 확보인데 포커스 아웃에서 발생하는 망울 느낌과 아나모픽 특유의 푸른 가로선 등이 내가 고민하는 영화의 기호와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AG-LA7200 어댑터 렌즈
이미지 출처: https://youtu.be/WkmS-9MTyR8

저가형 아나모픽 렌즈를 구매하고 팔며 테스트도 해보고 여러 군데를 다니며 공부를 하던 중, 파나소닉에서 예전에 캠코더의 4:3 사이즈를 16:9로 바꿔주는 AG-LA7200 어댑터 렌즈를 발매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제품을 16:9 렌즈에 장착하면 2.35:1로 바꿔주는 효과가 생긴다. 또한 대다수 아나모픽 렌즈는 아나모픽 렌즈에서 포커스 조정을 한 번 더 해줘야 하는데 이 제품은 본 렌즈의 포커스만 조정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 제품은 절판된 데다가 국내 중고장터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 해외 이베이를 뒤지기 시작했고, 겨우 독일에서 판매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국내 도착까지 2주가량 걸렸는데 다행히 장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대신 이 제품이 원래 캠코더용이기 때문에 일반 렌즈에 장착하려면 여러 어댑터 링이 필요해서 종류에 맞춰서 구비해 놨다.

이 상태에서 여러 테스트 영상을 찍기 시작했는데 카메라가 너무 흔들려서 도저히 영상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카메라 스테빌라이저 장비를 사용해야겠다고 판단했고 다시 조사를 하던 중, DJI 사의 로닌이라는 제품이 발매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전에도 몇몇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짐벌을 제작하고 발매하였지만 감당할 수 있는 무게와 안정성에 있어서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제품의 제원은 내가 원하는 수준에 있었다.






현장에서의 짐벌, 이지리그 사용 모습

짐벌을 구매하고 나서 다시 생긴 문제는 포커스 부분이었다. 짐벌에 올린 상태에서는 카메라 수동 포커스 플레이가 불가능 한 것이다. 수동으로 포커스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무선 팔로우 포커스가 필요했는데 가장 유명한 바텍이라는 업체의 무선 팔로우 포커스는 가격대가 1000만 원 가까이라 너무 비쌌다. 그렇다고 중국 제품을 쓰기에는 소음문제나 연동문제에 있어서 불안한 부분이 꺼려졌다. 그때 프랑스 이베이에 올라온 영화 장비 경매에서 바텍 무선 팔로우 포커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격도 원가의 1/10에서 경매를 시작했고, 관세 포함 1/5 가격 정도에 낙찰받았다. 물품이 배송되는 몇 주 동안 문제가 발생할까 봐 정말 피를 말렸는데 다행히 도착한 제품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무선 팔로우 포커스가 장착된 무선 모니터

이후, 카메라에 무선 팔로우 포커스와 짐벌을 장착하고 테스트를 했는데 카메라의 움직임은 만족스러웠지만 영상을 모니터 할 수가 없어 저가의 중고 소형 모니터 2대를 추가로 구매했다. 그리고 무선 영상 송수신기와 여러 장비들을 장착하니 너무 무거워져 안정적으로 카메라를 지지할 수 있는 이지리그 등을 추가로 구매했다. 또한 골목길에서 계단을 올라다니며 촬영을 하려면 촬영자가 수동으로 짐벌의 움직임을 조정할 컨트롤러가 필요한데, 지금은 정품 발매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로닌에서 썸 컨트롤러가 발매되지 않아서 인도 이베이에서 개조해서 쓰고 있는 판매자를 통해 모사품을 구매하여 장착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기본 카메라 세팅을 했지만 촬영 과정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다행히 그쯤 김병정 촬영감독님이 작업에 참여하시게 되어 함께 준비할 수가 있었다. 스토리보드에 짜 놓은 모든 장면이 영상으로 가능한지 전부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대부분의 장면이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많이 고민했던 미장센을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

그래서 구현 가능한 방법을 찾기 위해 촬영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복면남이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초반 시퀀스와 편의점 장면 등 대부분의 장면은 많은 리허설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민이 텅 빈 동네를 걸어 다니며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장면은 기존 장비와 상황으로는 구현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맞은편 옥상에서 동네를 촬영할 경우 망원렌즈를 쓰면 노출이 너무 떨어진다. 그래서 ISO값이 높게 적용되어 어두운 곳에서도 촬영이 비교적 용의한 A7S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압축코덱을 사용하여 색보정 시 불리한 점과 낮은 스탑의 다이나믹 레인지, 카메라 간 질감 차이 등은 감수하기로 판단했다. 맞은편 옥상에서 반대편 동네를 걸어 다니는 수민을 관찰하듯 촬영하려면 망원렌즈를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아답터 적용 값과 표준 사이즈 대비 카메라 크롭 정도까지 포함해서 환산화각 2000mm 이상이 되는 렌즈를 사용하여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이 장비들의 경우 렌탈해서 테스트했는데 미세하게 조절을 하지 않으면 인물을 따라가기 어렵거나 움직임이 틀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김병정 촬영감독님과 여러 변수들을 고려하여 준비를 하고 많은 테스트를 해가며 확신을 가져갔다.

또한 정말 어려웠던 장면은 동네 전경을 비추던 카메라가 서서히 내려와 수민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후, 택시를 타고 떠나는 수민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은 이 동네가 수민의 머릿속이고, 이곳을 수민이 벗어나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달아난다는 기호를 이미지적으로 심플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에 꼭 한 커트여야 했다. 지미집 팀이 와서 촬영도 해보았는데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 실패하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내 의도를 구현해주려 많은 고민을 하시던 김병정 촬영감독님이 결국 청계천에 가서 철근과 와이어 등을 구매하여 수동 크레인을 제작하셨는데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장면이 나오게 되어 놀라웠다. 몇만 원도 되지 않는 제작비로 원하던 장면을 얻었던 그 날, 그 상황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계속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 장비를 사용하여 수민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장면까지 촬영이 가능했다.

이 영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이런 테크니컬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요 인물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함께 섬세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비 세팅 이후에는 배우들과도 함께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거쳐 영화 전체를 테스트 촬영했다. 보통은 배우들과 리딩 정도를 하고 본 촬영에 임하는 경우가 많지만 <혼자>의 경우는 실제 촬영할 장소로 가서 반복적인 리허설을 시도했다. 테크니컬한 것에 함몰되면 내가 의도하는 영화적 표현이 의미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작비도 직접 마련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압박도 심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생각을 다잡으며 왜 영화를 하고 싶었는지 초심을 계속 떠올렸다.






촬영 현장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2015년 2월 중순, 총 9회차로 영화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편집과 색보정은 직접 진행을 했고 전작인 물고기 때도 함께 작업했던 VFX 업체인 IOFX 지명구 실장과 오수진 음악감독님도 흔쾌히 본 작업에 참여해 주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또한 고맙게도 부산국제영화제 ACF 후반제작지원도 받게 되어 잘 마무리되었다.

<혼자>는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소개되었고, 올해의 배우상(이주원)과 시민평론가 상을 받았다. 이후 로테르담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총 국내외 18군데가량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여러 영화제에 참석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해외 영화인들이 전작 <물고기>를 기억하고 있었고 차기작인 <혼자>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감사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2016년 11월 24일 국내 개봉을 했다. 하지만 개봉관 수가 일반 독립영화에 비해서도 너무 적게 잡혀서 역시나 스코어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물고기> 때보다는 훨씬 많은 국내 영화인들이 <혼자>를 봐주었고 좋은 평가를 해주었다.


<혼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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