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페이지 위치

HOME > 영화글 > 한국영화걸작선

장군의 아들 (임권택,1990)

글:김성훈(씨네21 기자) / 2017-02-08  

FacebookTweet

게시판 상세내용

장군의 아들

“내가 졌소. 종로 바닥을 떠나겠소.” 요즘 이렇게 대사를 썼다간 현실감각이 없는 시나리오 작가로 낙인찍히기에 십상이다. 임권택 감독의 액션활극영화 <장군의 아들>(1990)은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급습과 뒤통수치기가 난무하는 요즘 누아르 영화 속 건달들과 달리 이 영화 속 주먹들의 대결은 예를 갖춘다. 싸움을 걸 때는 “한판 붙읍시다”하며 도전장을 내민다. 대결에서 진 사람은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난다. 아무리 못 돼 보이는 악당이라도 염치를 알고, 이긴 사람의 뒤를 노리지 않는다. 이긴 사람 또한 기가 꺾인 상대에게 모욕을 주지 않는다. 상대의 부하들에게 “병원에 빨리 모셔가라”고 큰 마음씨를 베풀기까지 한다. 양쪽 패거리를 포함해 구경꾼들이 싸움의 참관인이자 심판자다. 김두한(박상민)과 전라도 주먹 망치, 우미관 김만목 사장(이해룡)이 영입한 이또우 무사시와 쌍칼(김승우), 김두한과 이또우 무사시, 하야시의 사주를 받은 김동회(이일재)와 왕십리파 왕막 등 영화 속 주먹들의 대결이 흥미로웠던 것도 그래서다.

<장군의 아들>의 김두한은 싸우면서 성장한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돼 각설이 생활을 하다가 우미관패의 우두머리인 김기환의 눈에 띄어 극장 우미관에 들어갔으니 살아남기 위해 주먹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반면 영화 속 그의 친구는 책을 택했다). 그는 우미관패 조직원 둘, (우미관에 들어간 뒤 처음 상대하는) 전라도 주먹 망치, (우미관의 김만목 사장이 김기환 하나로는 하야시패에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해 영입한) 이또우 무사시, 유도 유단자인 마루오카 종로경찰서 경부, (하야시패가 영역을 넓히기 위해 돈을 주고 영입한) 김동회 등 약한 상대부터 강한 상대까지 차례로 맞붙는다. 모든 액션신에서 정일성 촬영감독의 촬영은 정교하다. 관객의 눈을 속이고 타격감을 강조하기 위해 클로즈업숏을 연달아 배치하는 보통의 액션영화와 달리 <장군의 아들>은 롱테이크숏과 클로즈업숏 그리고 부감숏을 번갈아 활용하는 게 인상적이다. 두 사내가 서로 노려본 채 빙빙 돌며 기 싸움을 하는 롱숏(어떤 장면에서는 부감숏)은 매우 긴장감이 넘친다. 서부영화에서 총잡이들이 권총을 꺼내기 직전의 그 긴장감처럼 말이다. 이 롱숏 다음 장면으로 (서로에게 주먹을 주고받는) 클로즈업숏이 이어지니 긴장감과 속도감 모두 살아난다. <장군의 아들>은 컷을 잘게 잘라야, 컷의 사이즈가 타이트해야 영화의 속도가 빠른 게 아니라는 가르침을 준다(특히, 김동회가 왕십리파를 접수하는 액션시퀀스에서 김동회의 날렵함을 강조하기 위해 컷 분할 없이 담아낸 달리숏은 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하다).

액션신이 생생하게 설계되는데 세트가 한몫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해야 하고, 세트를 만들더라도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없는 지금과 달리 종로 시장거리, 우미관, 혼마찌(충무로) 거리, 술집 등 <장군의 아들>의 주요 공간 대부분 세트로 구현돼 낯설고, 그래서 신선하다(이 영화가 세트영화의 부활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장군의 아들> 속 공간과 관련해 몇 번을 봐도 울컥하는 장면이 몇 있다. 신마적(김형일)이 패거리들과 함께 술에 취한 채 혼마찌의 술집으로 가는 길에 <봉선화> 노래를 단체로 부르는 영화의 후반부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너를 반겨 놀았도다~.” 화면의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갈 때만 해도 그들은 하야시패와 맞붙어 봉변을 당할 줄 몰랐을 것이다. 술집에서 하야시패와 맞붙다가 봉변을 당한 그들 중 한 명이 종로에 있는 김두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김두한이 신마적을 구하기 위해 신마적 일행이 걸어간 길의 반대 방향(그러니까 화면의 오른쪽(종로)에서 왼쪽(혼마찌))으로 달린다. 이 장면은 단 몇 컷만으로도 김두한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어 숨이 턱턱 막힌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촬영이 경제적이면서도 경이로운 순간이다. 이밖에도 김두한이 우미관에 처음 들어갔을 때 본 무성영화는 애절하고, 김두한이 화자(방은희)와 함께 절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쓸쓸하다.

누구는 <장군의 아들2>가 더 좋았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이 장면들만으로도 <장군의 아들>이 충분히 아름다운 액션활극영화다.

관련영화

장군의 아들

장군의 아들  The General's Son (Janggun-ui adeul)
1990 | 108분
감독 : 임권택
각본 : (윤삼육,김용옥(구성))
출연 : 박상민(김두한), 신현준(하야시)...

관련글 전체게시물 2

등록

최근 등록 영화글

마의 계단

[한국영화걸작선]
마의 계단

[애니초이스]
낙타들

[독립영화초이스]
나의 연기 워크샵

[신판주말의영화]
베를린의 연인

[애니초이스]
철콘 근크리트

TOP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