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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춘천 (장우진,2016)

글: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 20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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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춘천

단순과 즉흥, 장우진<춘천, 춘천>을 설명하기 위해 이 두 단어면 충분하다. 춘천 태생인 장우진 감독은 막연하게 자신의 고향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춘천에 대한 장소감과 심상은 그곳을 바라보는 자의 시선과 경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아이디어였다. 이후 감독은 우연히 서울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등산복을 입은 중년 커플이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즉시 춘천이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영화적인 이야기를 구상한다.

<춘천, 춘천>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오프닝과 함께 춘천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 한 청년이 중년 커플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 청년은 중년 커플이 나란히 앉아서 편히 대화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준다. 등산복을 입고 춘천을 향하는 중년 커플의 대화 속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들의 말 속에는 긴장, 설렘, 사랑, 욕망이 뒤섞여 있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서울에서 취업 면접을 본 다음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춘천으로 돌아온 청년의 이야기와 중년 커플의 춘천 여행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오프닝을 제외하고 청년과 중년 커플은 다시 만나지 않는다. 혹자에게 이 두 개의 이야기는 진부할 수 있다. 미래가 불확실한 청년 세대의 불안함 그리고 중년 커플의 사랑과 욕망은 이미 동시대 텔레비전과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장우진 감독이 진부하고 전형적인 것들로부터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영화적 형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마치 하나인 것처럼 엮기 위해 대칭의 방식을 활용한다. 우선, 영화 전체적으로 청년의 동선과 중년 커플의 동선을 겹치게 했다. 1부에서 청년이 방문한 소양강댐, 선착장, 청평사, 식당 등은 이후 2부에서 중년 커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요 무대로 다시 쓰인다. 그리고 여러 에피소드를 배열하고 화면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데칼코마니의 구조를 따랐다. 한 프레임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이 서로 마주 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하나의 쇼트와 다른 하나의 쇼트가 몽타주 될 때 좌우 반전된 이미지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 외에도 1부의 에피소드와 2부의 에피소드는 유비적 관계를 맺는다. 청년의 현재와 중년 남자의 과거, 청년의 미래와 중년 남자의 현재가 닮은꼴이라는 인상을 주는 상황 또는 대화가 종종 있다. 이처럼 장우진 감독은 하나의 건축물이 여러 단위로 세분되어 있으면서도 그 각각이 모여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듯이,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공존할 수 있도록 이미지와 서사를 직조해나가고 있다.

장우진 감독이 추구하는 단순함의 미학은 하나의 작품에 최적화된 카메라의 움직임을 찾으려는 그의 직관과 통찰이 영화 전체를 관통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전작 <새출발>에서 불안한 20대 청년들의 물질적 및 정신적 상태를 다르덴 형제 식의 핸드헬드 카메라로 표현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정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을 선택했다. 춘천의 어느 재개발 지역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운무에 잠긴 소양강댐,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빛에 따라 그 형태가 변화하는 청평사의 풍경 등은 모두 고정된 카메라의 시선 속에서 회화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 또한 단순하다. 한 인물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면서 프레임 밖을 벗어나려는 찰나에 혹은 한 인물의 몸짓이 프레임 밖을 넘어가려는 순간에 카메라는 패닝 또는 틸팅을 한다. 이와 같은 카메라의 움직임은 한 화면에 담긴 상황, 환경, 풍경, 그리고 그것을 포함하는 세계 그 자체의 변화로 이어진다. 즉 영화 속 인물의 움직임 변화, 카메라의 운동, 그리고 상황의 변화가 순차적으로 이어지고, 유기적으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규칙을 적용해 이야기와 이미지를 구조화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형식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한다. 영화 곳곳에는 우연적이고,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이 있다. 극영화적인 세계 내부에 다큐멘터리가 동거하고 있는 양상이랄까. 극과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경계를 순간적으로 와해시켜보려는 감독의 연출적인 충동은 이 영화가 감독 자신의 고향인 춘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 감독이 서울에서 춘천으로 오는 열차 안에서 경험한 것을 모티브로 했고, 또 캐릭터의 이름과 배우의 이름이 일치한다는 점으로부터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야외 촬영이 대부분이었던 이 영화는 촬영 현장을 별달리 통제하지 않고 실제 그 현장의 우연적인 요소를 영화 만들기의 한 부분으로 포용했다. 그리하여 이미 구조가 짜인 이야기 안에 실제 현실이 침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청년이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고향 친구와 전화 통화하는 장면, 마라톤 경주 대회가 펼쳐지는 장소를 스쳐 지나가는 청년과 중년 커플의 상반된 모습, 그리고 청년이 친구네 어머니의 식당에서 김장을 도와주면서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 각각의 장면은 극영화적인 캐릭터와 다큐멘터리 적인 출연자들이 한 화면에 담긴 경우이다. 장우진 감독은 구조와 틀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감독의 직관, 배우 혹은 출연자들의 즉흥적인 말과 행동, 그리고 현장의 우발적인 상황을 포용하려고 한다.

이 영화가 우연성을 중시한다는 것은 빛의 변화를 다룬 몇몇 장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일조량에 따라서 카메라가 같은 공간을 얼마나 다양하게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청년과 중년 커플이 청평사에서 절을 하러 들어가기 전과 절을 하고 나온 후의 빛의 밝기는 달라진다. 영화는 그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마음의 짐을 절간에 두고 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이 절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자연광의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풍경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넌지시 강조한다. 장우진 감독에게 빛은 단순히 화면을 구성하는 이미지의 변화에 국한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러했듯이 빛의 변화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인상의 변화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우진 감독에게 모든 영화적 순간은 어느 하나의 시공간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부단한 생성을 거듭하는 찰나적 순간이 된다. 이처럼 <춘천, 춘천>은 단순한 구성과 촬영에 기초해 현실의 어떤 순간을 영화적인 순간으로 변환해보려는 연출적인 충동이 반영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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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문득 떠오른 고전 영화가 있어 조심스럽게 사족을 단다. 그것은 D. W. 그리피스가 만든 두 편의 단편이었다. 하나는 플로렌스 로렌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시골 의사The Country Doctor>(1909)이다. 이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이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질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패닝을 통해서 영화 속 풍경과 영화 속 이야기를 통합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릴리얼 기쉬가 주연으로 나왔던 <피그 앨리의 총잡이 The Musketeers of Pig Alley>(1912)이다. 이 영화의 한 장면은 당시 뉴욕 빈민가가 위치했던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촬영되었다. 행인 중 대다수는 그곳에서 영화가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카메라 앞을 지나간다. 그중 한 여인이 자신과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던 릴리언 기쉬와 어깨를 부딪치고는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그 여인의 표정, 즉 실제 거리의 행인과 배우 릴리언 기쉬의 충돌 때문에 나타난 그 찰나적 순간은 그리피스의 극영화 속에 다큐멘터리적인 순간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러한 장면들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그리피스의 패닝과 그의 현장 연출이 장우진의 패닝과 그의 현장 연출과 묘하게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두 감독 사이에 직접적인 영향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과거 영화 언어를 새로이 만들어보려던 힘과 오늘날 한 작품에 최적화된 영화 언어를 찾아보려는 힘이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신기할 따름이었다. 과거의 앞으로 나아가려는 영화적 힘과 오늘날 뒤로 돌아가려는 영화적 힘은 분명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도 그 두 개의 서로 다른 힘이 느슨하게 이어져 있거나 100년이 넘는 시간적 차이를 극복하고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공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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