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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들 켈리 레이차트 2016

글:박인호(영화평론가) / 2018-01-12  

게시판 상세내용

어떤 여자들

켈리 레이차트는 가장 소박한 형식으로 동시대 미국인의 삶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인 맥락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으며, 지역의 고유한 풍광 속에서 삶을 버티다가 무뎌지고 바스러지는 인물의 현재를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녀의 6번째 장편영화인 <어떤 여자들>(2016)은 전작을 관통했던 그만의 인장도 찾을 수 있지만, 이 영화가 스케치한 몬태나의 풍경과 여성들의 삶은 ‘오리건 3부작’보다 쓸쓸하고 스산하며 적막하다. 현재 직면한 문제들과 씨름하던 인물들이 이 영화에서 굳게 입을 다문 채 저 멀리로 시선을 던지거나 묵묵하게 계절을 견뎌가는 숲과 나무, 하늘과 구름이 더 이상 사람들의 삶에 포함되지 않으려는 것처럼 저 멀리 떨어져 존재한다. 그들은 이미 사라진 것들의 흔적으로 남거나 곧 사라질 것처럼 고요하고 삭막하다.

레이차트의 고유함은 로컬, 독립,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지만 그녀의 온화하고도 단호한 시선은 이러한 범주에 갇히지 않는다. ‘오리건 3부작’은 지역의 상황을 통해 미국의 동시대적 문제를 진단하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고, 독립적인 제작형태를 통해 미국인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을 주류의 흐름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그녀는 1960년대의 시대정신인 자유와 해방이라는 가치와 폭력에 대한 저항정신을 잃어버린 중년 남성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 가능한지, 이미 사라진 세대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가치 있는 것인지,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온전하게 지켜질 사람 간의 예의가 존재하는지 탐색한다(<올드 조이>(2006)). 젊은 여성이 일자리를 찾아 알래스카로 이동하던 중 자동차가 고장 나고 그녀의 개가 사라지는 사건을 겪게 된다. 낯선 공간에 남겨진 그녀는 불안과 대면해야 하며 알래스카에서 맞이하게 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웬디와 루시>(2008)). 새로운 삶을 찾아 서부로 이동하는 개척민들이 길을 잃고 사막을 통과하게 된다. 황량하고 피폐한 노정에서 그들이 만난 인디언과 폭력적인 길잡이를 통해 서부라는 지형과 남성의 전유물이 된 서부극을 그녀만의 시선으로 탐구한다(<믹의 지름길>(2010)). 레이차트는 공간을 통과하는 행위에 주목함으로써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거나 제한적인 관심사의 바깥에 버티고 선 삶의 풍경을 탐색하고 인물들의 노정을 통해 더 나은 삶의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유하도록 제안한다. 특히 미국인의 꿈과 이상이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좌절되는가라는 질문을 짊어진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들은 미국이라는 국가로부터 비롯된 은근하고도 끈질긴 불안을 거쳐 악몽이 되어간다. 그녀의 인물들은 예기치 못한 순간, 낯선 곳에 머물러야 하고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하루하루 버텨내야 한다. 우리는 사소해 보이지만 살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인물과 마주하고 우회로조차 허용되지 않는 그들의 절박한 현실과 대면하게 된다. 그들이 당면한 삶의 조건은 영화 바깥의 우리와 동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점점 줄어드는 돈, 일자리를 찾는 것, 먹을 것과 마실 물을 확보하는 것, 안전하게 잠들 장소, 부당한 합의금에 대한 소송처럼 실질적인 문제도 있다. 또 무자비하고 무분별한 자본의 횡포와 실용주의적 사고에 맞서 환경을 구하는 것, 신념과 실천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한 질문, 9.11 테러-미국이 벌인 전쟁-2008년의 금융위기와 같은 부시 정권의 악행과 무능함의 폭로에 이른다.

레이차트는 미국인들을 위협하는 정치적 상황과 경제적 위기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면서도 개인의 내밀한 삶을 작동시키는 동력을 꾸준히 모색한다. 그녀의 영화는 지역의 풍광 속에 새겨진 당대 삶의 구체적인 문제들과 더불어 세밀한 삶의 순간으로 인해 아름다움과 풍부함을 선사한다. 처음으로 친구가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한 소녀의 빛나는 눈동자, 사랑하는 개를 낯선 곳에 떼어놓을 수밖에 없던 웬디의 절망스런 손짓, 낯선 곳에서 만난 경비업체 직원이 건네준 꼬깃거리는 지폐, 깊은 밤 적막한 소도시를 유유히 활보하는 말의 우아하고도 힘찬 발걸음, 개척시대 학교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사암 더미, 특별하거나 진지하지 않은 하루를 담은 편지, 목동을 따라 뛰어다니는 사냥개의 활기찬 모습은 일상 속에 감춰진 비범하고 고귀한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레이차트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겸허함과 친밀함을 바탕으로 한 관계의 풍요로움(<올드 조이>의 두 친구, <웬디와 루시>의 두 존재, <믹의 지름길>의 강직한 신념을 지닌 부부)도 있지만 한편으로 실패한 여정과 균열되는 관계(오랜 친구인 중년 남성들이 온천여행을 떠나지만 그들의 삶은 잃어버린 지난날에 대한 향수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불안정하고, 일자리를 찾아 알래스카로 가던 중 사랑하는 루시를 잃어버리고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빠진 웬디는 유일한 이동수단인 차마저 잃게 된다. 믹과 인디언이라는 두 길잡이를 동원해서 신앙공동체를 세울 약속의 땅을 찾아가는 순례자 가족에게 닥친 공포와 두려움의 확산은 서부라는 공간이 배태한 이주와 정착이라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2013)는 환경을 위해 댐을 폭파시키려다 실패한 젊은 운동가들의 회의와 좌절을 통해 머릿속에서 생산되는 신념과 육체를 통해 실천되는 행위에 대해 질문한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은 희박하기만 하다.)에서 파생된 곤경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풍경과 인물에 대해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는 레이차트의 완고한 태도가 중심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그녀의 인물들은 타인과의 관계가 회복되거나 당면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불가능한 꿈에 대해 전력을 다해 거부한다. 불안과 절망을 이겨낼 수 없을지라도 삶은 이어질 것이며, 삭막한 여정에서 친밀한 존재와 교감하거나 이별할지 모르고, 그리하여 인간의 삶이 사막의 모래알갱이처럼 바람에 흩어져 흔적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 앞에 그들은 솔직하고 겸허하다. 오랜 시간 묵묵히 존재하는 풍경과 대면한 인간의 유한성을 수용하고, 미완의 삶을 살고 있는 존재가 당도하고자 애쓰는 노정을 끈질기게 응시하는 레이차트의 카메라를 통해 동시대 서부의 풍광과 세밀한 삶의 기록이 조우한다.

<어떤 여자들>은 네 여성의 이야기가 느슨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그녀들이 어떤 삶을 꾸려나가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화를 어떻게 대하는지, 서부라는 풍경이 그들을 어떻게 품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믹의 지름길>이 서부의 횡단기라면, 이 영화는 서부를 맴도는 인물이 그들을 에워싼 풍경을 응시하거나 회피하는 시선으로 건네받는 풍경과 역사에 대한 사색이다. 그런데 응시의 연결망이 너무 쓸쓸하고 음울해서 서부라는 풍경과 그 시대에 대한 종언처럼 느껴진다. 개척기 서부를 통과했던 이주민과 오랜 시간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이 사라진 곳에 사암 덩어리나 황야를 달리는 철길, 드문드문 남아 있는 목장이 서부임을 드러낸다. 정착지를 향해 걷는 고된 행렬, 카우보이와 악당들이 허다하게 뿜어내던 총성, 달리는 말들의 격렬한 운동과 추격은 차갑고 어두운 겨울이라는 계절, 마을을 에워싼 산, 고립된 목장, 길게 뻗은 도로에 흡수된 것처럼 보인다. 레이차트는 퇴적물이 되어버린 서부, 이미 죽어버려 생동하는 힘이 사라진 서부를 사색하기 위해 풍경을 기억하고 자신의 삶으로 기입하는 자들(노인과 인디언 소녀), 풍경과 무관하게 살아가거나(리빙스턴에 거주하는 중년의 변호사와 법대생), 서부를 소유하려는 자(집을 지으려는 여성)를 등장시킨다. 그렇기에 <어떤 여자들>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는 겨울의 황량한 풍경을 관찰함으로써 경관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모습을 응시하도록 인도한다. 그리고 풍경에 기입된 서부의 원초적인 기억과 사라진 존재들을 불러들인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인물들의 세밀한 표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보다 잔뜩 흐린 하늘과 낮게 깔린 구름,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 바싹 말라버린 목초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이 주인공임을 증명하는 것 같다.

척박한 풍경과 고된 인물의 삶을 드러내는 방식을 살펴보자.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고립되어 있으며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친구라고는 말이나 개가 전부인, 삭막한 겨울을 보내는 인디언 소녀나 골칫덩어리 의뢰인을 설득하지 못하는 중년의 변호사, 대출금을 갚기 위해 왕복 8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법대생, 고즈넉한 숲에 집을 짓기 위해 개척시대의 사암이 필요한 일 중독자의 겨울은 반복되는 노동과 고립된 생활, 소원에 대한 과도한 집착, 무기력함과 공허함, 빈곤에 대한 두려움과 피로에 잠식되어 있다. 변호사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그녀의 관심은 의뢰인의 무리한 요구로부터 벗어나는 것뿐이며, 잠이 부족한 법대생은 밤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풍경(과 사람)으로부터 배제되고 고립된다. 숲속에 집을 지으려는 여성이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에도 그녀가 자연을 응시한다기보다 사이가 틀어진 사춘기 딸과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남편과의 단절이 강조된다. 조깅을 하거나 숲길을 걷고 집이 지어질 장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녀조차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집의 미래를 떠올릴 뿐, 현재 그녀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겐 눈을 감고 있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이웃 노인이 소유한 사암뿐이고, 본고장에서 나는 돌로 집을 짓겠다는 소원조차 소유와 과시, 약탈의 행위로 변질된다. 그녀는 노인이 애틋하게 집과 땅의 역사에 대해 회고할 때에도 그저 사암을 가져가라는 허락만 요구할 뿐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기어이 사암을 싣고 가던 날, 노인이 집 안에서 물끄러미 바깥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하면서도 절망적인 선언처럼 다가온다. 집의 형태를 갖춘 가족의 텐트/노인 홀로 사는 미완성의 집, 오랜 시간 녹지 않았을 눈이 더께로 앉은 산을 배경 삼아 서부의 무덤처럼 놓인 사암더미/여인의 텐트 근처에 차곡차곡 정리된 사암, 필요에 따른 거래/증여의 행위 끝에 마치 무덤에 갇힌 왕의 미라처럼 보이는 노인의 끈덕진 응시가 놓여 있다. 개척기의 서부, 마을이 처음 만들어질 때 교회보다 먼저 지어진 학교의 흔적만 남은 돌무더기가 치워진 곳은 노인이 거주한 지 50년 넘게 지켜온 터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레이차트의 카메라는 노인의 집을 멀리서 지켜보는데, 마치 개척기의 역사가 스며든 대지와 몬태나의 스산한 풍경이 노인의 응시와 더불어 사라질 것임을 알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예언자 같다. 비록 기억하고 응시하는 행위자가 사라질지언정 레이차트는 인물보다 먼저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만이, 그들의 사라짐까지 목도하는 것이 서부와 그곳에서 살았던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이 자신의 죽음과 서부의 소멸을 염려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여자들>에서 가장 서부와 닮아 있는 사람은 목장 소녀이다. 그녀는 미국이라는 국가보다 더 오랫동안 서부와 함께 살아온 존재이자 삶의 터전으로써의 서부와 능동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즉 목장, 말, 카우보이로 대표되는 서부를 공유하고 있으며 원주민인 선조들의 삶을 기억함으로 인해 온전히 풍경에 속해 있는 존재가 된다. 소녀는 우연히 학교법 강의에 참석하게 되고 법대생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낀다. 마구간과 목장 숙소를 규칙적으로 오가면서 일하는 그녀의 단조로운 삶에 파장이 일기 시작하지만, 피로에 찌들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운 법대생은 인사도 없이 강의를 그만둔다. 소녀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리빙스턴으로 향하고 도시의 밤거리를 걸으면서 카우보이모자가 진열된 상점을 구경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결국 법대생을 찾게 되지만, 정작 그녀는 당혹스러워하며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낸다. 자신을 기다리는 유일한 존재인 동물들에게로, 자신이 속한 서부로 돌아가던 길에 졸음을 이기지 못한 소녀의 차가 스르륵 미끄러지다가 마른 목초지에 멈춰 선다. 이 움직임은 중년의 변호사가 쇼핑몰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인디언들의 전통춤 공연과 대비를 이룬다.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삶이 한낱 구경거리가 되면서 도시의 상품으로 전락했고, 그렇게라도 연명해야 하는 삶의 스산함은 쇼윈도에 진열된 모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념품이나 상징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소녀는 야생의 삶에 대한 열망과 자신에게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아직 지니고 있기에 존귀하다.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도시를 찾았을지 모를 소녀의 방문은 실패한 여정이었어도 깊은 감동을 남긴다. 백인 가족의 단란한 식사를 보면서 미소를 짓거나 우아하고 당당한 자세로 말을 타고 활보하는 모습은 정성껏 말의 갈기를 매만지는 손길과 말과 동일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그녀의 발, 목초지를 가로지르는 생생함과 더불어 그녀의 존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이차트는 오랜 시간 거주했던 선조들의 땅을 떠났다가 씁쓸한 감정을 지닌 채 돌아오는 소녀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녀의 자동차가 갓길로 빠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지만 다시 소녀의 얼굴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은 여행 이후 소녀의 변화 여부를 확인하는 것보다 중요한 사실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는 아직도 단단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목장에는 그녀와 겨울을 함께 보내는 동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그녀의 의지로 말을 길들이거나 돌보는 행위가 그녀를 지탱할 것이며, 그녀를 품고 있는 서부 또한 소녀의 삶을 물끄러미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차트는 우리에게 주어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를 고심한다. 일상을 영위하는 표면 아래 숨어 있는 것 같지만, 먹고 마시고 잠을 청하거나 노동하는 매 순간 첨예하게 개입된 정치적 사안은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도는 과정에 놓인 인물들의 제스처와 표정, 불온한 시대에 잠시나마 온기를 더하는 숨결, 인물들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미국의 풍경들 속에 깊이 스며든다. 나아가 <어떤 여자들>은 서부의 지형과 지리적인 풍경에서 서부라는 역사와 영화적 기억을 덧대어놓는다. 그것은 서부와 이별했던 남자들, 사막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 사막을 달려 멀리 사라지는 기차와 같은 회고의 대상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위대한 풍경이 된 서부는 적막할지언정 그녀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으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서부를 되살리거나 망각한다. 하지만 사라짐에 대해 무심한 응시가 되었건, 끈질기게 나와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임을 알고 있는 시선이건 서부를 떠돌던 그녀들의 고단하고 피로한 삶을 향하고 있다. ‘개인의 경험과 삶의 감각이 지닌 힘을 믿으며,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가치를 탐색하는 것이 영화가 해야 하는 일’임을 실천하는 그녀의 영화가 아름답고도 위대한 것은 미완의 시간을 견디면서 목적지에 도달조차 하지 못한 인물들에게 고집스럽게 머물러 있는 그녀의 시선 때문이다. ‘어떤’ ‘여자들’이 살아내고 응시한 것은 정직하고 윤리적이며 풍경에 대해 겸손하고 솔직한 레이차트를 향하고 있으며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에 깃든 과거와 현재를 대면하도록 인도한다. 그들이 사라진 존재들과 생성되는 것들에게 통감할 때 정치, 사회적 표명과 내밀한 감정이 일체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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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07분
감독 : 켈리 레이차트
각본 : 켈리 레이차트
출연 : 로라 던(로라 웰스), 크리스틴 스튜어트(베스 트래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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