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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사사로운 영화리스트의 영화들에 대하여 (,)

글:정성일(영화평론가) / 20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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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사사로운 영화리스트의 영화들에 대하여

1.
(... 그리고 계속)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전혀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작년에 나는 이 지면에서 장-피에르 레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마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자기의 방식으로 장-피에르 레오의 영화를 본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첫 번째 영화에 14살의 나이에 출연한 소년. 앙뜨완 드와넬이 마지막 장면에서 바다를 달려가다 말고 문득 멈춰 서서 우리를 바라볼 때 그 하나의 쇼트는 영화사의 사건이 되었다. 다섯 편의 앙트완 드와넬. 그 곁에는 장-뤽 고다르와 함께 68년 5월을 기다리면서 파리를 서성거리는 청년 장-피에르 레오가 있다. 혁명에의 예감. 그러나 장 외스타슈의 영화에서 레오는 실패한 혁명의 멜랑코리에 관해 카페에서 장황하게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 사이에 12시간 30분 동안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자크 리베트의 장-피에르 레오가 있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영화에서 레오는 여전히 철들지 않는다. 베르날도 베르톨루치는 누벨바그에 적대적인 감정을 안고 말론 브란도의 맞은편에 세워 놓았다.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와 글라우베 로샤를 빼놓고 싶지는 않다. 장-피에르 레오는 종종 영화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누벨바그가 완전히 끝난 다음에도 장-피에르 레오는 살아남았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장-피에르 레오를 브레송 영화의 모델처럼 찍었다. 그리고 난 다음 전혀 예상하지 않은 순간 차이밍량의 영화에서 레오를, 나이 든 레오를, 거의 낙엽이 된 것만 같은 레오를 만났다. 청춘은 저물고 있었다. 나는 작년에 슬픈 마음으로 알베르 세라의 영화에서 내내 침대에 누워있는 장-피에르 레오를 보았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이 소년을 볼 날이 많지 않겠구나.

그런데 갑자기 가을에 전화를 받았다. “장-피에르 레오를 만날 볼 생각이 있으세요?” 나는 처음에는 무언가 잘못 들었는 줄 알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두 편의 영화. 장-뤽 고다르의 1985년 작품 <작은 독립영화사의 흥망성쇠>와 스와 노부히로의 새 영화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을 상영하면서 두 편의 영화의 주연인 장-피에르 레오를 초대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곁들여 알려주었다. 장-피에르 레오라니! 나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니, 너무 감사한 나머지 내 쪽에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해버렸다.

해운대의 호텔에서 장-피에르 레오를 만난 것은 10월 13일 오후 5시 30분이었다. 날씨는 맑았고 바람이 몹시 불었으며 창문 바깥의 구름은 저녁을 기다리며 한가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앞에 나타난 장-피에르 레오는 <400번의 구타>의 소년이 아니라 <루이 14세의 죽음>의 저물어가는 태양왕이었다. 그는 거동이 몹시 불편했고, 의자에 앉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 의자는 최고급이었으며, 마치 침대처럼 푹신한 것이었다. 나는 세세한 디테일을 쓸 수 있지만 지면이 허락하지 않는다. 장-피에르 레오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앉자마자 내가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고다르와 함께 작업한 이야기부터 꺼내 들었다. 아아, 고다르라니! 장-피에르 레오는 내가 만난 고다르 영화에 출연한 두 번째 배우이다. 첫 번째는 태안반도에서 만난 (<다른 나라에서>를 찍으러 방문한) 이자벨 위페르였다. 그런 다음 장-피에르 레오는 주머니 속의 구슬을 꺼내듯이 차례로 이름을 호명했다. 그는 말할 때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정확하게 그 자세로) 커다란 제스처로 양팔을 치켜들고 웅변하듯이 흔들었다. 하지만 가엾게도 이미 목소리는 지쳐서 갈라졌고 종종 가까스로 힘을 내서 말했다. 게다가 발음은 불분명하게 뒤섞였고 내가 알고 있는 영화 제목들도 때로 놓쳤다. 하지만 몹시 산만하게 이야기를 하다말고 문득 내게 말했다. “내가 그들에게 배운 게 뭔지 알아요? 배우에게 연기는 철학하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고다르가 내게 해준 말이에요. 영화는 그 방법을 쳐다보는 예술인 거죠” 나는 갑자기 누벨바그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중얼거렸다. 아아, 이것만으로 충분해. 이걸로 나는 충만해. 두 번의 토크, 나흘 동안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당신이 누벨바그의 작은 영화사에 관해 절대 알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장 외스타슈에 대해서도 들었다. 차이밍량의 연기 지도에 대해서도 들었다. 하지만 장-피에르 레오는 정말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토크를 원치 않았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한국의 시네필들이 간절히 원한다고 애절할 정도로 간청했다. 한 가지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장-피에르 레오가 그렇게 당신들 앞에 의자에 오래 앉아있었던 건 내 간청에 대한 대답이었다. 장-피에르 레오와의 두 번의 토크가 끝났다. 두 번째 토크가 끝난 다음 그는 아내의 부축을 받으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다. 그는 문이 닫히기 전에 내게 말해주었다. “당신도 트뤼포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군요” 그리고 포옹을 해주었다. 나보다 키가 작았지만 약간 힘겹게 고개를 들고 내 뺨에 그의 뺨을 비벼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그런 다음 순식간에 내 앞에서 사라졌다. 약간 멍한 기분으로 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문득 내가 평생 동안 꿈꾸었던 일 중의 하나가 이루어진 순간임을 깨달았다. 어떻게 달리 말할 수 있을까.


2.
올해 나의 영화는 망설일 필요 없이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 더 리턴>(시즌 3)이다. 그저 괴이하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이 시리즈는 여전히 데이빗 린치가 우리 시대에 가장 멀리 나아간 예술가 중의 한 명이라는 걸 보여주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게다가 (역시)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올해 1월 3일 나의 첫 토크는 데이빗 린치의 <블루 벨벳>이었다. 그런 다음 데이빗 린치에 관한 다큐멘터리 <아트 라이프>를 진행했고, 가을에는 <이레이저 헤드> <트윈 픽스: 불바다를 나와 함께 건너자> <로스트 하이웨이>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차례로 진행했다. 12월에는 데이빗 린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리가 기다리는 중이다. 말하자면 올 한 해는 내게 ‘다시 찾아온’ 데이빗 린치의 한 해였다.

왕빙의 두 편의 영화는 한 마디로 굉장했다. <15시간>은 15시간 40분 동안 진행된다. 쯔린성에 자리한 아동복 피복 공장 15,000개 중의 한 작업실을 막 일이 시작되는 아침 시간에 찾아간 다음 하루 종일 그 장소에 머물면서 그들이 퇴근하는 한밤중까지 하루 종일 버티고 있는 이 영화는 (좀 이상한 의미에서) 왕빙의 (앤디 워홀의) <엠파이어>이다. (아마 이 영화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다른 자리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한 편 <미세스 팡>은 알츠하이머로 죽어가는 할머니 팡슈잉(方?英)을 찍었다. 여기서 찍은 것은 말 그대로 ‘죽어가는’ 시간이다. 왕빙은 죽음을 착취하지 않는다. 그저 무시무시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미세스 팡>은 죽음 앞에서 영화가 가져야 할 태도를 다시 한번 질문한다. 이 두 편의 영화는 한 편은 한 장소에 대해서, 다른 한 편은 한 사람에 대해서 찍는다. 왕빙은 점점 더 멀리 나아가고 있다. (부산에서 만난) 프랑스 프로듀서에 의하면 왕빙은 이미 다음 영화를 파리에서 편집하는 중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다음 영화에 대해서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아마 2018년에 만나게 될 왕빙의 영화는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왕빙의 영화가 고통스럽다면 프레드릭 와이즈만은 잠시 동안 천국에 다녀온 기분을 안겨준다. <미세스 팡>에 올해 본 최고의 클로즈업 쇼트가 있다면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에는 최고의 롱 쇼트가 기다리고 있다. 프레드릭 와이즈만은 내가 알고 있는 한 롱 쇼트를 가장 의미 있게 찍는 감독이다. 거의 천국처럼 진행되는 이 영화가 와이즈만도 미처 예기치 않게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에서 가장 정치적인 영화가 된 것은 동시에 이 영화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프레드릭 와이즈만의 21세기 영화가 항상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걸작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초상화를 그려낸 두 편의 기괴한 영화 <자네트>와 <재키>는 서로 다른 의미에서 굉장하다. 아마 <자네트>는 찬반이 갈릴 것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브뤼노 뒤몽의 새로운 뮤지컬에 완전히 승복한다. 올해에는 두 편의 파블로 라라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다른 한 편도 마찬가지로 전기영화인 <네루다>이다) 나는 이 사람의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싶다. 원작에 기대어 만든 두 편의 서사 에픽 <잃어버린 도시 Z>와 <자마>는 영화와 ‘자연’이 만나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탐구이다. 점점 영화에서 자연을 그래픽으로 그려내는 동안 어떤 영화들은 ‘생생한’ 자연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영화라는 장치 자체가 경험하는 것을 기록하고 싶어 한다. 올해 가장 신선한 영화는 조쉬와 베니 사프디 형제의 <굿 타임>이다. 아마 사프디 형제는 점점 더 놀라워질 것이다. 이 선택은 지지의 표명이다. 물론 마지막에 선택한 스와 노부히로의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는 단지 장-피에르 레오를 만났기 때문에 일종의 기념으로 포함시킨 것이 아니다. 스와 노부히로는 여기서 매우 느슨하게 진행하면서 마치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를 다시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을 가져온다. 물론 이 영화의 대부분에서 보여준 그의 연출방식, 즉 배우에게 영화를 그저 맡긴 채 그 리듬을 따라가는 흐름은 스와 노부히로만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까지 항상 어떤 긴장을 품고 있었다면 여기서는 드물게도 기분 좋은 한여름의 휴가를 즐기러 온 것만 같다. 아마 이 영화 속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그 자연스러움이 한몫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퍼펙트 커플>이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의 오마주라면 분명히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는 <400번의 구타>의 오마주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 영화 속의 영화에서 잠든 연기를 하던 장-피에르 레오가 문득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볼 때 거기서 어린 앙트완이 우리를 바라보던 그 장면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추신: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영화를 뽑지 않긴 했지만 올해의 연기에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김민희는 정말 아름답고 애처롭다. 특히 어둠이 다가오는 커피숍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의 롱 테이크 씬은 홍상수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슬픈 장면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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