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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김기영,1974)

글:박유희(영화비평가) / 20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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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쟁투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개성이 뚜렷한 영화작가,”1) “화면이 수술대와 다름없는, 외과의사가 집도하는 것과 같은 연출,”2) “한국영화의 반역정신,”3)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함,”4) 이는 모두 김기영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한 논평들이다. 한국영화사상 가장 특이하고 독창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김기영 감독은 대부분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1970년대 영화 불황기에 들어서며 그는 <파계> <이어도> <흙> 등 소설 원작의 문예영화를 몇 편 만든다. 그는 문학을 원작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스타일로 완전히 각색했다. 따라서 그의 문예영화에서 원작에의 충실성 문제를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의 영화는 문학을 저본으로 삼았을 뿐 당시 문예영화의 관습으로 포획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이야말로 관습을 깨뜨리는 새로운 시도로서 근본적인 예술성 개념에 부합하며 예술영화로서의 문예영화의 외연을 확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파격과 확장이 불가(佛家)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파계>는 <마음의 고향>(윤용규, 1949) 이후 불교 문예영화의 맥을 잇는 영화이자 본격적인 불교 예술영화로 평가받는 <만다라>(임권택, 1981) 앞에 놓이는 작품이기도 하다.5)

<파계>는 1973년 「사상계」에 연재된 고은의 동명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선승 법연당과 그의 제자 침해의 관계, 그리고 침해와 묘혼의 사랑을 플롯의 중심에 둔다. 여기에 서산암의 비구와 소원암의 비구니들을 통해 선승(禪僧)과 율사(律師)의 차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불제자들의 수련방식 등 불가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들이 직조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원작의 내용을 철저하게 김기영식 주제와 화법으로 끌어들여, 법통을 둘러싼 승(僧)들 간의 정치적 쟁투와 인간의 원초적 본능 문제를 부각시킨다.

이 영화는 선승을 가장하고 선사에 들어간 대학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는 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객관적 시각으로 서술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 영화의 중심 서사는 열반을 눈앞에 둔 고승 조실스님(최불암)이 법통을 물려줄 후계자를 정하는 과정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조실스님의 시자로 자란 침해 수좌(김병학)이고, 그의 경쟁자로는 “절이란 권위와 인격과 위대한 것이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경원 수좌(조재성)가 있다. 이 두 인물의 대립에는 어릴 때 절에 들어와 동승으로 자란 ‘올깨끼’와 나중에 철이 나서 스스로 불도를 선택한 ‘늦깨끼’, 그리고 선승과 법승 간의 갈등이 들어있다.

조실스님은 인자하고 푸근한 인상과는 달리 냉혹하고 교활하게 후보자들을 시험하고 경쟁시킨다. 그는 화두를 던지는 것은 물론 돌연한 선문답과 죽비 세례로 후보자들을 곤경에 빠뜨린다. 또한 식욕, 색욕의 시험에 들게 하여 목숨을 건 싸움을 부추긴다. 침해가 묘혼(임예진)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조실스님이 기획한 시험 중의 하나다. “내 법통이야. 그냥은 못 줘. 괴롭히고 또 괴롭히고 나중에는 시험으로 피투성이가 되는 걸 봐야 준다. 싸워서 피투성이가 되는 걸 봐야 줘.”라는 그의 외침은 김기영 표 고승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조실스님이 주도하는 시험들은 한국전쟁의 기억이 플래시백 되며 현실과 접목된다. 스님(신구)은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전쟁고아들을 구해 목숨을 걸고 피난시켰고, 절에 온 고아들은 배가 고파 가마솥에서 밥을 훔쳐 먹곤 했다. 이와 같이 속세의 극단적 참화인 전쟁과 그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인간의 밑바닥이 정신적이고 고차원적인 불가의 정진 과정과 연계된다. 이 과정에서 진정으로 배고파 보지 않거나 치열하게 색욕의 번뇌에 부딪혀 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겠느냐는 주제가 표출된다. 그러면서 ‘법통’은 생존의 문제가 되고 그것을 쟁취하는 과정 또한 정치임이 드러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맨 나중에 법통을 이을 유력한 후보자로 떠오르는 것은 ‘도심행자’(정한원)라는 의외의 인물이다. 이 부분은 원작과 완전히 다른 것이기도 하다. 도심은 침해의 친구로 침해와 함께 전쟁고아가 되어 절에 들어온 올깨끼이다. 그는 유난히 식욕이 강해서 진작 공부를 포기하고 침해가 법통을 잇게 하려고 뒷바라지를 한다. “먹지 않으면 승이 된다? 관두겠어? 먹지 않는 건 질색이야.”라는 대사는 본능에 충실한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는 “빈 그릇을 깨라”는 화두를 “내 배고픈 것을 지독히 알아라! 그러면 남의 배고픈 것도 몸 저리게 알리라!”라는 깨달음으로 풀어낸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처절한 배고픔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며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이 겪을 때 진심으로 공감하고 돌아볼 줄 아는 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절의 양식을 훔쳐다가 병든 중생을 구한 사건은 그의 언행일치를 증명한다.

한편 법통에 매달렸던 침해는 조실스님의 공격적 시험에 맞대응하며 시험을 넘었음에도 법통을 받지 못한다. 조실스님은 침해가 사랑하는 묘혼을 데려다 침해 앞에서 옷을 벗긴다. 원작에서는 그러고 나서 큰스님은 곧바로 죽음에 이른다.6) 영화에서는 묘혼이 옷을 벗자 그녀가 황금 부처로 보이는 숏이 인서트 된다. 그리고 침해는 “여자를 이상하게, 여자를 타락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건 낡은 편견이다. 우리 젊은 사람은 여자를 그냥 건강하게 살려는 한 인간 그대로를 느낀다. 남자와 여잔 같은 거다. 옷을 벗으면 알 수 있을 겁니다”라고 주장한다. 이때 법통을 따기 위해서는 큰스님을 놀라게 하거나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묘혼의 만류를 물리치고 침해는 묘혼과 나란히 알몸이 된다. 이 과감한 행동 앞에서 조실스님은 “넌 젊다. 그리고 천재다.”라고 침해를 인정한다. “그러나 법통은 네 것이 아니야.”라고 결론짓고 쓰러진다. 죽어가는 조실스님을 붙들고 침해와 묘혼이 법통을 내놓으라고 울부짖는 것은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충격적 장면이다. 그러나 그러한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욕망의 표출로 인해 이 영화는 새로운 문예영화이자 파격적인 불교 영화로서의 힘을 얻는다.

동승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마음의 고향> 이후에 나온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예술영화로 대접받은 예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계> 이전의 대표적인 영화로는 이광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내세운 <꿈>(신상옥, 1955/1967)이 있다. 그러나 <꿈>은 개봉 당시에 문예영화로 수용되지 않았다. 우선 원작이 이광수 소설이라고는 하나 그 토대가 된 조신몽 설화가 워낙 잘 알려진 옛이야기였기 때문에 ‘문예’로 인식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핵심적인 것은 불교 관련 영화의 경우 기독교를 다룬 영화보다 예술영화로 인정받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기독교는 성직자에게 요구되는 종교의 금기가 일반의 도덕률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또한 기독교는 ‘개화’와 ‘서구 문명’을 상기시키며 자연스레 ‘근대문예’와도 겹쳐진다. 게다가 한국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반공주의와 결합해왔기 때문에 1960~70년대 국가가 장려했던 ‘반공’과 ‘문예’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유용한 제재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전근대적인 이미지를 지니는 데다 승려에게 요구되는 계율이 엄격하고 금기가 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는―갈등을 만들어야 하는 이야기의 본질상― 금기의 위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화는 시각적 매혹을 생명으로 삼는 매체이다. 상상에서만 가능했던 금기의 파괴가 눈앞에서 재현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시각적 매혹일 것이다. 그러니 불가를 배경으로 영화는 자연히 ‘파계’를 향하게 된다. <마음의 고향>부터 <꿈>과 <파계>는 물론, <만다라> <우담바라>(김양득, 1989) <아제아제 바라아제>(임권택, 1989)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정지영, 1991)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계율의 위반을 보여주는 것은 이를 말해준다. 그러한 특질 때문에 불가 배경 영화에 대해서는 1970년대까지 외설적인 영화라는 기대 내지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었다. <파계>의 경우에도 지방 흥행업자들이 제목만 보고 “중들이 나오는 외설적인 영화”라 생각하여 제작비를 투자했다는 증언이 있기도 하다.7) 또한 그러한 측면에 대해서는 행정적 검열 이외에도 사회적 검열이 작동하게 된다. 실제로 1967년 <꿈>이 개봉될 때 조계종 총무원장까지 나서서 상영을 반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검열은 비구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서는 한층 더하여 외설 논란이 불거지고 불교계의 반발도 거세지곤 했다. 이미 <만다라>가 나온 지 3년 후인 1984년에 임권택 감독이 연출하고 김지미가 주연을 맡았던 <비구니>가 불교계의 반발에 부딪혀 제작이 포기된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불교 영화를 둘러싼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파계>에 대한 불교계의 인정 및 정부의 보상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우선 ‘마성(魔性)’의 작가주의로 성 문제를 다루어 흥행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작품성을 성취해온 김기영 감독에 대한 영화계의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김기영 감독이 동아수출공사로부터 국내 최고의 개런티를 받고 <파계>를 연출했다는 것8)은 그것을 입증한다. 한편 불교계에서는 이 영화의 제작을 마뜩해하지 않았으나 ‘파계’라는 제목과 달리 ‘성불(成佛)’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여기에는 당시 한국영화를 둘러싼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한국영화의 불황 속에서 1974년 4월에 개봉한 <별들의 고향>이 크게 성공하자 “참신한 방화 만들면 관객들은 몰려든다”9)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편 1960년대 말 이후 ‘민족문화의 창달’이라는 아젠다 아래 정책적으로 전근대 전통문화가 소환되었다. 이때 무속이나 민속 등 근대 이후 비판받고 폄훼되어왔던 전근대 문화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는데 이 와중에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파계>가 외설 논란을 잠재우며 문공부 우수영화로 선정되고 여러 해외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한 것은 이와 같이 복합적인 상황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불가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성장담 내지 회고담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작을 김기영식의 독창적인 해석을 통해 ‘본능과 정치’라는 현실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으로 비화시킨 영화 자체에 있었다.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불가와 승려의 생활에 대한 사실적 재현과 과감한 장면 구성, 그리고 전두엽을 자극하는 기발한 대사와 지금 봐도 충격적인 서사 전개는 이 영화의 파격을 구성하며 ‘외설’이니 ‘종교 모독’이니 하던 당시의 법적·사회적 논란을 넘어서는 에너지가 된다. 이로써 <파계>는 금기의 위반을 과감하게 재현하는 것은 물론 현실 문제와 종교적 질문을 접목시키면서도 예술영화로 인정받은 최초의 불교 영화가 된다. 이는 <만다라>에 앞서는 것으로, 1970년대에 이루어진 전위적인 영화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1)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도서출판 소도, 2004, 402~403쪽.
2) 김종원, 정중헌, 「우리 영화 100년」, 현암사, 2000, 290~291쪽.
3) 김수남, 「한국영화감독론 2」, 지식산업사, 2003, 182쪽.
4) 이효인 편, 「한국의 영화감독 13인」, 열린책들, 1994, 360쪽
5) 나중에 <만다라>의 촬영을 담당하는 정일성 감독이 이 영화의 촬영을 맡았으며, 그는 이 영화로 영평상 기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 소설에서는 큰스님이 죽기 전에 묘혼을 벗겨 보신 것을 두고 노승의 평생소원을 푼 것( “……하긴, 여섯 살부터 입산해서 주욱 중노릇만 했으니, 평생 소원이셨던가 보지요.”)이라는 추측과 아랫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교육의 일환(“이 놈아! 너는 몰라! 침해란 놈 가르치기 위해서야! 일체 중생 가르친 게야!”)이라는 주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결에 묘혼이 달아났는지 침해는 몰랐다. 침해는 여자보다 노승의 열반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 탄운 곡간의 가느다란 연기 끝이 더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침해는 어디 갔는지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결말이다(고은 전집 제31권 「밤주막」(1977) 중 「파계」, 527~528쪽 참조).
7) <김기영 전작전: <파계> 이화시 GV VOD>, 2008.06.23.
http://flash.koreafilm.or.kr/kofa2/play_trailer.html?file=trailer/MK004966_P03.mp4
8) 「<破戒>, 촬영 끝내 곧 開封」, 『매일경제』, 1974.6.28., 8면.
9) 「참신한 邦畫 만들면 觀客들은 몰려든다」, 『동아일보』, 1974.6.7.,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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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파계  Transgression(Pagye)
1974 | 112분
감독 : 김기영
각본 : 김기영(이경우)
출연 : 최불암, 박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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