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페이지 위치

HOME > 영화글 > 한국영화걸작선

철인(죽음의 다섯손가락) (정창화,1972)

글:조재휘(영화평론가) / 2017-04-06  

FacebookTweet

게시판 상세내용

철인(죽음의 다섯손가락)

정창화(1928~ )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은 홍콩과 한국 영화계 간에 조성된 일대 흐름이 맞물려 빚어진 시대의 산물이었다. 60년대 초에서 70년대 말까지 한홍 합작영화의 활발한 제작으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한상은 <양귀비>(1962)와 <무측천>(1963)과 같은 시대극을 한국 로케이션으로 찍었으며, 호금전은 <공산영우>(1979)와 <산중전기>(1979)를 해인사와 불국사, 설악산 등지에서, 장철은 <사기사>(1972)를 서울에서 촬영했다.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필름이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와 손잡고 다수의 한국-홍콩 합작영화를 기획해 문호를 개방하는 한편, 쉼 없이 다양한 영화를 찍어내면서 인력난에 시달리던 홍콩 영화계의 상황은 역으로 한국의 영화 인력이 홍콩 영화계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수업료>(1940), <자유만세>(1946)를 만든 최인규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정창화 감독은 1958년부터 홍콩영화계와 꾸준한 교류를 가졌고, 첩보영화 <순간은 영원히>(1966)의 홍콩 로케이션 촬영에서 쇼브라더스 사장 런런쇼의 주목을 받아 1968년부터 5년 전속계약으로 기용되어 홍콩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다. 밀수꾼을 소탕하는 내용의 데뷰작 <최후의 유혹>(1953), 누아르의 장르적 색채가 진한 <노다지>(1961), 일제강점기 학도병의 이야기를 그린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1965), 전통사극에 서부극을 끌어들여 검객물의 원형을 만든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1968) 등, 일찌감치 한국영화 안에서 액션영화의 지평을 개척하던 정창화의 연출 성향은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무협, 권격 영화를 대량으로 양산해내던 홍콩 영화계의 필요와 부합되는 것이었다. 쇼브라더스 무협의 기법과 관습을 답습한 평작 <아랑곡의 혈투>(1970)와 <래여풍>(1971)의 시행착오를 경유한 뒤에 내놓은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정창화만의 개성을 무협영화의 역사에 각인시킨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왕우의 <용호의 결투>(1970)와 더불어 권격 영화의 유행을 일으킨 시효 격으로 꼽힌다. 그러나 영화사적인 의의에 비해 이 작품의 서사 자체는 지극히 평이하다. 제자 조지호(나열)의 재능을 아끼던 스승 송무양은 더 큰 성취를 위해 그를 상무국술관의 손금배 사부에게 보낸다. 주변의 질시를 견디며 묵묵히 수련에 정진하던 지호는 마침내 손금배의 인정을 받고 절기인 철장비법을 전수받게 된다. 함정에 빠져 손이 짓이겨지는 수난을 겪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무공을 회복한 지호는 국술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다. 그러나 일본 낭인과 결탁한 상무국술관의 라이벌 백승무관의 주인 맹동산(전풍)이 지호의 두 스승을 모두 해치고, 분노한 지호는 철장비법의 위력을 발휘해 악한들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수련을 통해 고수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성장과 스승의 원수를 갚는 복수극이라는 천편일률적인 플롯과 모티브를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우직하게 답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기억될만한 컬트 걸작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연출의 차별성에서 드러난다. 장철이 슬로우 모션과 핸드헬드를 통해 유혈 낭자한 육신과 죽음의 이미지에 집중하고, 호금전이 유려한 수평 이동과 와이드 앵글로 자연과 공간, 그리고 인간에 흐르는 예민한 공기를 포착한다면, 정창화는 광각렌즈를 중심으로 한 촬영과 컷 단위로 다듬은 편집, 명암과 색감이 두드러지는 조명 세팅으로 액션의 쾌감과 극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지호의 스승 송무양이 불의의 습격을 받는 도입부 액션부터 각기 다른 앵글과 사이즈의 컷을 빠르게 이어 붙여 충돌시키고, 무술 안무의 합을 도중에 건너뛰는 점프컷으로 액션의 박력과 속도감을 끌어올리는 불균질한 편집의 기교를 엿볼 수 있다. 손을 망가뜨린 적들을 떠올리며 수련에 매진하는 지호의 플래시백에서도 나무를 때리는 타격음에 맞춰 (긴장감을 자아내기 위해 기울어진 앵글의) 컷을 번갈아 몽타주 하다 국술대회 참가인원을 선발하는 다음 상황으로 점프하는 등 시퀀스의 급격한 전환을 통해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에 빠른 템포와 리듬감을 부여한다.

“액션영화란 어른들의 꿈과 상상을 실현시키는 판타지라고 생각합니다”라 말한 감독 본인의 인터뷰 발언이 시사하듯,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통해 만개한 정창화식 액션 연출은 영화가 줄 수 있는 오락적 쾌감의 경험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장르 감독의 본분에 입각한 것이었다. 술집에서 벌어지는 지호와 진랑(김기주)의 대결에서는 술 항아리를, 마음을 고쳐먹은 진랑이 지호를 대신해 일본 낭인을 막아서는 숲속의 결투에서는 잘게 부서지는 목재 소품을, 지호가 마침내 철장비법으로 일본 낭인을 처단하는 클라이맥스에서는 부딪치자마자 무너지는 벽을 배치하는 무대 세팅으로 타격감을 부각시키는가하면, 맹인이 된 한룡이 맹동산과 그의 아들을 급습하는 장면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간신히 드러날 정도로 공간을 어둠에 파묻은 가운데, 인물의 두 눈에 슬며시 빛을 닿게 하며 명암대비를 극단화한 조명으로 누아르적인 분위기를 빚어낸다. 국술대회의 말미에 칼에 맞고 죽어가는 손금배와 일본 낭인에 의해 잘린 진랑의 목에는 별도의 녹색 조명을 비춰 죽음의 음울함을 강조하고, 지호가 철장비법을 쓰는 순간마다 펴진 두 손에 붉은 조명을 쏴 흥분과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등, 비현실적이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조명의 표현주의적인 활용이 돋보인다.

(철장비법을 쓸 때마다 사이렌 소리처럼 울리는 음향은 퀸시 존스가 TV 시리즈 <아이언 사이드>(1967)를 위해 작곡한 시그널 트랙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당시 홍콩영화계에서 흔히 있던 사례였다.)

처음에 정창화 감독이 염두에 둔 작품의 원래 제목은 <철장>(鐵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화권 관객의 취향을 의식한 쇼브라더스 사장 런런쇼의 입김에 의해 홍콩에서는 <천하제일권>(天下第一拳)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저가에 영화를 수입하려 한 신상옥 감독에 의해 한홍 합작영화로 위장되어 검열과 재편집을 거쳐 <철인>(鐵人)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에 걸리는 수난을 겪었다. 영화는 한국에선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묻혔다. 정작 액션 장인 정창화가 인정받은 건 고국이 아닌 서구 영화계에서였다. 이듬해인 1973년, 워너브러더스의 배급으로 로스앤젤레스의 차이나타운에서 소규모 개봉한 영화는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어 확대 상영에 들어갔으며, 잠시 <대부>(1972)를 제치고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훗날 ‘헤모글로빈의 시인’ 쿠엔틴 타란티노가 <킬 빌> 2부작에서 철장비법을 구사하는 장면의 연출을 오마주하면서 영화는 다시 주목받았으며, 2005년 칸 영화제 클래식 섹션에서는 루이 말의 <도깨비불>(1963), 마틴 스콜세지의 <라스트 왈츠>(1978)와 함께 초청되었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명실상부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액션 영화의 기술적 숙련도가 전에 비할 수 없이 높아진 오늘의 시선에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의 액션은 철 지난 시대의 유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여전히 순수한 오락영화을 구현하고자 한 열정과 장르에의 매혹, 그리고 언젠가 세련된 형태로 다시 활용될지 모를 흥미로운 연출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한국-홍콩 합작영화가 성행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에 대한 증언이자, 동시대 액션영화가 해낼 수 있는 표현의 저변을 돌파하려 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의 가치는 변함없이 남아있을 것이다.

관련영화

철인(죽음의 다섯손가락)

철인(죽음의 다섯손가락)  The King Boxer/Five Fingers of Death/An iron man
1972 | 85분
감독 : 정창화
각본 : 강일문
출연 : 로 웨이, 남석훈...

관련글 전체게시물 0

  • 관련글이 없습니다.

등록

TOP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