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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관의 포스

글:민용근(영화감독) / 20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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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관의 포스

영화관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 무엇일까 떠올려보면 좀 가물가물하다. <해돌이의 대모험>이라는 영화를 보았던 세종문화회관이었나, 아니면 <이티 E.T.>를 보았던 푸른극장이었나. 암튼 초등학교 입학 전후로 나는 영화관이라는 곳을 처음 갔었고, 그 이후엔 아버지 친구분이 주시던 극장 초대권을 받아 대한, 명보, 스카라 등의 영화관을 누비곤 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없던 당시에는 영화 자체에 대한 기억만큼 큰 추억을 주던 곳이 바로 ‘영화관’ 그 자체였다. 각 극장이 가진 각기 다른 공간적 매력이 있었다. 건물 전면을 커다랗게 차지하던 영화 간판부터, 매표구, 로비, 화장실까지 모든 공간 하나하나가 퀴퀴한 향기와 함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또 당시엔 각 영화관이 어떤 영화를 선택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올겨울 대한극장이 당신을 위해 선택한 영화’라는 식의 카피가 가능했고, ‘화양, 명화, 대지’ 극장은 당시 홍콩 누아르의 붐을 일으켰던 성지와 같은 곳이기도 했다. 당시 영화관들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곳’이라는 공간적 개념을 넘어선 남다른 ‘포스’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영화+영화관’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은 대기업의 멀티플렉스가 대부분의 영화관을 차지하고 있다. 시설 및 편의성의 측면에서는 옛 극장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세련되어졌지만, 지금은 영화만 남고 영화관은 사라져버린 것 같다. 지금의 극장은 편하고 화려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별다른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다. 단순히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아무래도 이러한 대세는 변할 리 없겠지만, 한편으로 당시의 영화관이 뿜어내던 ‘포스’가 사라져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포스를 뿜는 영화관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몇 편의 독립영화를 개봉하는 과정에서 나는 각 지역에 있는 독립예술영화관을 만났다. 서울, 인천, 강릉,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등에 있는 각 독립예술영화관에서는 옛 극장들에 비견될만한 개성 넘치는 포스가 느껴졌다. 그곳에서 나는 사라져버린 옛 극장에 대한 향수만을 느낀 건 아니었다. 우선 상영되고 있는 영화들이 달랐다. 다양한 주제와 소재, 형식을 가진 독립, 예술영화들이 상영되고 있었고, 때론 상업, 정치적인 이유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외면받은 영화들도 상영되었다. 획일적인 상업영화에 식상한 관객들이 그 영화관을 통해 문화적 욕구를 해결하고 있었고, 때론 제작진과 관객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앉아 확장된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해당 영화관의 프로그래머와 운영진의 개성에 따라 그 방법과 분위기는 각기 달랐고, 그 각기 다른 방식이 주는 재미 역시 각기 달랐다. 영화만 남는 곳이 아니라 ‘영화+영화관’이 함께 기억될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우리는 그 영화관들을 하나씩 잃어갈지도 모른다. 그동안 이런 극장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던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각 극장의 자유로운 영화 선택권을 보장해주던 기존 제도가 폐지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위탁한 단체에 의해 선정된 영화를 반드시 상영해야만 지원해준다는 일종의 ‘조건부’ 지원정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보다 자유로운 프로그래밍이 보장되어야 할 독립예술영화관에 있어서, 지원을 전제로 프로그래밍의 폭을 제한하는 것은 독립예술영화관의 정체성을 버리라는 일종의 사형선고와 같다.

‘영화’라는 것은 홀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이 있고,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이 있고,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철학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관계를 우리는 ‘문화적 토대’라 부르고, 영화관은 그 토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의 독립예술영화관은 어떤 문화적 토대 위에 존재하고 있는가. 통계상 관객 숫자, 벌어들이는 돈, 얼마나 이슈가 되는가, 혹은 자유로움을 억누르려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만 우리의 문화적 토대가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돌아봐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현재 개정하려는 ‘예술영화 유통 배급 지원 사업’이 어떤 개악의 요소가 있는지 돌아보고, 영화계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개성 넘치는 독립예술영화관들의 포스를 지켜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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