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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웰에서 마주한 ‘방랑의 서사’

글:김경묵(영화감독) / 2017.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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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웰에서 마주한 ‘방랑의 서사’

“세상이 크다는 사실은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들어 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양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며,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멀고도 가까운: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아름다운 숲과 무수한 호수들로 둘러싸인 맥도웰 공동체를 아시나요? 이곳은 울창한 나무숲에 둘러싸여 경계 지워져 있고,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서는 멀리 지평선을 볼 수 있습니다. 낮에는 사슴, 꿩, 다람쥐가 창밖에서 뛰어다니고, 밤에는 광해에 오염되지 않은 온갖 별 무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더구나 이 고요한 숲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도시에서나 살 법한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입니다.


해질녘의 맥도웰, 그리고 종종 출몰하는 사슴 가족들

물론,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이곳이 어딘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친구의 소개로 맥도웰에 오기 전까지는 세상에 이렇게 고요한 곳이 존재할 줄 몰랐다. 맥도웰 콜로니(The MacDowell Colony)는 미국 동북부, 뉴햄프셔주의 어느 한적한 숲속에 위치한 작가 레지던시이다. 작곡가 에드워드 맥도웰과 피아니스트 마리아 맥도웰의 이름을 따서 1907년에 개설된 곳으로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내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가 레지던시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넓은 개인 스튜디오와 숙식뿐만 아니라, 여행경비와 소정의 체재비용까지 제공한다.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예술가만 해도 수천 명에 이르고, 개중엔 작가 앨리스 워커나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이 속해 있으며 퓰리처상 수상자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른다. 보통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 하면 도시 근방에 위치하여 작가에게 전시와 공연 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 이곳과 같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예술가들이 평온한 환경 속에서 구상 중인 작품을 발전시키고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여기까지 들으면 예술가들의 지상낙원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는 환경에 대한 객관적 서술일 뿐이니 결국 무슨 경험을 할 것이냐는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각자의 몫이다. 나로 말하자면 지난 한 달간 이 고요한 숲속 마을은 고립과 단절, 그리고 방랑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맥도웰에는 시각예술가, 작곡가, 건축가 등이 있으나 대부분은 글을 쓰는 미국인 작가들이 모여있다. 이들 중 대다수가 뉴욕에 거주한다. 난 이곳에서 분야가 다른 유일한 아시아인이자 비영어권 국가인으로서 대화에 많은 애를 먹으며 커뮤니티의 일원이라기보다는 관찰자로서 지냈다. 아침, 저녁으로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끊임없는 대화가 오가고, 이 자리는 밤바다 열리는 레지던시 참여 작가 프레젠테이션으로 이어진다. 그 이후에는 마음 맞는 이들끼리 모여 앉아 전문적이거나 사적인 스몰 토크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날마다 이같은 대화에 참여해야 하니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좋아야 하겠지만, 열림 마음을 아무리 가졌던들 가장 큰 걸림돌은 언어와 문화였다.




거의 매일 밤 열리는 작가 프리젠테이션(아래 이미지 크게 보기 [클릭])

다수가 미국인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식사자리는 외국인에게는 낯선 ‘미국적’인 주제의 대화가 오간다. 상당수가 학교에 적을 둔 교수이자 배운 예술인들답게 사회문화적인 대화를 주제로 삼곤 하는데, 유학은커녕 어학연수 경험조차 없는 내게는 캐치하기 어려운 맥락일뿐더러 이해한다 해도 위축된 마음에 끼어들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게 될 때가 종종 발생했다. 수감생활 이후 사교성이 떨어진 것 역시 부적응에 한몫을 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코리안인 내게 외국인들에 대한 이질감이 없다 한다면 그 또한 거짓이리라. 한 달 내내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지내며 강하게 느낀 바가 있다면 같은 인종과 공유하는 지역적, 문화적, 사회적 유대감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아주 크다는 것이다. 그간 많은 해외영화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어느 정도 영어를 구사하고 나름 문화적 다양성에 익숙하다 여겼으므로 오히려 충격이 컸다. 돌이켜보니 영화제란 공간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드는 서로가 서로에게 외국인인 곳이었으므로 미국인들로만 구성된 커뮤니티에서 지내는 건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이라고 느끼며 겉돌기 시작했다. 무슨 조화인지 미국에서 구매한 심카드는 시그널을 잡지 못해 먹통이 됐고, 인터넷은 스튜디오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도서관에서만 가능했다. 이쯤 되니 예술가의 지상낙원은 천상의 고립무원이 될 조건을 완벽히 갖추게 되었다. 유학 간 친구들이 초반 적응기에 겪던 고립감과 외로움이 내게도 고스란히 다가왔다.


유일하게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는 도서관

사실 이 모든 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부터 이같이 고립된 환경을 원했었다. 마치 가기 싫은 수학여행에 억지로 끌려와 이질적인 친구들과 함께 한방을 쓰는 것 마냥 힘겹게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오게 된 동기, 익숙한 집을 떠나 낯선 땅을 헤매게 된 이유, 그것은 2년 전 수감생활에서부터 시작된 방랑의 연장선이었다. 병역거부로 인해 1년 3개월간의 독방에서 겪었던 경험들은 지난 삶으로부터의 단절을 야기했고, 다른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모든 일과가 감시와 통제 하에 이루어지는 당시의 환경은 출소를 할 때까지 적응할 수 없이 괴로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과 고립되어 오직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삶의 어떤 본질을, 충만함을 제공했다. 비록 처절하게 외롭고 고독했음에도 말이다. 아니, 그랬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루종일 독방에 홀로 갇혀 있는 영어의 몸이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지난 삶에 대한 생각뿐이다. 죽음이 다가와야 가던 길을 멈추고서 삶에 대해 사색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내게도 수감 시절은 그와 같은 멈춤과 질문의 시간이었다. 아쉽게도 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때문에 출소 이후에도 나 홀로 이 삶으로부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의미하기만 한 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질문을 계속해서 쫓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를 구속시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이란 영토를 잠시나마 떠나있고 싶었다. 외국의 예술가 레지던시라는 건 내게 파라다이스 버전의 독방생활의 연장으로 다가왔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한국을 떠나 안락한 수감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당장 급히 끝내야 할 일이 없으면 온갖 잡생각에 빠져들기 마련이듯, 이곳에 와서 실질적인 일을 한 양보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고민한 시간이 더 잦았다. 감옥에서부터 시작된 이 ‘방랑의 서사’를 어떻게든 마무리 짓기 위해 다시 난 안전한 집을 떠나 다시금 독방으로 찾아들어온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지난한 ‘방랑의 서사’를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인간의 삶은 서사에 종속되어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돌봄의 결핍 외에 부모와의 다양한 교감의 기억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나누었던 학창시절의 경험은 학교의 부당한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괴로워했던 아이의 서사에서 제외된다. 잔인한 세상은 연약한 아이에게 폭압을 선사하지만 아이는 수동적으로 세계의 폭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모든 성장서사의 기본 프레임이다. 사실 앞선 위의 글에서도 이곳에서의 고립감을 매끄럽게 서술하기 위해 그 밖의 경험들은 제거해야 했다. 가령, 잘 적응하지 못한 채 겉도는 나를 세심하게 챙겨준 퀴어 작가 코린과의 만남,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미국의 원주민으로서 인종차별로 인해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들려준 화가 아힘사와 나눴던 연대감, 스튜디오에서 명상을 하다 눈을 떴을 때 창밖을 지나가던 가슴 가족과 마주친 순간의 아름다움 등은 서술될 자리를 찾지 못했다.


생활했던 스튜디오의 전경(이미지 크게 보기 [클릭])

우리들 대부분은 힘없는 개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약자나 피해자의 위치에 놓기를 편애한다. 자신에게만큼 타인에게 관대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으며 주인공이 아닌 악당에게 동일시하는 이는 드물다. 적은 악독할 수록, 주인공의 내적 딜레마는 강렬할수록, 서사는 매끄러우나 극적으로 완성될수록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 이야기의 첫 번째 독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드라마가 서술됨과 동시에 불행히도 우리의 삶은 그 서사의 감옥에 갇힌다. 사이코 드라마의 무대 위에 우리 자신을 주인공으로 세워두고서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야기에 갇힌 수인으로서 말이다. 당신의 서사는 언제나 같은 시공간, 동일한 인물들과 매번 반복되는 갈등을 재연한다. 해소되지 않은 갈등은 트라우마로 남아 당신의 의식을 좀 먹는 구더기로 변한다. 우리의 생물학적 신체는 세월의 때가 묻어도 무의식 속 드라마는 시간 개념을 지니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당신이 그 무대 위 주인공이 아니라, 객석에 앉을 수 있거나 무대를 벗어나 백스테이지에 들어갈 수 있을 때이다. 바로 당신 자신이 극작가이자 연출가이자 음악감독이자 주인공인 연극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트라우마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어머니를 향한 나의 설움과 슬픔이 수감시절의 대화와 명상으로 해소될 수 있었던 건 그녀와 나의 드라마가 끊임없이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다 보면 머리와 가슴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가 있다.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지닌 패턴을 이해하게 되고, 당신이 그 이야기에 빠져 지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창조한 이야기를 다른 관점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맥도웰에서 명상을 하는 동안 난 스스로가 만들어낸 ‘방랑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난 내내 ‘이 방랑의 서사가 어디로 갈 것이며, 무슨 결론으로 맺어질 것인지,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뚫고 미래의 시간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붙들려 있었다. 수형 생활을 겪으며 출소 이후의 삶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 과거와 단절하여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린 것이다. 감옥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리적 감옥에서 나왔더니 이제는 사고의 감옥에 갇히게 된 셈이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 생을 그 자체로 감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방랑의 서사에 갇힌 수인으로서 지금에서 바랄 수 있는 것은 이 서사의 과정을 통과하는 경험 속에서 좀 더 생의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성장은 고통을 담보로 하지만, 끊임없는 고통 속에 노출되는 건 오아시스 없는 사막에 자신을 내동댕이치는 것과 같다. 갈등을 해소할 요소를, 삶의 의미를 찾아줄 본질을 찾을 필요는 없다. 이미 그것은 항상 자신을 발견해 주기만을 기다리며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삶을 회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황량함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생의 의미는 충분할지도 모른다. 여전히 내게는 한 달여간의 레지던시가 더 남아있고, 그 끝에 나의 서사가 어떤 결론에 이를지 알지 못한다. 이곳에 있는 동안 수감 시절 손으로 쓴 일기를 컴퓨터에 정리했을 뿐, 생산적인 작품 활동이나 여유로운 휴식, 또는 작가들과의 네트워킹 따위에 신경 쓰지 못했다. 대신에 맥도웰이 나에게 제공해준 것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의 시간에서 벗어나 고립된 환경 속에서 이 ‘방랑의 서사’를 마주하며 마음껏 고뇌할 수 있는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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