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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즈비뉴 립친스키,1981)

글:최봉수(애니메이션 감독, 웹툰 작가) /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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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기계적 반복은 산업 시대 이후의 미학이다. 그럼에도 산업시대에 발명된 오락물인 필름의 내용적 미덕은 ‘반복’과는 거리가 있어 왔다. 대중에게 반복은 지루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 실험작 중에는 반복이라는 모티프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하기도 했다. 즈비뉴 립진스키(Zbigniew Rybczynski)의 1983년도 오스카 수상작 <탱고 Tango>가 그런 작품이다.

작품은 하나의 방을 보여준다. 곧이어 공이 튀어 오르고, 조심스럽게 공을 주우려는 한 아이가 들어온다. 아이가 공을 챙겨서 방을 나갈 때까지, 우리는 무슨 사건이 진행될지 기대하며 지켜보게 된다. 아이가 창문으로 사라지자마자 곧바로 다시 튀어 오르는 공에 의해 그런 기대는 깨진다. 뒤이어 수유하는 여성이 등장하고 차례차례 각자의 볼일을 보는 인물들이 나타난다. 어떤 인물들은 그 연관성이 나중에 발견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각자가 전혀 다른 시공간에 있는 듯 보인다. 얇은 셀로판지처럼 겹쳐진 다중우주 같기도 하다.

이에 대해 “단절된 채 일상을 반복하는 소시민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2007년 제5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다.(daum 영화 정보) 하지만 2017년에서까지 ''단절된 소시민''이라는 모티프로 읽고자 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낡은 독해가 될 것이다. 설사 립진스키 본인이 작업 의도에 대해 현대 도시인의 단절을 언급했다고 하더라도, 실험을 위한 구실 정도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인물들의 입장 및 퇴장의 반복은 기이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점증되는 인물 군상이 새로운 악장을 더하는 것처럼 전체를 확장시킨다. 시각적 볼레로라고나 할까. 난장판이라고 해야 할 만큼 혼잡해지는데도 오히려 정적이고 안정적이다. 질서정연한 난장판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심지어 고정된 카메라의 위치는 관객에게 연구실에서 표본을 지켜보는 관찰자와 같은 느낌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우리 관찰자들에게 립진스키는 일상 동작의 개별소를 계속 더해 조합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이질적 영상을 구사할 수 있는지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달해 어떤 에너지로 치환한 듯 인물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반복되던 움직임 대신 새로운 무언가-임종을 기다리던 노인이 공을 줍고 퇴장하는 결말-로 이행된다. 반복 확장되는 엔트로피 현상을 관찰한 듯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쯤에서 다시 산업 시대 미학을 이야기해 보자. 산업 시대의 미학은 두 가지 층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산업적 차원에서의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위한 시도 끝에 나온 미적 특성이고, 두 번째는 파생적 특성으로서 산업적 미를 차용해 미학적 시도를 추구하는 경우이다. 실례로 이에 따라 기계 미학이 등장한 바 있다.

이 도식을 <탱고>에 적용한다면 산업 시대 이후에 나타난 기계적 반복과 그것의 인간 삶에 전이된 양상을 시각적으로 펼쳐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조금 더 소박하게 말한다면,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경제적 이유로 고안된 반복 기법을 형식 실험의 주제로 활용한 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일상적 풍경을 소재로 삼은 많은 애니메이션이 낭만적 시선을 담지하는 반면, <탱고>는 끝까지 냉철함을 잃지 않는다. 철두철미한 시각 실험가의 리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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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1981 | 8분
감독 : 즈비뉴 립친스키
각본 : 즈비뉴 립친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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