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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 (이성구,1967)

글:이용철(영화평론가) / 2017-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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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

영화 <일월>(1967)은 소설가 황순원이 1962년부터 1964년 사이에 발표한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문예영화가 붐을 이룬 1960년대, 이성구<메밀꽃 필 무렵>(1967)과 <장군의 수염>(1968) 같은 대표작을 발표했다. <일월>은 이성구가 그 시기에 작업했던 작품이다. 영화의 인물과 줄거리는 대체로 원작을 따르고 있으나, 대중영화의 특성상 원작의 인물이 몇몇 빠졌고 후반부의 전개 방식도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런 까닭에 원작의 주제는 영화로 옮겨오면서 어느 정도 변한 게 사실이다. 이 글은 그 부분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건축학과 대학원생인 인철은 스키장에서 만난 미나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에게는 어릴 적부터 이웃으로 함께 자란 다혜가 있다. 다소곳하고 착한 다혜가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철에게 미나의 자리가 점점 커진다. 더욱이 미나는 별장의 설계를 인철에게 맡기면서 그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어느 날 인철이 자기 집안의 선조가 백정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 사실로 인해 그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 변화를 겪게 된다.

영화평론가 김종원 선생의 소개로 <일월>을 보았다. 백정이란 신분을 전면으로 다뤘다는 게 흥미를 끌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 20분 가까이 지나도록 그런 이야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설원을 배경으로 과감한 스키 장면을 배치한 오프닝 크레디트는 혹시 영화를 잘못 선택한 게 아닐까, 라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원작에서 인철은 대천 해수욕장에 갔다 미나를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영화는 해수욕장을 스키장으로 바꾸었다. 아마도 계절상 촬영 스케줄 문제로 배경이 바뀌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그게 효과를 발휘한다. 한국에서 스키가 대중화된 건 수십 년 후다. 그런 시기에 두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스키를 타며 마침내 키스를 나눈다. 한국에서 근대라는 개념은 이상하게 경제적 발전과 연결돼 읽힌다. 그런 탓에 근대가 개인의 영역으로 좁혀지면 개인의 생활 수준을 일컫는 양 받아들여진다. <일월>에서 상류층인 인철과 미나는 근대를 지나 현대를 상징하는 인물처럼 소개된다.

인철의 아버지는 기업을 경영하는 사장이고, 다혜의 아버지는 대학의 교수이며, 미나의 아버지는 은행장이다. 그리고 인철은 군수인 큰아들이 장차 정치가로 성장하도록 뒷바라지한다. 지식인을 포함한 상류층이 전체에 포진된 영화 속에, 과거 천민 계급으로 분류된 백정이란 소재를 들이밀면서 영화는 한국에서 근대가 과연 어떤 개념인지 질문한다. 한국에서 사민평등의 포고가 내려진 건 갑오개혁 때다. 다시 60년이 흐른 때, 지식인인 다혜의 아버지가 과거의 잘못된 유산과 선을 긋는 것과 달리, 현실 권력에 가까이 위치한 미나의 아버지가 신분제를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사이에 놓인 인철은 고뇌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다혜와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미나에게 애정을 느끼면서도 선뜻 다가서지는 못한다.

흥미로운 건, 원작과 영화가 공히 취하는 태도다. 이런 소재의 영화는 보통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사회를 비판하는 쪽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주인공을 얽매는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근대 이전의 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회, 그 사회를 비판하기란 오히려 쉽다. 그런데 <일월>은 철학적 태도로 문제에 접근한다. 원작은 인철의 가족을 중심으로 개별 구성원이 느끼는 고독과 소외를 포괄해서 다룬다. 인철의 아버지 김상진, 어머니 홍 씨, 형 인호, 동생 인주와 인모(영화에서는 인모와 인주를 인주라는 인물로 통합했다)이 구성원인 가족은 기이할 정도로 공동체로 기능하지 않는다. 단지 대화를 나누지 않는 수준을 지나, 그들 각자는 사회가 개인을 소외하는 방식 그대로 상대방을 대한다. 인철과 인주가 오누이로서 가깝기는 하지만 그들의 관계도 점차 변질된다. 클라이맥스에서 인주의 사고가 일어나고, 상진과 인철이 구원을 두고 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원작은 끝이 난다.

영화는 인모뿐만 아니라, 인주와 홍 씨, 그리고 상진의 두 아내, 기생이었던 인주의 어머니 등이 지닌 이력을 이야기에서 제외시켰다. 그 결과, 인물이 느끼는 고독과 소외의 보편성은 영화에서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되었다. 대신 영화는 인철과, 인철의 큰아버지이자 백정인 김본돌의 둘째 아들인 기룡과의 관계에 더 치중하는 편이다. 고독의 긴 터널을 통과하며 살았던 기룡의 삶은 인철에게 피붙이 이상의 것으로 다가온다. 인철의 마지막 대사 “인간이 소외당한 자기 자신을 도로 찾으려면 우선 각자에 주어진 외로움을 참고 견뎌 나가는 데서 시작해야 할 거야” 가 곧 기룡이 예전에 내뱉었던 말의 반복인 건 우연이 아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원작에는 위의 대사 뒤에 몇 마디의 독백이 더 있다는 점이다. 인철은 기룡의 태도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거기에 자신의 태도를 더한다. 그는 속으로 “그 외로움이란 인간과 인간이 격리돼 있는 상태에서만 오는 게 아니지 않는가. 서로 부딪힐 수 있는 데까지 부딪혀본 다음에 처리되어야만 할 문제가 아닌가. 기룡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 라고 외친다. 그런데 영화는 그 부분을 지워버렸다. 제목의 일월 즉,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존재인 해와 달은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해와 달을 나란히 세워 그것이 구성하는 세상 전체를 읽고 싶었던 게 원작이라면, 영화는 개별 인간의 내면적 성숙에 더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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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 100분
감독 : 이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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