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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생태계 (정재은,2017)

글:이승민(다큐멘터리 연구자) /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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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생태계

늘 궁금했다. 왜 아파트를 아파트촌이라고 하고, 빌딩을 빌딩 숲이라고 할까? 콘크리트 더미에 붙이는 이름치곤 참 이상한 조합이다. 정재은 감독의 <아파트 생태계>는 새삼 그 궁금증을 상기시키면서, 차분히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서울 지역 아파트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재탄생의 과정을 담는다. 그러나 영화는 아파트 역사를 기술하고 있지만, 아파트를 그저 인간이 만들고 활용하는 사물이 아니라 생명체를 가진 대상으로 다룬다. 아파트와 아파트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연결망을 다층적으로 담는, 말 그대로 ‘아파트 생태계’를 풀어낸다.

영화는 일련의 인터뷰로 진행된다. 물론 서울 아파트에 관한 인터뷰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인터뷰들이 재미난다. 아파트의 공적 역사를 짚어내는 동시에 인터뷰하는 사람들의 사적 경험을 아우르고 있다. 주거정책에서 건축사가 설계한 건물로, 투자가치에서 거주권 투쟁으로, 공공생활에서 재건축으로 이어지는 유연한 흐름을 각 해당 인물들의 인터뷰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들 인터뷰는 전문가적인 설명과 동시에 개인들의 소소한 기억과 경험담이 함께 녹아 있다. 서울에 급작스럽게 몰려드는 서민들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민 아파트 정책이 중산층 주거지 중산층 아파트 정책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 그 속에서 여의도 시범 아파트, 반포 아파트, 회현 아파트, 목동 아파트, 2호선을 이은 3핵 도시계획,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그리고 최근 대대적인 재개발을 앞둔 둔촌 아파트까지 영화는 차분히 개발과 재개발의 현장을 짚어낸다. 동시에 복도식 아파트에서 꼬마 이웃을 만나고, 저녁 시간 엄마가 부르면 몰래 숨던 나무숲을 기억하고, 발로 차면 오락기 소리가 나던 다리를 다시 차본다. 영화는 정보를 도식적으로 제공하는 인터뷰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생활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정보와 정서가 담고 있다.

더구나, 각 인터뷰들은 위계나 모아짐이 없다. 아파트를 둘러싼 각각의 방향들로 열린 구성을 취하는 영화는 인터뷰를 수평적으로 배치한다. 여기에는 각 인물들은 이름 외에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감추지도 않는다. 각 인물들은 자신들의 사적 경험담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현 위치를 드러낸다. 건축사, 조경사, 주부, 부동산업자, 조합원, 다큐멘터리 감독, 재건축으로 이주한 주민 등 실로 면면이 다양하지만 영화는 직함으로 인식을 가두지 않되 그들의 현 위치를 드러낸다. 영화는 하나의 결말을 향하는 사건이나 말들의 모음이 아니라, 각기 제 방향으로 열린 구성이다. 말할 수 있는 것과 볼 수 있는 것을 통해, 말 되어지지 않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접속하는 영화다.

영화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것에 결합시키는 전략으로 두 인물을 등장시킨다. 손정목 도시학자와 젊은 여배우가 그들이다. 영화는 나이든 도시학자 손정목의 안내로 출발한다. 4명의 시장을 거치면서 서울 도시계획을 주관해온 그는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라는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그를 직함이나 저서로 소개하지 않고 대학 도서관 귀퉁이에 앉아 책을 보는 나이든 한 노인으로 소개한다. 그는 학생 식당에 밥 먹으러 가도 아무도 알아보지 않고 심지어 자리를 잡지 못해 식판을 들고 오가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아파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질수록 그의 모습이 묘하게 오래된 아파트들과 닮아있다고 느끼게 된다. 영화는 손정목의 말을 통해 서울 아파트의 역사를 짚어가는 동시에, 손정목이라는 한 인물의 현재 모습도 함께 담아낸다. 영화 후반부, 그가 도서관을 나와 골목골목을 지나 자신의 거주지로 향했을 때,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를 할 때,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에 고인으로 이름이 올라갈 때 그 자체로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마주하게 한다.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영화 처음 낡은 세운상가에 서서 유하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을 읽는 여배우, 그녀는 영화의 처음과 중간에 간간히 등장하는 극화된 인물이다. 젊고 매력적인 여배우는 현실의 기록이라는 다큐 장르에서는 허구화된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아파트 건물에서 시를 읽고, 카메라를 들고, 아파트 매매서를 찢고, 아파트 사이를 걷는다. 손정목 도시학자와는 묘하게 대비되는 자리에서 아파트의 생태계를 마주하게 한다. 세련되고 화려하고, 마주하고 사라지고, 욕망으로 고뇌하는 비현실적인 배우는 아파트에 내재된 허구적 욕망을 형상화한다. 말 없는 사물인 아파트의 말이자 형상으로 두 인물은 영화 속에 강한 이미지로 자리한다. 이처럼 <아파트 생태계>는 한국사에서 아파트의 변천사를 한 축으로는 정보로, 다른 한 축으로는 사람으로 형상화되어 감각하게 한다. 사람이 만든 아파트이자 사람을 품고 있는 아파트인 것이다.

영화는 매우 촘촘하게 그리고 정제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영화는 메시지나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파트를 통해 한국 근대사에 대해,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주거에 대한 개념, 공공의 개념과 기록이라는 행위에 대한 자기반영까지 수많은 결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감정을 강제하거나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하고픈 이야기를 단숨에 내뱉기보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녹여내는 호흡은 역으로 이 모든 메시지를 읽어내게 하는 힘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일까? 영화 처음 낯설고 기괴한 사물로 콘크리트 건물을 비추던 카메라의 시선이 어느 순간 아파트 곳곳을 쓰다듬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러다 마침내 여기저기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별을 준비한다는 느낌마저 자아낸다. 여기에는 음악이 한몫한다. 따뜻하고도 쓸쓸하다. 이렇게 영화는 아파트촌에 대한 오랜 의문을 스르륵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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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생태계

아파트 생태계  Ecology in Concrete
2017 | 80분
감독 : 정재은
출연 : 손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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