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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한국영화, 카오스의 이색지대] 2. 숲속의 바보들: <산딸기> <화녀촌> <뽕>, 1980년대 토속 영화

글: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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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한국영화, 카오스의 이색지대] 2. 숲속의 바보들: <산딸기> <화녀촌> <뽕>, 1980년대 토속 영화

충무로는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장르적 지형도의 변화를 겪는다. 크진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는 기록할 만하다. 먼저 여전한 장르는 멜로드라마와 액션이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정소영, 1968) 류의 신파 멜로는 꾸준히 만들어졌다. 합작(혹은 위장 합작)을 통한 무협 액션 영화도 왕성했다. 합작과는 무관하면서도 ‘중국식 제목’을 단 한국영화들, 그러니까 <무림오걸>(김시현, 1979) <애권>(이형표, 1980) <소림사 주방장>(김정용, 1981) 같은 영화들의 러시가 이뤄졌고, <협객 시라소니>(이혁수, 1980) 같은 전통적인 ‘따찌마리’ 액션도 이어졌다.

사라진 장르도 있었다. 호러가 대표적이다. 메이저 장르는 아니었지만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한국 공포 영화는 1980년대 중반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 부활을 목격하기 위해선 1998년 <여고괴담>(박기형)까지 10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새로 생긴 장르도 있었다. 아동용 SF 액션이다. 지금 보면 조잡하기 그지없는 특수효과로 점철된, ‘우뢰매’ 시리즈(1986~93)나 ‘별똥왕자’ 시리즈(1987~88)는 1980년대의 발명품이었다. 마지막으로, 변형된 장르가 있다. 일종의 진화라고 해도 좋을 거다. 1970년대 ‘얄개 영화’는 1980년대에 연령대를 조금 높여서 <대학얄개>(김응천, 1982)로 다시 태어났고, <오성군 한음군>(박호태, 1988) 같은 영화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강우석) 이후엔 사회적 이슈와 결합되어 1990년대 초를 장식했다.


1. 토속 영화의 조짐이 보였던 <심봤다>
2. 1985년에 나온 <뽕>은 토속 영화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으로, 이후 컬트로서 추앙받는다.
3-4. 정윤희가 주연을 맡았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왼쪽)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오른쪽). 자연 속에서 파라다이스를 즐기던 순수한 남녀는 외부자에 의해 그곳을 침범 당하고, 결국 여자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한다.


1980년대에 또 하나의 ‘변종’이 있다면 흔히 ‘토속물’ 혹은 ‘향토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제목으로 지칭되던 그 영화들이다. 이 글에선 ‘토속 영화’라는 명칭으로 통일할 이 영화들은, 거칠게 정의 내리면 이른바 ‘문예영화’가 에로티시즘을 만난 결과다. 1970년대까지 검열의 수위 안에서 원작 소설을 표현했다면, 1980년대엔 과감해졌다. 과거 이미 만들어졌던 정비석의 『성황당』, 이효석의 『분녀』, 나도향의 『물레방아』 등은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정진우, 1981) <산딸기>(김수형, 1982) <물레방아>(조명화, 1986) 등으로 좀 더 에로틱하게 재등장했고, 김유정의 『땡볕』 『떡』 등도 소환되었다. 그러면서 문예영화의 범주를 벗어난, 다소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소설을 각색하거나 창작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토속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은 (주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에로티시즘 사극과 구분되어야 한다. 토속 영화는,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토속 에로티시즘 멜로드라마는 사극이 지니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며, 시대 배경은 식민지 시기 농촌이나 어촌이다. 공통점도 있다. 1980년대 토속 영화와 사극은 한국영화에서 여성에게 가장 가혹했던 장르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처참한 지경에 이르며 죽음에 이르는 여성들의 영화. 그들은 마치 세상의 모든 모순을 떠안아야 하는 것처럼 보였고, 당시 외국에서 한국영화 특별전이 열리면 서구 관객들은 “한국영화는 왜 그렇게 여자를 때리느냐”고 항의성 질문을 던질 정도였다.


1. <산딸기>의 한 장면. 물레방앗간은 토속 영화에서 반복되는 핵심적 공간이다. 주로 비밀스러운 정사가 이뤄지는 그곳에선 종종 여성의 운명이 결정된다.
2. <산딸기>의 엔딩. 명준과 분녀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명준은 말한다. “그래 저 학들처럼 천년만년 살자.” 토속 영화는 ‘새’의 상징을 자주 사용한다. 정진우 감독은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를 만들었고(<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1983)까지 묶어 ‘새 3부작’), <여자의 성>에서 별녀는 어릴 적 숲에서 죽어가는 새를 데리고 와 살리는데, 그 가련한 새는 이후 별녀의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산딸기 2> <여자의 성>은 모두 새 소리를 섹스의 신호로 사용한다.
3. <숲속의 바보>는 토속 장르에 ‘백치 여인’ 캐릭터를 끌어왔다.
4. 문예 영화는 1980년대에 토속 영화의 방식으로 변형되어 지속된다. 사진은 김동인 원작의 <감자>


그 시작을 살펴보면 1970년대 말에 조짐이 있었다. 선두 주자는 정진우 감독이었다. 이은성 작가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심봤다>(1979)는, 문예 영화의 톤이 짙긴 했지만 이후 등장할 토속 영화 트렌드를 예견케 했고,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가 이어졌다. 결정타는 김수형 감독의 1982년 작 <산딸기>였다. 안소영-선우일란-강혜지-소비아로 주연 여배우의 변화를 겪으며 1994년 6편까지 이어진 이 토종 프랜차이즈는 토속 영화의 얼개를 만들었다.

<산딸기> 1편을 보자. 화전민 마을에 분녀(안소영)가 산다. 한가위 마을 잔치 때 취바리 탈을 쓴 누군가에게 겁탈당한 분녀는, 그 주인공이 마을 청년 명준(임동진)이라는 걸 알게 된다. 노다지를 찾아 만주로 떠난 명준을 분녀는 기다린다(안소영과 임동진은 같은 해 <애마부인>(정인엽, 1982)에서도 공연했고, 여기서도 안소영은 (감옥에 간 남편) 임동진을 기다렸다). 마을 남자들은 호시탐탐 분녀를 노리고, 급기야 자기들끼리 싸우다 두 명이 죽는다. 이에 ‘남자 잡아먹는 X’라며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분녀는 가마 주인(남궁원)을 따라 읍내로 가 술집 작부가 된다.

<산딸기>는 토속 영화의 핵심 구조를 제시한다. 바로 이분법이다. ‘시골 vs. 도시’라는 구도 속에서 토속 영화는 여러 대립항들을 만들어낸다. 아직 물물교환이 익숙한 ‘촌’이 있다면, 그 반대편엔 ‘장터’라는 공간으로 상징되는 ‘돈’의 세계가 있다. 마치 서부극의 ‘자연 vs. 문명’ 구도처럼 토속 영화는 두 세계의 충돌 속에서 전자의 붕괴를 보여준다. 산속이나 섬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거나 약초를 캐며 살아간다면, 양복을 입은 외부인들(여기엔 종종 일본 순사가 가세한다)은 그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여기서 위협의 대상은, 그 마을에서 가장 아리따운 젊은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수많은 남자들에게 음험한 욕정의 대상이 되고, 결국 도시로 끌려가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을 한 채 술과 몸을 팔게 된다. 이 구도는 <여자의 성>(문여송, 1985) <산딸기 3>(김수형, 1987) <옹기골 뽕녀>(김수형, 1987) 등에서도 정확히 반복되는, 토속 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여기서 같은 해에 나온 또 한 편의 영화를 주목해야 한다. 장미희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숲속의 바보>(박용준, 1982) 다. 이 영화는 토속 영화의 여성 캐릭터를 완성한다. 바로 ‘백치 여성’의 등장이다. 복희(장미희)는 다소 지능이 떨어지는, 영화 제목 그대로 ‘숲속의 바보’인데, 이후 수많은 토속 영화들은 핸디캡을 지닌 여성 캐릭터를 통해 이 장르가 지닌 ‘원시성’ ‘본능성’ ‘순수성’ 등을 드러낸다(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진 않지만, 그런 점에서 말 못 하는 수련(정윤희)이 등장하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정진우, 1981)도 토속 영화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캐릭터의 계보는 <불새의 늪>(고응호, 1984)의 봉은(원미경), <여자의 성>의 별녀(최선아), <소금장수>(김대진, 1988)의 냉이(천은경) 등으로 이어지며, 그들은 섹스에 대한 ‘원초적 본능’의 소유자로 등장한다(<불새의 늪>에서 화가 종훈(마흥식)은 봉은에게 ‘수성’(獸性), 즉 ‘짐승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며, <여자의 성>의 뭍에서 온 침입자 억수(독고영재)는 “잠자리가 뛰어난 여자거든!”이라며 별녀에게 집착한다).


1-2. <산딸기 2>(왼쪽)와 <물레방아>(오른쪽)의 선우일란과 마흥식. 두 배우는 토속 영화의 간판스타였다.
3. 문여송 감독의 히로인이었던 <여자의 성>의 최선아.
4. <산딸기>의 김애경. 무당 캐릭터는 토속 영화의 핵심적 조연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테마는 바로 ‘근친적 설정’이다. 문명 이전의 상태에 대한 메타포일까? 심의 때문에 진짜 혈연적 근친 관계를 내세우진 못하고 유사 근친 관계를 설정하긴 하지만, 많은 토속 영화들이 근친적 관계를 내세운다. <숲속의 바보>의 복희는 남매처럼 함께 사는 머슴 만복(김동현)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는다.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에서 최 영감(황해)은 고아인 수련과 문영(최윤석)을 키우는데, 혈연은 아니지만 남매처럼 자란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여자의 성>의 별녀는 데릴사위로 온 거무(이구순)와 남매처럼 지내다가 결혼한다. <소금장수>의 덕만(김추련)도 엉겁결에 맡아 딸처럼 데리고 다니는 냉이와 부부적 관계를 맺게 된다.

<화녀촌>(김기, 1985)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종섭(이영하)은 상처한 후 산에서 어머니(김지영), 처제 정분(최현미) 그리고 딸과 살아간다. 그는 형제나 마찬가지인 옆집 친구 덕만(나기수)의 아내(이상숙)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는데, 덕만 내외가 갓난아이를 남긴 채 마을을 떠나자 처제를 아내처럼 받아들여 그 아이를 키우며 산다. 근친적 관계 이외에도 토속 영화는, 도시와 문명이 반대편에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본능적인 모습들을 클리셰로 드러낸다. 대표적인 것만 간추려 보겠다.

1. 수시로 목욕을 한다
모든 토속 영화엔 꼭 이 장면이 있다. 여성 캐릭터들은 숲속의 계곡이든 강가든 폭포 아래든 수시로 목욕을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들을 엿보는 남성의 시선이 있다. 많은 사건들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2. 언제 어디서든 정사를 한다
낮이든 밤이든, 집이든 물레방앗간이든 들판이든 숲이든 개울가든 옥수수밭이든, 그들은 정사를 한다. 그리고 이 광경 역시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들킨다.

3. 껄떡대는 건 죄가 아니다
욕정의 도덕률이 무너진 상태에서, 마을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가운데 놓고 많은 남정네들이 치근대는 건 토속 영화에서 전혀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다. 그들은 겁탈을 해서라도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유부남/유부녀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며, 이것은 <뽕>(이두용, 1986)과 <떡>(김수형, 1988)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4. 무당을 조심하라
무당이든 박수든, 토속 영화에서 ‘무속인’은 빠지지 않는다(<불새의 늪>에서 봉은은 아예 무당의 딸로 그녀와 관계를 맺으면 급살 맞아 죽는다). 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성적으로 문란한 존재이며, 권위를 내세워 음모를 꾸민다.

5. 여성은 거래된다
사극이 여성을 대 잇기의 수단으로 여기거나 정절을 강조하며 억압했다면, 토속 영화는 상품처럼 거래한다. 그 배경엔 남성의 어리석은 물욕이 도사리고 있는데, 서너 명 만 모이면 반드시 투전판을 벌이는 그들은 노름빚을 갚기 위해 딸을 팔아 먹고(<산딸기 3>), 여자는 몰래 몸을 판다(<물레방아>). 여기서 자연 속에서 사는 여성 캐릭터들은 장터를 통해 문명을 접하고, 동동 구리무와 박하 분과 손거울의 유혹 앞에 종종 마음을 연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에서 김 주사(최성)도 그렇게 순이(정윤희)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유혹에 넘어간 여자들은 결국 유린당한다.


1. <화녀촌>의 근친적 결말.
2. 토속 에로에선 그 어떤 곳에서도 정사가 벌어진다. 사진은 <소금장수>의 옥수수밭
3. 남자들이 셋 이상 모이면 투전판이 벌어진다. 사진은 <산딸기 2>
4. 여성은 결국 술집 작부가 되며, 그곳에서 번 돈은 남자의 노름 밑천이 된다. 사진은 <산딸기 2>


토속 영화는 1980년대 중반을 넘어가며 서서히 변주되고 확장된다. 하명중 감독의 리얼리즘적 접근이 두드러지는 <땡볕>(1985)과 <태>(1986)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며, 변장호 감독의 <감자>(1988)나 임권택 감독의 <아다다>(1988)는 문예 영화에 좀 더 가까운 케이스일 것이다. 여기서 이두용 감독의 <뽕>(1986)은 토속 영화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원작이 나도향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문예 영화의 전통을 잇고 있으면서, <뽕>은 기존 토속 영화가 지녔던 신파적이며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멜로드라마의 톤을 걷어낸다. 베테랑 이두용 감독은 능수능란하게 영화를 조절하며 끌고 가는데, 심각하거나 진지하지 않은 톤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에로티시즘을 표현할 때도, 절박하거나 경직되지 않은, 여유 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유머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뽕>의 꽤 논쟁 지점이 있는 영화다. 안협네(이미숙)는 마을의 매춘부이며, 그녀에 대한 동네 남정네들의 음험한 시선을 영화는 자연스레 합리화한다. 여기서 안협네라는 캐릭터가 다른 건 육체관계에서 일종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토속 영화들이 ‘겁탈당하는 여성’을 보여준다면, <뽕>의 안협네는 철저히 거래하는 여성이며 원치 않는 남자는 거절한다. 같은 해에 나온 <변강쇠>(엄종선, 1986)의 ‘옹녀’(원미경)가 강한 성적 능력으로 위협적 존재가 된다면, 안협네는 유혹적이면서도 주체적이며 현실적이다.

<뽕> 이후 토속 영화는 약간 변화를 겪는다. <옹기골 뽕녀> 같은 유사 제목 영화가 나왔고, 나도향을 비롯해 김유정, 계용묵, 김동인 등 토속 영화의 재료로 삼기 좋은 작가들의 소설이 대거 각색되었다. 흥미로운 건 김수형 감독의 <떡>이다. 김유정의 원작을 옮긴 이 영화는 <뽕> 이후 토속 영화(와 사극)의 트렌드가 변했음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떡>은 ‘<뽕>+<변강쇠>’이다. 마을 남자들은 (그녀가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점례(선우일란)를 넘본다. <뽕>의 안협네 같은 존재인 셈. 그런데 점례와 관계를 맺는 남자들은 에너지를 완전히 빨려 버린다. ‘옹녀’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결말인데, <뽕>에서 안협네의 남편 삼보(이무정)를 통해 암시만 되었던 독립운동가 콘셉트가 <떡>에선 명확하게 제시된다.

<산딸기>나 <뽕>은 이후 프랜차이즈를 이루며 1990년대까지 이어졌지만(<뽕>은 최근 <뽕 2014>(공자관)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토속 에로는 대체적으로 1980년대 말에 수명을 다하고 만다. 이것은 에로 영화가 1988년 올림픽 이후 수그러들었던 것과 궤를 같이하며, 이 시기 한국의 에로틱한 영상 콘텐츠는 극장에서 비디오 시장으로 급속하게 중심 이동을 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토속 에로의 흐름.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와 기획영화가 등장했던 1990년대에 살아남기엔, 그 정서의 우울함과 여성관의 한계는 너무 치명적이었다. 그 한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뽕>이 최근까지도 명맥을 잇고 있는 건, 어쩌면 그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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