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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묻다, 배우에게 묻다

글:백은하(영화기자, 배우연구자) / 201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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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묻다, 배우에게 묻다

물었다. 왜 떠나냐고, 뭘 하고 왔냐고, 어떻게 살 거냐고. 2016년 초, 영국 유학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1.그 나이에? 2.하던 일은 어쩌고? 3.뭐 하려고? 그리고 1년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니 그들은 여전히 궁금해 했다. 4.뭘 배우고 왔어? 5.뭐가 달라졌어? 6.그래서 앞으로는 뭐 할건데?

먼저 나이로 말하자면, 이미 불혹(不惑)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에 혹 할 일 들이 많았고 궁금한 것들 투성이었다. 부산에서 보낸 어린 시절, 막연하게 20대에는 서울로 독립하고, 30대에는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보고, 40대엔 유럽 어딘가에서 생활하고, 쉰이 넘으면 일본 소도시 같은 곳에서 머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삶이 꿈꾸던 대로 되었으므로 40대의 영국행은 그리 뜬금없는 행보는 아니었던 셈이다. 하던 일에 대해 말하자면,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계속 일 할 기회가 있었지만, 일이란 것이 그저 하고 싶다는 의지나 마음만으로 계속 할 수 없다는 걸 막연하게 느끼게 되었다. 결국 이 유학은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한 야심 찬 단계였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하던 일의 지속 방법을 찾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고백하건데, 1999년 『씨네21』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프리랜서 영화기자가 되어 매주 배우들을 만나고 있는 지난 18년 동안, 나는 아직도 그들과의 인터뷰를 앞두면 막막하다. 익숙해질 법도, 요령이 생길 법도 한데, 매번 길을 잃었다. 막다른 길 아니면 아예 미로 앞에 선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내가 건네는 질문이 한 길 사람 속에 닿기는커녕 수면만 건드리는 공허한 돌 던지기가 아닐까 늘 의심 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대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독자나 시청자를 위한 것인가? 배우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인터뷰라는 관성적인 행위로 채워지는 잡지 지면과 방송 시간을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그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배우들에 대한 궁금증과 경외심의 샘이 마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들에게 던지는 내 질문의 샘은 점점 말라져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를 타국으로 떠나게 한 것도, 나를 공부하게 한 것도, 딱 하나였다. 만나면 만날수록 더 모르겠는, 그러나 여전히 궁금하고 사랑하는, 배우라는 미지의 종족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2016년 늦여름, 나는 프리랜스 영화기자라는 직업을 잠시 접어두고 마흔 둘의 나이에 런던 유학을 떠났다. 런던대(University of London)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전공하며 415일간을 런던에서 보냈다. 배우에 대한 기존의 학계 연구들이 주로 스타 연구(Star Studies)와 퍼포먼스 연구(Performance Studies)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았고, 이 풍성한 연구들 속에 존재하는 사각지대를 파악했다. 즉 배우를 특정한 사회적 기호나 현상으로 파악하거나, 그들의 연기 기술과 방법론을 분석하고 카테고리화 하는 가운데 정작 한 명의 배우를 개별 인간/예술가로 인지하고 접근하는 연구가 비교적 소홀함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배우들은 크던 작던 누구와도 같지 않은 요소들, 비교불가의 영역들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여기에 독립된 배우를 중심으로 한 수정된 작가주의(Auteur theory) 연구라고 할 수 있는 ‘액톨로지’(Actorology, 배우학)에 대한 제안을 했다. 쉽게 말해 ‘195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배우 연구’가 아니라 ‘로버트 드 니로 연구’ ‘톰 크루즈 연구’ 같은 식이다. 물론 한 배우의 다양한 가치(Values)를 분석하는 단계에서 기존의 스타 연구나 퍼포먼스 연구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결국 마지막 졸업 논문은 ‘액톨로지’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제안을 중심으로 배우 메릴 스트립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물론 1년 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고민이라 설익은 부분들이 많은 결과물이었지만, 내 스스로는 평생 해나갈 연구의 입구를 찾은 기분이었다.

2017년 10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학을 떠나기 전 4년 넘게 진행해왔던 올레TV 영화 프로그램으로 다시 복귀했고 각종 영화제 혹은 개봉영화들의 모더레이터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배우를 만나고, 인터뷰를 한다. 누군가 보기에는 떠나기 전과 하나도 달라질 것이 없이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배우 앞에 선 내 마음은 조금 변했다. 나는 인터뷰어로서 결국 실패할 것이다. 배우들의 마음에 닿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겠지만 끊임없이 내 방법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배우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시장이 나에게 일을 앗아가는 시기, 혹은 인터뷰의 기회를 주지 않는 시간이 오더라도 평생 연구할 대상이 없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서 종종 나오는 ‘발명왕’이나 ‘특허왕’ 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집요하고 신나게, ‘백은하 배우연구소’(Una Labo Actorology)의 첫 번째 ‘배우연구자’로서 앞으로도 이 무모한 탐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런던에서의 1년은 나에게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준 시간이었다. 이것이 이 글의 첫 문단에 받은 1번 부터 6번까지의 질문에 대한, 현재까지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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