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페이지 위치

HOME > 영화글 > 독립극영화

노후 대책 없다 (이동우,2016)

글:김보년(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 2017.05.18   

FacebookTweet

게시판 상세내용

노후 대책 없다

요즘 정식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노후 대책 없다>(2016)를 한 영화제에서 봤다. 이동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펑크 밴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다양한 결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들려준다. 처음에는 조금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이런 산만함도 기분 좋은 활력으로 다가왔다. 이 글에서는 <노후 대책 없다>의 산만한 전개 중에서 뚜렷하게 느껴진 두 가지 특징을 짧게 정리해보려 한다.

<노후 대책 없다>의 첫 번째 특징은 솔직함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주인공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이들의 약점을 다 드러냄으로써 관객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거나, 심지어 나쁜 인상도 심어줄 수 있지만 감독은 그런 점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관객이 이들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그들의 삶, 또는 감독 자신의 삶에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자칫 보는 사람이 민망해지는 나르시시즘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노후 대책 없다>는 주인공들의 부끄러운 면까지 드러내는 과감한 솔직함으로 이런 위험을 피해간다.

많은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를테면 밴드 ‘크라이스트퍽’의 정진용은 공연 도중 옷을 다 벗어버린다(정확히 말하자면 친구가 기습적으로 정진용의 팬티를 내린다). 솔직히 말해 공식 공연에서 사전에 합의하지 않은 채 나체로 노래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은 모자이크까지 동원해 그 장면을 꽤 길게 보여준다. 관객이 어떻게 판단하든 이들의 삶을 인위적으로 편집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주인공인 문경훈은 술을 먹고 “화가 난다”며 아무 죄 없는 횟집의 수족관을 깨부순다. 그리고 밴드의 공연 도중 무대 위로 올라가 멀쩡한 음악 장비를 부순다. 그는 군대에서도 의도적으로 여러 차례 물건을 부쉈다고 한다(그리고 그걸 자랑스러워 한다). 이런 에피소드를 보면 그가 가까이하기엔 좀 어려운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영화는 그런 모습도 전부 보여준다. 그밖에도 펑크 음악을 불편해하는 여성 관객을 일부러 따라가 놀리는 장면도 있고,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도 있다. 만약 이런 에피소드들을 집어넣지 않았다면 <노후 대책 없다>는 음악을 좋아하는 순수한 청년들이 힘든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훈훈한 이야기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영화는 이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얌전히’ 살지 않는지 가감 없이 묘사한다.

<노후 대책 없다>의 두 번째 특징은 서글픔의 정서다. 물론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삶을 보며 슬픔을 느끼는 건 무례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감상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후 대책 없다>는 최근 본 영화 중 나를 가장 씁쓸하게 만들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밴드 ‘파인더스팟’의 송창근이 농성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그랬다. 송창근은 영화 내내 자신의 기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사도 알아듣기 힘든 시끄러운 노래를 내지르듯 부르고, 마이크로 이마를 찍어 일부러 피를 낸다. 상의 탈의는 기본이며, 경찰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다. 영화에 나온 송창근의 이런 화끈한 모습은 대리만족까지 안겨준다. 그는 누가 뭐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재밌고 신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느 날 송창근은 “더 이상 못하겠다”며 눈물을 흘리고, 다음 장면에서는 혼자 농성장에서 공연을 한다. 누구라도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송창근의 음악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이 노래는 뚜렷한 멜로디가 있고, 가사도 잘 들리며, 그렇게 시끄럽지도 않고, 슬램도 없다. 줄지어 앉아 있는 노동자들 앞에서 옷을 깔끔하게 갖춰 입고 노래를 부르는 그의 낯선 모습은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영화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이 장면의 송창근은 ‘연대’와 ‘투쟁’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취향을 양보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고 그래서 일단 감동을 준다. 하지만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음악을 (잠깐이라 하더라도) 내려놓은 음악인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왜 하드코어 메탈밴드의 멤버가 장르를 바꾸면서까지 노동자들 앞에 서려 했던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고민하다 보면 저절로 이 사회에 대한 분노가 찾아오고, 송창근에 대한 존경과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찾아오고, 마지막에는 결국 슬퍼진다. 장면 자체는 그렇게 길지 않지만 지금도 <노후 대책 없다>를 생각하면 뻣뻣이 서서 노래를 부르는 송창근의 낯선 모습과 그 앞에 앉아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건 이 씁쓸한 정서가 결코 영화 전체의 무기력이나 우울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동우 감독은 바뀌지 않는 현실의 막막함과 그 앞에 선 자들의 분노를 숨김없이 솔직하게 포착하고, 나아가 서글픈 감정까지 건드리지만 절대 이들의 처지를 동정하고 미래를 비관하는 쉬운 결론으로 빠지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지금도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각자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만을 간략하게 전하면서 영화를 마친다. 다시 말해 이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요즘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듣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 짧은 소식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관련영화

노후 대책 없다

노후 대책 없다  No Preparation for Old Age (no-hu dae-chaek geop-da)
2016 | 100분
감독 : 이동우
출연 : 파인드 더 스팟(Find the Spot), 스컴레이드(SCUMRAID)...

관련글 전체게시물 0

  • 관련글이 없습니다.

등록

TOP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